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하는 이유
소크라테스, 장자크 루소, 칸트, 니체, 베토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버지니아 울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산책을 좋아하고 즐겼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남긴 명언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
- 니체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 장자크 루소
하루를 축복 속에서 보내고 싶다면 아침에 일어나 걸어라.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심지어 칸트는 오후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나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변함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칸트의 산책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철학자와 작가와 예술가들이 걷기를 즐겼고 걷기를 찬양했는지... 걸어보면 알게 된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고 했던가. 생각도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걸을 때 비로소 깊이 사유할 수 있고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나 역시 글을 쓰다가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서 걷는다.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막혔던 글이 이내 물꼬를 만난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 쌓일 때도 나가서 걷다 보면, 압력밥솥의 증기가 빠지듯이 속에서 들끓던 기운이 빠져나간다.
혼자 걸으면 사유할 수 있고
함께 걸으면 대화할 수 있다.
걸으면서 대화하는 것은 마주 보고 앉아서 대화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서인지, 어둠 속에서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조금 더 솔직해진다.
온다 리쿠의 소설 <밤의 피크닉>에서는 '고교생활의 마지막 이벤트, 야간보행제'를 그리고 있다. 학생들은 밤을 새워 80킬로미터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자 추억으로 남는다.
딸이 어렸을 때 저녁 먹고 나면 자주 밤산책을 나갔다. 걸으면서 아이는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또 뭔가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풀어놓았다. 그렇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나는 동화나 소설, 영화의 스토리를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줬다. 가끔 생각이 안 날 때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맺어서 아이의 분노를 사기도 했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했던 시간이 오래 간직하고픈 추억이 될 줄은...
같이 밥 먹기 싫은 사람
같이 걷기 싫은 사람
워런 버핏처럼 수백억 원에 달하는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같이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해도 함께 밥 먹기 싫은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어도 함께 걷기 싫은 사람도 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 무례한 사람, 제 취향이나 제 속도만 주장하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데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때 내가 무례했던 건 아니었을까? 너무 내 고집만 피운 건 아니었을까?' 돌이켜 보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볼 때는 겉모습을 보는 것이 고작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 생각까지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걸어야 한다. 걸음으로써 온전히 자신을 볼 수 있고, 밉고 고약한 면을 살펴서 조금씩 다듬어 갈 수 있다.
ps. 그런데 요즘은 걷기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강력한 장애물이 존재한다. 스마트폰이다. 산책할 때는 그 옛날 광고 카피처럼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걸으면서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기보다는 생각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바람결에 실려오는 라일락 향기에 잠시 발걸음도 멈추고... 그렇게 걸을 때 온전한 걷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