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국적인 '환각 리얼리즘'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 중국 문학의 거장 모옌. 1986년에 발표한 그의 중편소설 <붉은 수수>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이다. 붉은 수수밭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모옌은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2012년 '환각 리얼리즘을 민간 구전 문학과 역사, 그리고 동시대와 융합시킨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중국 대륙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중국 전통 문학 안에서 포크너, 마르케스와 비견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다."
모옌이 탄생시킨 새로운 세계 즉 그의 문학적 본향은 '가오미 둥베이 향'이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 산아제한정책 등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국적인 공간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세계이기도 하다. 가오미 둥베이 향은 '포크너의 요크나포타파 카운티, 마르케스의 마콘도'에 비견된다. 참고로 요크나포타파 카운티는 포크너의 대표작 <음향과 분노> <고향> 등의 배경으로 가상의 미시시피주 시골 마을이다. '요크나포타파’는 아메리카 원주민 촉토족의 언어에서 따온 말로 '평화의 강이 흐르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르케스의 마콘도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주요 배경으로, 콜롬비아의 해안 지방 어딘가에 있는 가상의 마을로 그의 외할머니가 살던 마을을 모델로 했다.
모옌이 탄생시킨 세계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환각처럼 기묘하게 느껴진다. 전쟁이나 산아제한, 폭력 등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만, 너무나 적나라하고 기묘해서 오히려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이다. 설화와 민담과 결합해 과장되고 왜곡되어 마치 환각처럼 느껴지지만 본질은 현실이다.
이 책 <모옌의 중단편선>에는 그의 작품 12편이 수록돼 있다. ‘가오미 둥베이 향’을 배경으로 인간 본성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때로는 참혹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들려준다.
[영아유기]
나는 버려진 아이들을 대략 네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유형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오줌통에 익사시키거나
길거리에 유기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 유형은 선척적으로 생리적인 결함이 있거나 기형인 경우이다. 이런 아기들은
오줌통에 들어갈 자격도 부여되지 않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산 너머에서 해가 뜨기 전에
구석진 조용한 곳을 찾아 아이를 생매장했다.
매장할 때 그들은 아이의 배에 벽돌을 얹어
다음 생애에 환생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세 번째 유형은 사생아이다.
해방 이후 경제생활이 나아지고
위생 환경도 개선되면서
영아 유기도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에 들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양상이 훨씬 복잡해졌다.
첫 번째 수록작품 '영아 유기'에서 주인공은 해바라기 밭에 버려진 아이를 줍는다. 산아 제한 정책으로 단 한 명의 아이만을 호적에 올릴 수 있던 시절. 자신의 딸조차 나중에 태어날 아들을 위해 호적에 올리지 못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키우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이를 못본척 해야 하지만, 작은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차마 외면하지 못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갈등하는 주인공을 통해 '무참히 버려지는 아이들과 중국 산아 제한 정책'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백구와 그네]
10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 주인공은 백구(하얀 개)에 이끌려 '작은 고모 놘'을 만난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모'는 아니다. 온갖 성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촌수는 뒤죽박죽이었고, 혈연관계 때문에 아니라 어릴 적 습관으로 작은 고모라고 부를 뿐이었다. 어쨌든, 놘은 학창 시절 주인공이 밀어주던 그네에서 떨어지면서 한쪽 눈을 잃었고, 벙어리와 결혼해서 세 쌍둥이를 낳고 살고 있었다. 주인공은 놘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집을 찾아갔고, 끊임없이 아내를 의심하는 폭력적인 남편과 모두 벙어리로 태어난 세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가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는데... 놘이 수수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우리 모두 벙어리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단 하나만이라도 나랑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런데도 결국 모두 벙어리였어..."
이 외에 [투명한 빨간 무]라는 중편과 함께 [철의 아이, 한밤의 게잡이, 창안대로 위의 나귀 타는 미인, 후미족] 등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하나같이 기묘하면서도 적나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