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작가:영웅] 정태

by 영웅

'아빠 미안해, 아빠 고마워, 아빠 미안해, 아빠 고마워'

평생 하지 못했던 두 가지 말을 짧은 시간 한참을 쏟아 내었다.

평생 할 줄 몰랐던 그 말 말고는 온 마음 담아낼 것이 없었다.


잠자리가 날아들고 벌이 날아들면 정태가 왔을까.

비가 내리고 햇빛이 내리쬐면 정태가 내릴까.

낯설고 익숙한 것들 모든 곳에 정태를 묻혔다.




2021년 11월 14일.

김장한다고 하니 어김없이 촌에 계신 어머니에게로 정태는 향한다. 바로 아래 동생이 와서 김장을 돕고 딸네랑 아들네에 김치 한통씩 갖다 주라는 말에 김치통을 사러 읍내로 간다. 어머니가 따라나선다. 제일 크고 좋은 놈으로 두어 개 골라 산다. '촌 김치 맛있지 말해 뭐하노' 정태는 생각한다. 김치를 실어 울산으로 향하는 길에 딸과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만날 장소를 설명해 주고 시간을 잡고 끊었다. 아들은 혼자 온다 하고 딸은 볼일이 있어서 잠깐 들른 다한다. 애들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여름 내내 군위에서 막냇동생 우사를 지어준다고 겨를이 없었다. 제대로 된 숙소도 없이 공사현장 옆 텐트아래 잠들고, 눈뜨면 일하고, 끼니도 못 챙기며 여름 내내 지냈더니 얼굴이 얼마나 쎄까매 지는지 몸이 녹아내리는 듯 덥고 힘들었다. 김장하는 동안 아래 동생이 병원에 가보라 하던데 '가봐야 되나' 싶다가 '치아라' 싶다가 그렇다.


저 멀리 성큼성큼 걸어오는 아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키가 얼마나 큰지 큼직하니 내 아들인가 싶다. '전봇대 왔나' 같이 웃고 싶은데 내가 건네는 말에 아들은 또 실없는 말이라 별 대답이 없다. 한잔묵고 지인들한테 이런 이야기하면 재밌어하는데 애들은 왜 안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GV90 하나 사까' 다시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들도 이번엔 실없이 웃었다. 뒤이어 딸이 왔다. 길 건너 공터에 주차를 하고 차가 지나가지 않는 가드레일 사이 조용한 도로를 성큼성큼 지나 딸과 사위가 가까워졌다. 손주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만에 보는 딸은 회사일 하고 애들 키우느라 힘든지 까슬하고 더 말라 보였다 그래도 이뻤다. '밥 잘 챙겨 무라, 밥묵고 갈래' 정태가 말했다. 딸은 전화로 이야기한 듯이 가야 된다고 한다. '볼일 있으면 가야지' 가까이선 딸은 정태에게 봉투 하나를 손에 쥐어준다. 아들이랑 같이 준비한 거라고 올해 생일 못 챙긴 걸 이야기한다.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딸도 이야기한다. '알았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라 같이 병원에 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택시 타고 가라고 쥐어준다. 백만 원이다. 사위가 트럭 뒤에 실어져 있던 김치 한통을 번쩍 들고 인사하고 차에 있던 손주들도 나와 인사한다. 이차선 도로 건너로 인사하는 손주들을 겨우 본다. '가그라 일 있으면 퍼뜩 일어나야지' 딸을 보내고 아들이 밥 먹자고 한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식당이 없다가 동태찌개 파는 곳을 찾아냈다. 햇살이 뜨거워도 바람은 차던 차에 뜨끈한 국물이 얼큰하니 밥 두 공기를 해치웠다.


