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영웅] 정태
'진돗개 하나 비상'
전역한 지 몇 달안 된 동생에게 온 정태의 문자
'누나야 아빠가 오라는데'
'왜'
'비상이라는데 무슨 일 있는갑다'
'또 뭐고, 가자'
2012년 여름, 어느 금요일 밤 자정이 너머 가기 전
어디서 싸움이라도 났나 싶어, 여전히 어색한 파란 마티즈의 운전대를 잡았다.
동생에게 알려준 도착 위치로 덕하의 어느 아파트 앞 굴다리 옆이라는 곳을 울산 북구에서 한 시간 남짓 운전해 겨우 찾아냈을 때 정태의 은색 마티즈가 보였다.
동생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
'어'
어 라고 하는 동생의 목소리만 들렸다.
전화를 끊고 동생은 은색마티즈를 열어 정태가 가져다 달라고 했다며 지갑이랑 통장, 자동차 열쇠를 찾아보자고 했다.
동생이 나보다 먼저 찾았다.
정태가 말한 것들을 들고 은색마티즈 차문을 잠그고 정태가 알려준 곳까지 다시 5분 정도 걸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온몸으로 느껴지는 여름밤의 벌레들과 슬슬 차기 시작하는 땀들이 섞여 짜증이 날랑 말랑 할때 쯔음 가로등 없이 어두운 벤치와 걸터앉아 반기는 정태가 보였다.
'아따 마, 소주 한잔 묵고 가는데 경찰차가 번쩍번쩍거리는 거라. 시동 끄고 차문도 못 잠그고 뚝길로 내려왔는데 지갑도 안 들고 오고 차키도 없는기라. 밤새 도둑 맞아뿌거든. 비상시에는 항상 이래 오라카면 달려온나'
할 말이 많았지만 할 수도 없이 절레절레 고개만 흔들었다.
'음주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나, 소주 한잔도 안된다'
'딱! 한잔 무따, 아따 식겁했네'
뭘 잘했다고 '경찰 없드나, 경찰차도 없드나' 제차 물으며
동생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웃는 정태
한숨과 함께
작은 자물쇠 하나 달린 정태의 집에 도둑이든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땐 다음날 새벽이었고
정태의 집은 나에게
거리도 마음도 멀기만 했다.
'퇴근하고 온나 저녁 먹자'
파란 마티즈가 제법 손에 익은 어느 화요일 밤의 퇴근길.
평소 같으면 다음 날 새벽부터 출근이라 엄두가 안 나지만 이번 주는 평소랑 다르게 수요일이 공휴일이라 툭하면 저녁 먹으러 파란 마티즈를 타고 오라는 정태에게 귀찮아하며 거절하지 않고 울산 동구에서 덕하까지 늦은 저녁을 얻어먹으러 퇴근길 방향을 틀었다.
도착했을 땐 이미 해는 저물었고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언제부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정태는 아무 내색 없이 반겼다.
'옷이 와일로'
멋 부린다고 땡땡이 카라가 있는 연녹색 반팔 티셔츠에 회색 머메이드 치마를 입고 있는 나에게 정태가 인상을 쿡 찡그리며 말했다.
'왜 뭐가 어때서'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머 먹고싶노'
'아무꺼나 배고프다'
'통닭 한 마리 물래'
썩 마음에 든다는 눈짓을 하며 끄덕였다.
정태는 덕하시장 길 건너 치킨집에 들어갔다.
따라 들어서기도 전에 기름에 튀겨지는 치킨냄새가 뱃속을 자극했다.
식당 안은 오래된 살구색 철제 다리를 가진 테이블이 서넛 되었고 우리는 제일 입구 쪽에 앉았다.
빨간 배경으로 후라이트, 양념치킨, 간장치킨이 단출하게 적힌 메뉴판이 양쪽 벽에 걸려 있었다.
'후라이드 양념 한 마리씩 하고 소주 한 병 주쏘. 우리 딸내미'
정태는 묻지도 않은 나의 정체까지 밝히며 치킨을 주문했다.
'회사 일은 할만하나'
'그냥 글치뭐'
'머라카는 놈 있그덩 다 때려치아뿐다 카고 나온나'
'내가 아빠가? 쪼매 힘들다고 다 때려치우게'
정태는 이를 못 감추고 웃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툭하면 다 때려치우라고 하는 정태의 말에
더 때려치우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다.
치킨이 나왔다.
갓 튀겨내어 양념에 버무린 치킨을 베어문 허기진 나는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여가 경상남도 경상북도 합쳐가 최고 맛있는 집이다 명장 집이다.'
체인점 이름이 적힌 소스통을 들고 있는 주인아주머니가 들리도록 이야기하며 정태는 엄지를 내밀었다.
콧방귀를 뀌면서도 맛있게 먹고서 울산 북구까지 돌아오는 그 길은 여전히 멀고 더욱 낯설었다.
울산 동구에 신혼집을 꾸린 지 2년이 채 안되었을 때쯤, 2015년 6월 울산대교가 개통했다.
제법 앉아 곤지곤지 박수를 치는 딸을 카시트에 태워 울산대교를 넘었다.
'짜장면 무러 온나'
정태의 일터까지 한 시간 남짓 걸리던 길을 울산대교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도록 성큼 이어주었다.
