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떨어지는 벚꽃 아래서
생각해봐요. 어떤 계절이 이별과 쓸쓸함에 어울리는지. 낙엽이 떨어지고 스산함이 감도는 가을이라고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마지막 불씨를 태워 빛난 나뭇잎이 스러지듯이 모든 게 허망하게 떠나간다고요.
아니면 겨울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꽃도, 열매도 하나 없이 흰 눈이 초목을 짓누르는 때. 밖에서 보기에는 포근하겠지만 막상 풀과 나무들은 숨이 막힐 듯한 공포를 느낄지도 모르잖아요.
아, 어쩌면 이건 전부 일반적인 시선이려나. 그렇다면 찔 듯한 여름은 어때요? 해가 쨍쨍한 날에는 바다와 헷갈릴 정도로 시린 하늘이 펼쳐지지만, 장마철에는 신록을 구름이 그리워하듯 눈물을 흘려대니까. 가장 쓸쓸한 계절이라… 당신이라면 뭘 고르고 싶어지나요.
잠깐만요, 하나를 빼먹은 것 같지 않아요? 맞아요,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 시작과 짝짓기의 계절이잖아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삼삼오오 손을 잡고 사랑 노래를 불러요. 지난가을과 겨울이 어땠는지, 어떤 여름이 찾아올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꽃가루와 봄공기는 이성을 마비시키니까. 서로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거예요. 마치 취한 사람처럼. 아니, 딱 1년 전의 저처럼.
벚꽃은 지고 목련은 짓밟혀 갈색이 되기 마련이잖아요? 저는 그것조차도 몰랐어요. 모른 척했다는 게 맞겠죠. 봄이 시린 계절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우습게도 첫사랑에 빠진 아이답게 순진했던 거예요.
당신은 가을비가 내리는 날, 우산도 없는 제 손을 잡았다가 벚나무에 푸른 나뭇잎이 돋아나고 버찌가 맺히기 시작한 날 돌아섰어요. 햇살만큼 환히 웃으며, 다 저를 위해서라는 말과 함께.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떠올린다고는 하지 않을게요. 너무 구차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