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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

사랑 같은 거 없다고 해도

by Nope

첫눈 오는 날. 연인들은 서로에게 스웨터를 떠주며 사랑을 속삭이지. 너무 예스러워 보인다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낭만적이고 정성이 느껴지기는 하잖아.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다양한 문양을 넣어서 뜨면 되고, 없는 사람은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완성하면 되지. 정 여의치 않다면 가게에서 사도 되고. 아, 택 떼는 것 잊지 마. 직접 뜬 게 아니란 사실을 들키기 싫으면.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라서 상관없지만.

왜냐고? 난 사랑 같은 걸 믿지 않거든.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지만 공허한 말이잖아, ‘사랑해’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랑 같은 건 쉽고 빠르게 식는 감정 같단 말이지, 소비기한이 있는 음식처럼. 아니면 종잡을 수 없는 파동일지도 몰라. 접시 위에 엎어두면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푸딩처럼.

한때는 나도 사랑을 원했어. 지금도 사랑을 사랑하고. 뭐, 근데 동시에 미워하기도 해. 쉽게 휘발될 욕망을 아름답게 포장한 말일지도 모르니까. 영원히 포근할 줄만 알았던 스웨터가 해지듯, 사랑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누더기가 될 거 아냐. 아직도 감이 안 잡혀. 왜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허상에 매달리는지. 끝이 있기 마련인 감정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뭐,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난 아직 모르거든. 변덕스러운 게 남들인지 나인지조차도. 이런 말하긴 그런데… 난 거의 모든 것에 애증을 품는단 말이지. 겨울밤의 연인들에도,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는 색을 골라서 뜬 스웨터에도, 함께 나눠 낀 장갑에도. 양가감정이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일 거야. 사랑을 알고 싶으면서도 골치 아프니 그만 생각하고 자러 가고 싶은 마음. 말은 그렇게 해도 누군가가 나에게 스웨터를 건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누구도 없는 밤은 길기만 해. 창밖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네. 새로 짠 스웨터를 입은 연인들은 지금쯤 눈오리를 만들고 눈덩이를 굴리며 웃음 짓고 있겠지. 빙판길이 미끄럽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찾고 싶으니까. 아니, 찾아나설 거니까. 긴긴 겨울을 버티기 위해 스웨터를 떠줄 누군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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