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다
갈등 葛藤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합쳐서 된 말이다. 식물 중에는 제 힘으로 서지 못하고 다른 나무의 줄기를 휘감고 올라가며 자라는 것들이 있다. 칡이나 등나무, 나팔꽃, 담쟁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감아 올라갈 때도 나름의 원칙이 있어서 어떤 식물은 오른쪽을 방향으로만, 어떤 식물은 왼쪽 방향으로만 감는다.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등나무의 경우 오른쪽 왼쪽 가리지 않고 감아 올라간다고 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는 칡과 등나무가 한 줄기에서 만나면 얽히고설키고 꼬이고 비틀려서 그야말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이런 갈등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생활방식이나 습관, 취향이 다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갈등을 잘 만들어야 작품이 산다. 작가 초년생 시절, 선배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드라마 속 인물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얘기를 안 해요.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 되잖아요." 드라마를 보다가 하도 답답해서 물었더니 선배 왈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 안 되지. 갈등이 다 해소되잖아."
맞다. 대화를 하면 갈등은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의외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어차피 말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재단하고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자기감정에 휘둘려서 덮어놓고 짜증을 내거나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한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 작은 문제가 큰 문제로 와전되고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혹은 문제는 아예 외면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후배가 거짓말을 해서 입장이 난처해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손절'을 선택했다.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려고 하지 않고 단칼에 끊어버렸듯이, 꽤 길게 이어왔던 인연을 단칼에 잘랐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대화를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에 대처하는 능력이 미숙한 탓이었다.
갈등이 생겼을 때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도 말고, 억지로 참으면서 스트레스받지도 말고, 외면하지도 말고, 덮어놓고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말자. 차분하게 마주 서자! 대화를 하자! 그러면 갈등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쉽게 풀린다.
살다 보면 내 마음속에서도 시시때때로 갈등이 일어난다.
"조깅을 하러 나갈까, 쉴까? 드라마를 볼까, 책을 읽을까?" '우리 마음속에 살고 있다는 두 마리 늑대'가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는 순간이다. 어느 쪽이 이길까? 인디언 할아버지의 말대로 내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길 것이다. 이 글을 올린 후 나는 조깅을 하러 갈 예정이지만, 계속해서 글을 붙잡고 있는 것은 '조깅하기 싫어하는 늑대가 힘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그 늑대를 굴복시키는 방법은 이 글을 올리자마자 운동화를 신는 것이리라. '생각보다 몸을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나쁜 늑대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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