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작가:영웅] 정태

by 영웅

'너네 아빠 아니야?'

떡볶이를 사 먹으려 들른 분식집에서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 둘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본인들을 부른 양 두리번거렸다.


'응 아니야'

나는 대답했다.


교복 조끼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인지

내 안에서 울려오는 소리인지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환한 대낮의 학교 앞 길 건너 사거리 분식집 옆 편의점

파라솔 달린 파란색 동그란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는 비어있기도 먹다 말기도 한 맥주캔 몇 개와

뜯어 펼쳐진 과자 봉지들, 말린 쥐포, 땅콩,

소주 빈병들과 비어 가는 병하나 종이컵들이 올려져 있었다.

테이블 주위로 파란색 플라스틱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마주 보고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

그중 큰 눈은 반달이 되고 입은 삐죽삐죽 신나게 웃어대며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정태가 있었다.


일이 일찍 끝났나 보다.

머리는 엉망이고 더운지 바짓단은 둘둘 말아 올라가 있고

양말은 벗은 건지 신은 건지 발에 겨우 끼워져 구겨신은 신발 위에 올려져 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정태였고

찰나에도 알아볼 수 있는 정태였다.

정태는 교복 입은 나를 온 마음 다해 신나게 불렀고

나는 온 마음 담아 외면했다.


'너 이름 부르는 거 같은데?'

'모르는 사람이야 착각했겠지'

그 봄에 나는 그렇게 돌아섰다


내가 외면한 건 대낮에 술 취한 정태였을까.

오전 내 일한 흔적 가득한 정태의 청색작업복이었을까.




친척들이 오랜만에 놀러 오거나

할머니께서 우리 집으로 오시는 날에는 보내는 마음이 힘이 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1분, 2분 그렇게 조금만 더 잡고 싶었다.


손님이 오는 날이면 정태는 낮부터 술을 진탕 마셨다.

이유 없이 본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술을

정태는 몸서리쳐지도록 마셨다.


손님들 앞에서 술을 들이키는 정태의 술기운은 즐거움이 되었다.

돌아갈 곳이 있던 손님들에게 그런 정태의 농담은 즐거움이었다.

손님들이 떠나고 남은 정태의 즐거움은 화로 바뀌었다.

정태의 화 앞에 남는 건 우리 셋 뿐이었다.

돌아갈 곳이 정태가 있는 집이었던 엄마, 나, 동생,

결코, 조용할 수 없었다.


가지마라고 떼쓰는 나의 아쉬움은

손님이 정들어 내밀어보는 따스한 마음이 아닌

오늘 밤 흘릴 두려움의 전조일 뿐이었다.


자리를 잃는 물건들

날아다니는 욕지거리들

그렇게 또 모두가 지나간 밤

방안에 숨어 동생과 조용히 정태가 잠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쩌면 나의 외면은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었을까.




해바라기 가득한 2017년 여름,

나는 이제 돌이 되어가는 둘째와 세 살 된 딸을 데리고 해바라기 가득한 공원으로 갔다.

울산의 태화강이다.

태화강은 나날이 발전해 갈 때마다 그 계절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정태도 부르고 엄마도 불렀다.

각각 다른 집에서 따로 살지만 한데 모여 거니는 것이 가족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꿈쩍하지 않는 사이가 된 것이 가족 같았다.


날씨도 우리처럼 짓궂어 해가 쨍쨍하다 소나기가 쏟아진다.

정태는 둘째가 앉은 유모차를 번쩍 들어 징검다리를 건넜다.

한 칸 한 칸 유모차를 들고 건너는 정태 머리 위로 소나기도 비켜갔다.


교복을 입는 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정태의 차를 타고 주말에 할머니댁을 다녀오던 밤이면

집이 가까워질 때마다 걷기 싫어 자는 척을 했다.

정태는 트렁크에 챙겨 온 쌀이며 과일이며 채소들도 가득인데

나를 번쩍 안아 주차장에서 현관으로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로 다시 방 안으로 눕혀주었다.


유모차를 들고 걷는 정태를 보며 나는 내가 외면한 다른 정태를 떠올렸다.


멀리서 외쳤다.

'아빠!'

크게 외쳤다.

'아빠!'

정태가 화난 표정을 지을 때까지도 외쳤다.

'와!'하고 대답하는 정태


멀리서 정태가 보일 때마다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외쳤다.

'아빠!'

'와!'라고 대답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외면한 그 순간에 멈춰있던 웃고 있는 정태를 스스로 다독였다.


더 이상 정태를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때

'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나를 부르던

그 봄의 정태 얼굴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온 마음 담아 후회한다.




술에 잔뜩 취해 화가 나 있는 정태 앞에

'제발 그만하세요 아빠'

잘못한 것 없이 싹싹 빌던 찰나

눈물이 다 떨어져 눈이 뜬것을 알아챈 내게 보인 정태의 눈


벌게진 눈을 부릅뜨고 흔들리던 정태의 눈동자

후회 담긴 그 눈을

나는 기억한다.


'미안하다 후회한다' 그 따스운 말들을 모두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정태의 뒷모습.

정태는 그렇게 스스로도 외면했다.


내가 정태에게 손님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꿈꾸던 어린 나에게

정태는 온 마음 담아 미안했을까.


정태도 온 마음 담아 후회했을까.


계절마다 박혀있는 내가 외면한 정태

정태의 계절에도 같은 것이 박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