다음 날 월요일 아침이 밝고 딸이 말한 병원으로 향했다. 명치도 좀 답답한 것 같고 팔, 다리랑 눈이 노란 것 같은 게 병원을 가보려던 참에 여럿이서 성화해 대니 잠도 안 오고 일찍 채비했다. 검사만 받는대 한나절이다. 이리가라 저리 가라 가라는 곳도 많고 병원 갔냐는 딸 전화 아들 전화도 받았다. 회사일로 다들 바쁘다. 바쁘게 살아야지 나는 그렇게 못살았으니까 아들딸은 그렇게 살아야지. '간암입니다. 저희 병원에서 진료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응급으로 대학병원으로 자료와 같이 이송시켜 드리겠습니다' 하루 종일 검사란 검사는 다하고 다른 병원으로 구급차 태워 보낸단다. 하루 종일 담배 한 대도 못 태우고 밥도 못 먹고 바깥공기 한번 못 쐐서 눈이 따가운데 또 뭘 타고 대학병원으로 가란다. 병원밖을 나서 구급차를 타러 가는 잠깐 사이 들어오는 바깥공기가 참 시원하다. 여섯 시도 안됐는데 해가 짧아져 컴컴해지려고 한다. 딸이 전화가 온다. '어~ 병원에서 뭐래!?' '고마 알아서 한다. 이제 나왔다. 하루 종일 검사했다' '이제!? 나 지금 퇴근하는데 내가 그리로 갈까?' '언지 오지 마라 지금 택시 탔다' '그러면 우리 집으로 택시 타고 와, 같이 저녁 먹고 자고 가' '언 지, 집에 가가 쉴란다. 끊자' 전화를 끊고 수분이 지나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퇴근시간인데도 구급차는 빨랐다. 응급실에 들어갔다.


코로나 백신을 맞길 잘했다. 안 그랬으면 병원검진이 더 느려졌겠다 싶다. 딸이 신청해 줘서 편히 맞을 수 있었다. 요새는 백신 안 맞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인데 뭐. 응급실에 정태를 눕히고는 한참을 조용하더니 내일 아침에 입원수속을 밟는다고 한다. 곧 나갈 수 있겠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낮도 밤도 밝은 응급실 한편에서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누워 병원일 하는 바쁜 사람들을 두리번거리다, 잠들었다, 놀래서 깨다를 반복하던 긴 시간이 흐르고서야 흰 가운을 입고 흰색 마스크를 낀 의사가 앞에 섰다. '보호자 연락하셔서 오셔야 됩니다' '보호자고 머고 없으이께네 알아서 하소. 내는 여기서 나가야 되니까는. 사람을 이래 가둬놓고' 짧은 대화가 끝나고 입원실로 옮겨진다고 채비를 한다. 병상에 눕혀진 채로 끌려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지나고 겨우 입원실로 옮겨지자 허기가 졌다. 병원밥이 나왔다. 허기가 졌는데도 영 씹기 힘들다. 다시 식기구 뚜껑을 대충 덮고 누웠다가 입원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놓는 곳에 따라 식판을 내놓은 다음 다시 누웠다. 얼마나 시간이 또 흘렀을까 의사가 왔다. '암세포가 간에 점찍어 놓은 것처럼 흩어져 있는 상태라 수술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현재로서는 손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보호자 상담이 필요해서 연락처가 필요합니다' '공일공...' 뒤에 간호사가 그제야 받아 적는다. 간호사가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그놈의 보호자 내가 아픈데 보호자가 뭐가 필요하다고 딸 전화번호를 겨우 넘기고 '내는 보호자고 머고 없고, 남인 듯 살아온 사람이니까 연락하지 말고 내 알아서 하니께 그쪽으로 전화하지 마소' 딸에게 전화하지 마라고 성질을 부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정태 씨 보호자 되시죠. 여기는 울산대학교병원입니다. 교수님 곧 전화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울산대학교 병원입니다. 이정태 씨 입원하셨습니다. 보호자 하고는 왕래 없이 지낸다고 하시던데 지금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라 병원으로 오셨으면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왕래 없이 지내는 것 아니에요. 아버지 입원하셨나요? 원체 그런 걸로 말씀 안 해주셔서요. 제가 6시 이후로 퇴근해야 병원에 갈 수 있는데 그때 가도 될까요'

'아니요. 진료시간에 오셔서 진료 보실 때 옆에 계셔야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따님 말고 아드님도 있다고 하시던데 오실 수 없으신가요'

'네. 한번 조율해 보도록 할게요'

동생은 유독 그해에 일이 바빴고 나는 그해 반차 하나가 남아있었다.

