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거나 부족하거나
이제 살생은 그만
누군가 그랬다. 아이들은 동물에 관심이 많고, 청년들은 사람에 관심이 많고, 중년을 넘어서면 식물에 관심이 많아진다고.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언젠가부터 식물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틈만 나면 집안에 화초를 사들이곤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들이는 족족 죽었다. 보다 못한 딸이 한마디 했다. "이제 살생은 그만" 그날 이후 화초 사들이는 것은 포기했지만, 꽃집 앞을 지날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하는 엄마가 마음에 걸렸는지, 4년 전 어버이날 선물로 화분을 사들고 왔다. 신기하게도 이 녀석은 아직 생생하다. 때가 되면 싱그럽게 꽃도 핀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피어있다.
적당한 무관심이 비결
화초의 생존율이 높아진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적당한 무관심'인 것 같다. 화초를 키울 때 우리가 하는 실수는 대부분 두 가지다. 물을 안 줘서 말려 죽이거나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썩게 하거나. 딸이 선물해 준 화초는 물을 자주 줘야 하는 식물이 아니어서 일에 쫓기다 보면 물 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말라죽을 때까지 잊어버리기는 쉽지 않다. '아, 물 줘야지' 할 때가 대부분 적당할 때다. 반면 화초에 관심이 지대했을 때는 사랑이 지나쳐서 물을 너무 자주 줬고, 결국 뿌리가 썩게 만들었다. 다정히 병이었다. 적당한 무관심은 적당한 관심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지나치지 않게, 적당하게 관심 가진 덕분에 요즘 우리 집 화초는 생생하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을 때도 넘치거나 부족하지 말아야 한다. 인심이 부족하면 야박하고, 인심이 지나치면 부담스럽다. 절약이 지나치면 인색하고, 절약이 부족하면 사치스럽다. 다른 사람이 사는 커피를 당연하게 얻어마시면서 제가 사는 건 한 없이 아까워하는 동료, 제 일이 많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넘기고 부탁하면서 다른 사람이 일을 많을 땐 혼자 퇴근하는 동료는 얄밉다. N분의 1 하자고 하는데 굳이 자기가 사겠다며 비싼 밥값을 혼자 계산하는 동료, 오지랖 5만 평 펼쳐놓고 시시콜콜 다 끼어드는 다정이 지나친 동료는 부담스럽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아야' 진정으로 편안하고 멋스럽다.
인간관계도 생활도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꿈꾸지만, 현실은 넘치거나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나친 체중, 지나친 걱정, 지나친 욕심. 부족한 잔고. 부족한 수면. 부족한 독서... 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요즘 내 삶에는 햇볕과 자연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빛이 영양소라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피부에 햇빛을 쬐면 비타민D가 만들어지고, 햇빛의 청색광은 수면 - 기상 주기를 설정하며, 두뇌 속 세로토닌 생산 속도를 조절한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의 배경이 되고, 기분을 조절하며, 공감을 높여준다. 또 우리의 생각과 반응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공격을 낮추고 반성적 사고를 촉진하며, 충동 성향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 <정원의 쓸모> 중에서
비싼 돈 주고 영양제 사 먹을 게 아니라, 이번 봄에는 공짜로 주어지는 '빛'이라는 영양소를 부지런히 누려봐야겠다. 세로토닌 뿜뿜 쏟아지게 만들어서 더 행복해지고, 말도 더 예쁘게 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