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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문 Aug 03. 2023

자리끼와 해골물

갱년기와 사춘기의 격돌 5

'왜 그럴까?'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이 어느 순간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어른들이 왜 자리끼를 가져다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 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침대 옆 협탁 위에 물 한잔을 가져다 둔다. 자다가 한 번쯤 깨서 물을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안경을 찾아서 끼고 양치를 하고 와서 물을 마신다. 물론 자리끼로 가져다 둔 바로 그 물이다. 오늘도 그랬다. 물을 마시려고 물 잔을 들어 올렸는데, 물 잔 속에 날파리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아, 잠결에 마셨을 때도 날파리가 있었나?' 불쾌한 느낌이 밀려오는 동시에 '이게 해골물이구나' 싶었다. 잠결에 세상 시원하게 마셨던 물이 해골물이었음을 보고 원효대사는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토록 심오한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도 작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날파리가 있었든 없었든 물은 이미 마셨잖아. 게다가 사람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루에 수십 마리의 날파리를 먹는다는데 뭐.' 긍정적인 생각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언젠가 읽었던 '커피 잔에 빠진 날파리의 생명까지 소중히 여기던 스님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안타깝게도 어느 책이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기록해두지 않으면 책을 읽어도 내용은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린다.) 스님이 했던 것처럼 날파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결코 가벼운 일이다. 목숨을 잃은 큰일이다.  왜 나는 내 입장만 중요했을까?


입장 바꿔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고층 거주자가 '저층 거주자는 승강기를 이용하지 말고 계단을 이용했으면 한다'는 취지의 민원을 제기해서 논란이 됐다는 뉴스를 봤다. 고층 거주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민원일 것이다. 저층에 사는 분 중에 다리가 불편한 분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모든 입주자를 위한 엘리베이터인데 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층 거주자와 저층 거주자, 용돈(월급)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 엄마와 딸. 우리 모두는 각자 입장이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이 생겨난다.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사춘기와 갱년기도 마찬가지이다. 가뜩이나 힘든 사춘기와 갱년기를 그나마 잘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로 서로에 대한 '입장 바꿔 생각하기' '배려와 이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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