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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빛 기억

깨진 조각처럼 투명한

by Nope

기억이라는 건 군데군데 가위질된 필름과도 같아서, 완벽하게 맞물린 퍼즐처럼 존재할 수 없다. 소녀여, 꿈꾸고 말하고 생각하라. 정오의 햇살을 반사해 빛나는 새파란 유리 조각처럼.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머릿속을 꿰뚫었다. 유년기는 찬란할 수밖에 없는 법. 하지만 말, 생각, 꿈, 모두 내게 금지된 단어 아니었던가.

고개를 든다. 공사장, 안전주의라고 걸린 현수막. 비계에 걸친 천조각이 휘날린다. 유리 조각의 출처는 아마 머리 위였던 건가? 이름 모를 기계라도 돌리는지 굉음이 울린다. 공사장 근처 도서관이, 카페가, 꽃집이 진동한다.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투명한 파편. 분명 눈에, 코에, 온몸에 박혔을 테도 새빨간 액체가 흘러내리지 않는다. 이유는 나도 아주 잘 안다. 눈동자는 이미 차갑게 굳어버렸고 심장은 직선을 그리며 멈춘 지 오래일 테니까.

그래도 한낮을 유영한다.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파편을 찾아서. 설령 완벽하게 퍼즐을 완성할 수 없더라도, 이 세상 소풍을 끝내기 전 조각이라도 들고 돌아가기 위해. 바람에 펄럭이는 천조각이 딱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통과해서 들어간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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