'네 울산대학교 병원입니다'

'안녕하세요. 금방 전화통화 했던 이정태 씨 보호자입니다. 도저히 시간을 뺄 수 없어서 전화로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주말이랑 저녁에는 아버지 보러 갈 거거든요'

'간암이시고 말기입니다. 암세포가 곳곳에 점찍듯이 퍼져있어서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식도 어려울까요'

'어렵습니다. 현재로서는 그냥 지켜보는 방법 밖엔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학병원은 우리 집에서 가까웠지만 코로나로 인해 퇴근하고는 면회를 갈 수 조차 없었다. 차로는 5분도 안 걸렸고 걸어서는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렸다. 주말이 오고 정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병원 갈 건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니면 뭘 좀 사갈까? '오지 마라. 여 못 들어온다. 아무도 못 온다. 코로나라가 아무도 안 오고 들여보내주지도 안 한다 카드라' '내가 그래도 어떻게든 들어가 볼게. 필요한 것만 말해줘 뭐가 갈까?' '손톱깎이, 빵 하나, 우유 하나, 많이 사 오지 마레이 다 못 먹는다' 병원으로 빠른 걸음으로 걷다 지나치는 슈퍼에서 손톱깎이를 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서 빵을 잔뜩 샀다. 병원 문 앞에서 상황 설명을 하고 경비가 어딘가 전화를 한참 하고서야 일회용 위생모, 일회용 가운을 받아 들고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 내가 불렀다. '어예 들어왔노' 정태가 내색 없이 반겼다. 정태의 말처럼 코로나로 인해 면회객은 나뿐이었다. 정태는 그냥 정태 그대로였다. 아무리 의사가 나에게 어떤 설명을 했어도 일주일 내내 어떤 상상을 했어도 병실 침대에 앉아 반기는 정태는 그대로였다. 아침부터 끓여댄 닭죽을 먼저 꺼냈다. '안 먹는다 가가라, 안 먹는다' 정태는 끝끝내 먹지 않았다. '하나만 사오라캣 드만 무슨 빵을 이래 많이 사왔노 안 먹으면 이거 다 갖다 버리는데' 정태는 인상을 썼다. '아빠 담배도 못 피우겠네, 술도 못 먹고 그것 참 잘됐다. 이제부터라도 같이 운동 열심히 하고 하면 낫는다. 담배 안 핀 지 며칠 됐지?' 정태는 손가락 다섯 개를 다 펴서 보여주었고 같이 웃었다. 다음날 다시 빠른 걸음을 걸으며 정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오늘은 뭐 먹고 싶어' '오지 마라. 마 오지 마라. 속 시끄럽다' '어 잠깐만 갈려고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말해봐' '식혜' 나는 얼른 슈퍼에 들러 캔 식혜 세 캔을 샀다. 어제 한번 해봤으니 똑같이 설명을 하고 똑같이 경비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일회용 모자와 일회용 가운을 받아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 정태는 영 기대 안 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내색 없이 반겼다. '식혜 사 왔다' '누가 다 먹는다고 다 가가라. 이거 빵도 이거 어제 다 못 묵고 이거 다 가가라' 정태는 또 인상을 찌푸렸다.


월요일이 되면 또 출근을 해야 했다. 그게 미안해서 한 캔이어야 되는 식혜가 세 캔이 되고, 한 봉지면 되는 빵이 여러 봉지가 되었다. 정태가 인상을 찌푸리는데도 나는 그렇게 또 내가 주고 싶은 것만 잔뜩 주고 나섰다.




