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아플 때는 자신에게 물어라.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아침에 잠에서 깨면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부족민 중 한 명이 몸이 아프거나 우울증에 걸리거나 의기소침해지면 부족의 치료사가 찾아가 맨 먼저 묻는 것이 우리의 의사들처럼 '어디가 아픈가?'가 아니라 다음 네 가지를 묻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춤춘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고요히 앉아 있었던 것은 언제인가?
이 네 가지를 한 것이 오래전이라면 몸과 마음이 병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 네 가지를 하루빨리하라는 것이 부족 치료사의 처방이다.
-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4가지 모두 언제 마지막으로 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못할까? 핑계는 오만 가지쯤 댈 수 있겠지만, 이유는 단순 명쾌하다. 첫째 그걸 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샤워할 때마다 들려오던 노랫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노래를 좋아하는 딸은 샤워할 때마다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꽤 좋았다. 딸이 행복한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제법 괜찮은 엄마인 것 같아서. 그런데 언제부턴가 더 이상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노랫소리가 빠진 물줄기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괜히 생각이 많아진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가? 행복하지 않은가?' 물론 단순한 생활습관의 변화일 수도 있다. 괜히 혼자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겠지만, 노래가 빠진 생활의 소음은 다소 건조하고 씁쓸하다.
둘째 하고 싶다는 마음은 일으켰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방해물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이미 길들여져 버렸다. 그래서 춤추고 노래하고, 대화하고, 고요히 앉아야 할 시간을 스마트폰에 다 쏟고 있다. 길들여지기는 쉽다. 길들여진 것에서 벗어나기는 너무 어렵다.
스마트폰에 길들여진 생활. 달콤한 맛에 길들여진 입맛. 편한 것에 길들여진 몸. 받는 것에 길들여진 인간관계...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심신이 병들어 골골하는 노년기를 보내지 않으려면, 길들여진 것에서 힘껏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