어느 큰길 사거리 앞 공터에 자재들을 잔뜩 쌓아놓고 물량을 받아 용접일을 하던 정태는.
그렇다 할 안전장비도 장치도 없이 앉아 아무 내색 없이 나를 또 반기고는
길 건너 바로 보이는 커다란 중식당으로 성큼성큼 무단횡단을 하며 건넜다.
'세트 먹자'
내가 말했다.
'다 묵겠나'
'먹지'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 하나를 배부르게 먹었다.
'먹고 싶은 거 없나. 사주께'
울산대교를 건넜다.
'회 사주께'
울산대교를 건넜다.
'돼지 한 마리 잡았다. 주소 찍어 와보레이'
울산대교를 건넜다.
'낚지 물래. 장생포서 보자'
울산대교를 건넜다.
제법 추워진 날씨도 강렬한 햇살아래 따스웠던 날
장생포 바다는 한없이 반짝여 보였고
바다 너머로 보이는 화학단지마저 잔잔해 보였다.
이제는 두 발짝 세 발짝 걸어 다니는 딸은
이리 가자 저리 가자 손을 끌어당겨 평온한 바다 앞 여러 개의 벤치를 두고도 앉을 수 없었다.
정태는 투명한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벤치에 앉아있었다.
봉지 안에는 깐 호두가 가득 들어있었다.
'햇 호두다 몸에 좋다 무라'
'꼭꼭 씹어 무라 아무도 주지말고 니 다무라'
2018년 6월, 둘째가 뛰어다닐 만큼 자라고서 재취업의 기회가 주어져 매일 아침 울산대교를 건너게 되었다.
'저녁묵자 고기사주께 온나'
정태의 집에서 10분쯤 되는 거리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내게 정태는 저녁마다 저녁을 먹자고 전화를 했다.
'애들은 우짜고! 집에 가야지, 애들 저녁해 줘야지 아빠도 같이 가든지'
'집에 가그라, 아(애)들 봐라'
저녁마다 저녁 먹자고 하던 전화가 뜸 할 때쯤
출근길 전화가 울렸다.
'어디고'
'출근하지'
'너거회사 여 맞제'
'회사에 왔나?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블록마다 화학공장이 줄지어진 도로 양쪽으로 나열된 주차장에 낯익은 하얀색 기아봉고 운전석 유리 너머로 사고 치지 말고 있으라 했더니 차에 가만히 앉아있는 정태가 보였다.
언제부터 와있었는지 정태는 또 내색 없이 운전석 창문을 내리며 나를 반겼다.
정태는 곶감상자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달드라, 얼른 가라 지각할라'
정태의 차는 한참을 뒤돌아봐도 언제 갈런지 출발하지 않았다.
'퇴근했나'
'지금 나가려고 왜?'
'앞에 와보래'
퇴근길 내 차 옆에 나란히 보이는 흰색 기아봉고
'차에 올려놔라 냄새 좋다'
초록이기도 노랗기도 큼직한 한 모과 세알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우리 집에 가자 저녁 먹자 같이'
'언지, 아(애)들봐라 얼른 가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모과를 다시 주워 올리고 차 안 가득 퍼지는 모과 냄새를 맡으며 울산대교를 건너 집으로 가는 길
향긋한 모과를 가져왔지만 하나를 두고 온 마음은 떨칠 수 없었고 며칠도 못 가 썩어가는 모과가 미웠다.
'수첩 있나'
새해가 밝아오는 퇴근길 흰색 기아봉고가 또 내 차옆에 있다.
'있다, 오늘은 저녁 먹으러 가자, 애들도 보고'
'잡채 해주나'
정태가 웬일로 따라나섰다.
흰색 기아봉고를 뒤에 붙인 작은 베이지색 모닝은 울산대교를 넘어 집으로 향했다.
항상 꽉 차는 냉장고가 그날따라 왜 이렇게 텅 비었는지
자신 있는 시판 소스만 부으면 금세 되는 순두부찌개가
그날따라 왜 이렇게 맛이 안 나는지
따스운 집밥 한 끼 해주고 싶었는데 퇴근하고도 후다닥 잘하는데 왜 하필 그날따라 그렇게 잘 안되는지
그 맛 안나는 순두부찌개를 정태는 왜 그렇게 밉게도 맛있게 싹 먹는지
왜 그렇게 한참을 와놓고 금세 간다고 가버리는지
맛없는 순두부찌개, 커피, 회사 수첩
내가 줄 수 있는 거라곤 왜 그것밖에 없었는지
더 이상 회사 앞에서 흰색 기아봉고를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울산대교를 건너 정태를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따뜻하고 익숙한 그 어떤 것을 손에 쥐어주는 이 없게 되었을 때
정태에게 내어준 어떤 기억들을 꺼내보아도
내가 정태의 손에 쥐어준 것은 그저 회색이었고
정태가 내 손에 쥐어준 모든 것은 다채로웠다.
울산대교는 정태와 나의 금세 잔잔해 보이기도 금세 성나보이기도 하는
뒤죽박죽 반짝이는 깊은 바다의 지름길이 되어주었고
다시는 건널 수 없는 마음을 묻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