2021년 11월 22일. 일주일 만에 쐬는 바깥공기다. 제대로 쬐는 햇살, 다시는 못 쬘 줄 알았는데 밖에 정리해야 될 것들이 천지인데 병원에 있기 싫어 소리 몇 번 질렀더니 결국 일주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혼자 퇴원 수속을 하고 계산도 하고 서류를 잔뜩 챙겨 나왔다. 딸이 전화로 이서류 저서류 알려주고 문자 보내줘서 보여주고받아오긴 했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인다. 걷기 힘들다. 약국에서 약 받아 가라는데 약국이 어디 있는지도 찾기 힘들다. 피곤하니까 그냥 갈란다. 택시를 잡고 집으로 향했다. 한참을 가서 익숙한 원룸 건물 앞에 택시가 섰다. 일주일 만에 오는데도 더 긴 시간 나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아들이 왔다. 일하다 말고는 오는 길에 사 오라고 부탁한 수건 한 장, 쓰레기봉투 큰 것을 사들고 왔다. 다들 일하느라 바쁘다. 일해야지. 씻고 쓰레기 더미 같은 집을 정리했다. 꽁치통조림, 라면, 촌에서 가져온 먹다 남은 반찬들, 양말, 속옷, 허리띠, 모자, 수첩, 옷, 잡다한 물건들 그중에서도 필요한 속옷, 양말, 수첩, 모자만 챙기고 몽땅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챙긴 짐을 기아봉고 트럭 뒷자리에 올려놓고 아들이 다시 회사로 가기 전에 밥이나 한 그릇 먹자고 한다. 주위에는 식당이 없다. 스치듯 본 것 같았던 고등어백반집 하나를 찾았다. 고등어 한 마리를 배를 갈라 펼쳐 기름에 거뭇하기도 노릇하기도 하게 바싹 구운 고등어와 건더기는 얼마 없지만 뜨끈한 된장찌개에 오랜만에 밥 다운 밥을 잔뜩 먹었다. 아들은 회사로 가고 딸은 자기 집으로 오라고 전화가 왔다. 대학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입원하라고 전화가 왔다. 죽을 때가 되니 오라는 곳이 많은 데 갈 곳은 없다. 피곤하다. 지친다. 근처 여관방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2021년 11월 24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여관방에 전화가 울렸다. 퇴실시간이 되어간다는 전화다. 이틀묵을 돈을 지불했는데 이틀이 지났다. 무음 해놓았던 전화기를 열어보았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잔뜩 와있다. 촌에 어머니도 전화가 와있다. 지난 주말 연락도 안 받고 촌에도 안 갔더니 전화가 제법 온다. 다시 휴대전화를 닫는다. 명치가 많이 아프고 어딘지 모르게 계속해서 쑤신다. 밥다운 밥도 먹어야 될 것 같다. 밥도 먹고 약을 찾으러 대학병원 근처로 가봐야겠다.




'여보세요'

'이정태 씨 보호자 되시죠. 여기 울산대학병원 호스피스병동입니다. 이정태 씨가 호스피스 병동 입원 안내를 받으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설명드렸는데도 퇴원 원하셔서 퇴원 수속 밟으셨는데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서 호스피스 입원 권유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퇴원하고 싶으시면 퇴원 일단 하시고 전달드려보겠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혹시 연락할 일 있으시면 이 번호로 바로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퇴원하는 날 신랑이 야간근무라 아버지 퇴원하는 길 좀 봐주면 안 되겠냐고 연락해 봤더니 여간 시큰둥한 대답에 더는 부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더는 부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퇴원했다는 정태는 전화도 안 받는다.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간간히 문자를 보내어 한 번씩 문자를 읽어냈다는 표시만으로 안도하고 다시 일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일상에 머물 뿐이었다.


그깟 회사 일이 뭐라고, 그깟 눈치를 뭣하러 그렇게 보고, 그깟 것들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했는지. 그때는 그깟 것들이 모두 최선이라 여겼다. 진짜 최선이 뭔지 모르고 전화받지 않는 정태를 미워했다. 집에 오라는데 오지 않는 정태를 또 미워했다. 필요한 걸 해달라고 화내며 요구하지 않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나를 혼내지 않는 그런 정태를 미워했다. 스스로 발로 차고 나갈 용기조차 없었던 나는 전 법무부장관 딸만큼 똑똑하다고 말하는 정태에게 미안하게도 결국 지구에서 제일 멍청했다. 그때까지도 호스피스 병동 입원 제안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




2021년 그해 여름.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 사람들은 온통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녔고 어딜 가나 열체크 신분기록이 필수였다. 출생 연도 별로 구분 지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신청해 정해진 일정에 맞는 것이 국민의 덕목이었고 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를 구분하는 신분제도가 새로 생겼다. 술을 좋아하는 정태에게 일부러 백신 신청을 해주지 않았고 정태는 그것을 못내 서운해했다. '천지 백신 맞고 돌아다니는데 내만 신청할 줄 몰래가 못 맞는다' '아빠, 아빠는 술도 그렇게 많이 마시고 몸이 백신을 못 견뎌낼 수도 있어서 내가 신청 안 해준다' '내만 못 맞아가 일도 못하고 식당도 못드간다' '알았어 신청해 줄게' 성화에 못 이긴 채 정태의 집에서 가까운 지정병원을 찾아내 나름 후기 좋은 백신을 골라가며 신청해 주었다. 정태는 흡족해했고 몇 개월 뒤 나는 그때의 정태까지 꺼내어 미워했다.


그 미움이 나를 향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구에서 제일 어리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