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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퇴사자의 이야기

by 강연우


11월은 과거를 회상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는 달이다.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에 대한 공포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겨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문턱인 11월의 어느 날 아침에 힘겹게 눈을 떠보니 집안 천장이 노랗게 보였다. 그리고 극심한 두통이 시작되었고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공포감에 사로 잡혔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후 부엌으로 기어가듯 걸어가 정수기 아래 서랍을 뒤졌다. 첫번째 서랍을 뒤적이다 온갖 잡동사니만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아래 두번째 서랍을 열어 애드빌이 들어 있는 통을 발견하고, 뚜껑을 열어 알약 두 알을 꺼내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정수기 앞에 놓인 컵에 물을 가득 담아 마셨다. 뚜껑이 열린 약통을 그대로 둔 채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아 한동안 있었다. 무거웠던 머리는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귓속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단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소파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방으로 다시 가서 여기저기 살피다가 작은 물체가 싱크대 위를 쓱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비문증이 심해진 것인가?’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먹을 것을 찾으려고 싱크대 위의 상부장을 열어보니, 개성 없는 하얀 접시 및 그릇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고 그 옆에 인스턴트 커피 및 홍차등이 들어있는 작은 상자들이 규칙 없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 안쪽 깊숙한 곳에 대충 던져 놓은 듯한 식빵봉지를 발견했다. 손을 뻗어 반쯤 남은 식빵봉지를 꺼낸 다음 유통기한을 확인하였는데 11월 17일까지라고 쓰여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떠오르지를 않았다.

‘빵을 산 것이 엊그제 같으니 먹어도 되겠지……’

식빵 봉지를 들고 소파로 가서 반쯤 누운 채로 앉은 나는 빙글빙글 꼬여 있는 빵 철사를 풀고 손을 넣어 식빵 한 조각을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아직 괜찮네…’

빵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있으니, 목이 말라왔다. 일어나기 싫었다. 그냥 참고 한입 더 베어 물었다. 이렇게 빵을 먹으며 물을 마시러 갈까 여러 번 고민을 하다가 한 조각 빵을 다 먹고 나서야 소파에서 일어나 정수기 앞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 놓인 컵에 반쯤 남아있던 물을 다 마신 후 다시 소파로 돌아가 누었다. 작은 크기의 2인용 소파라 누우면 핫도그 빵에 기다란 소시지가 밖으로 빠져나온 것 같이 다리가 소파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순간 마치 핫도그를 먹기직전 소시지가 먼저 입 속에 들어가 듯, 나도 누군가에게 소파와 함께 통째로 먹힌다면 핫도그의 소시지 같은 처지가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하였다. 물론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간혹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니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부디 다리부터가 아닌 머리부터 먹어주었으면 했다. 다리부터 먹히는 것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니까 말이다.

비록 다리가 좀 빠져나오긴 해도 푹신하고 언제든 나를 거절하지 않는 소파가 무척 좋았다. 더욱이 양쪽에 스펀지로 잘 채워진 두툼한 팔 거치대가 언덕처럼 적당히 솟아 있어 기대고 있으면 아주 편했기에 내가 집에서 침대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침대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했다. 겉은 짙은 갈색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날이 추울 때 소파 팔걸이에 얼굴을 대면 가죽 특유의 차가운 느낌과 가죽냄새가 풍겨오는 것이 아주 좋았다.

이 녀석은 예전 회사 다닐 때 첫 월급으로 샀던 것으로 크기에 비해 그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처음 채용되더라도 대부분 3개월 정도의 수습기간이 있기에 생각보다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았다.

첫 월급을 받고 ‘이 돈이면 알바를 하는 것이 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소파를 무리하게 산 이유는 여자친구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시 여자친구라고 해야겠지만 이 소파를 구매할 당시 그리고 할부금을 다 갚고 나서도 한동안 우리는 연인 사이였다. 때문에 이 녀석은 더 특별하다.

그녀와 난 대학생때 만났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강남역 2번 출구 근처의 한 건물 앞이었는데, 그 근처에는 주로 대학생 또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각종 자격증 취득을 도와주는 학원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대학생들이 학원이라니…’

좀 이상한 듯하지만 자격증 취득을 미끼로 그 학원들은 경기가 좋으면 좋은 데로 안 좋으면 오히려 더 호황이었다.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간절한 듯 보였다. 자신들이 원하는 일명 스펙을 갖기 위해서 아니 취업을 원하는 회사의 스펙을 맞추기 위해서 그토록 간절히 그곳으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여 사회에 편입되면 중산층의 삶을 살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결국 자신을 사회에 맞추는 꼴이라니... 한편으로는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본인에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브랜드와 디자인의 어정쩡한 사이즈의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한 사회인으로 변장하는 것이다. 그 당시 그 공간에는 바로 그런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지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