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뛰어든 메기 몇 마리
사람의 성장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완만한 사선 형태가 아니라 계단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무난하고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성장하고, 다시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다가 또 쑥 성장하는 방식이다. 물론 성장 대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 귀한 기회를 놓쳐버리고 제자리걸음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잘 붙잡는다면 도약의 계기가 된다.
문제는 그 기회가 99%의 확률도 나쁜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몸이 아프거나 실연을 당하거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혹은 사기를 당하거나... 온갖 불행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좌절하여 나락으로 떨어지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순간을 견디는 것에만 연연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하게 된다. 사람의 진면목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운 혹은 불행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드러난다고 했던가. 불행으로 찾아온 그 기회를 붙잡는다면 괄목상대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갱년기와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부정맥,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폐질환까지. 당혹스러웠다. '남들은 다들 멀쩡한 것 같은데, 왜 나만...' 억울한 생각도 들었고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여하튼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오만 가지 생각에 떠밀려 가기 싫어서, 우울해 있기 싫어서 운동을 시작했다. 관리하면 관리하는 만큼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부지런히 운동하면서 나름대로 식단을 관리했다. 몸에 좋은 걸 챙겨 먹는 노력이 아니라 안 좋은 걸 안 먹는 노력을 시작했다. 또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괜찮을 것 같다. 마치 그 옛날 어부들이 먼바다에서 잡은 청어를 살려서 돌아오기 위해 수조 속에 메기를 몇 마리 넣어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 삶 속으로 메기 한두 마리가 뛰어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덕분에 긴장해서 내 삶을 돌아보고 관리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