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영웅] 정태
'정태야 담배 있나'
입추가 한참을 지나고도 늦더위가 기승을 벌이는 날, 벌초를 하다 말던 아버지는 정태에게 물었다.
고등학교 2학년의 정태
'아 우리 아버지가 이 더운 날 벌초가 얼마나 힘이 들면 어린 나한테 담배가 있냐고 물어볼까'
마음속으로 외치던 정태는 한참을 심각하게 고민하다,
주머니 속 담배와 성냥을 꺼내어 풀밭에 몰래 숨겼다.
'아 아부지 누가 여기 담배 떨어트려놨네요 와! 이 옆에 성냥까지 같이 버려놨노 누고'
라며 '아부지 여기요' 하고 정태 스스로는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갖다 드렸다.
후로도 정태의 한쪽 주머니에는 언제나 담배가 함께 했고
정태는 해마다 들판이 누렇게 익어가고 벼의 알이 꽉 차갈때 쯔음엔 벌초를 하러 청송 고향산을 올랐다.
가을 산 벌초 가는 길
선산 초입의 밤나무를 지날 땐 밤송이가 머리 위로 떨어질까 조심해야 했다.
따지 않은 주황색 감들과 그 아래로 떨어진 감과 감나무 잎들이 물감으로 찍어놓은 듯
녹갈색 사이사이 주홍빛이 물들어있었고
아직 이파리가 가득한 나무의 잎들도 여름보다는 말라 보였다.
떨어진 콩인 양 풀 먹는 염소들이 두고 간 염소똥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길을 성큼성큼 잘 비켜가야 했다.
세 걸음에 아버지의 막걸리 주전자를 곱씹고
열 걸음에 멀리서 손 흔들던 누나를 곱씹고
스무 걸음에 강물에 투망을 던지던 형을 곱씹으며
신발 밑으로 들려오는 산 밟히는 소리하나까지 중년이 넘어간 정태 홀로 오르는 산은
낯선 것 하나 없었다.
익숙한 길 끝에 마주하는 산소에서 정태는
담배 한 개비 물고 시끄러운 기계음을 내며 알 수 없는 담담한 마음까지 정리했다.
정태에게 담배는 아버지였을까.
나와 동생이 새 가정을 꾸리고 집안에는 '절대 금연' 보이지 않는 딱지가 붙었다.
정태는 나의 집에 올 때면 주차장이 무슨 방공호냐며 건너 길가에 주차하고는
집 앞 공원, 벤치, 분식집, 문구점, 빵집 밖에서 한참을 같이 돌아다니기도 앉아있기도 하다 기아 봉고 운전석에 올랐다.
까만 얼굴에 하얀 담배를 물고 핸들을 꽉 잡은 오른손과 그옆에 슬쩍올린 정태의 왼손이 열린 창문 너머로 보였다. 왼쪽 사이드미러로 비친 정태의 눈은 간간히 내쪽을 바라 보았고 주름진 까만 얼굴과 운전석 열린 창문턱에 걸쳐진 왼쪽 팔꿈치는 연기와 함께 멀어졌다.
잠시도 금연구역에는 들리지 않겠다는 정태의 의지였다.
기아 봉고는 정태가 제법 오래 탄 정태의 마지막 차다.
새 차였다. 흰색의 기아 봉고, 4인승의 문을 앞뒤로 열어 보이며 연신 자랑하던 정태
그 해에 정태는 기아봉고를 만났고 나는 결혼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오는 날에는
'소주 한 병 도'라는 주문과
없는 솜씨로 이것저것 차려낸 밥을 맛있게도 먹고서는
한 손에는 담배 한 개비를 언제 꺼냈는지 꼭 쥐고 있었다.
혼자 올 때도 있고, 동생과 올 때도 있고, 아주 가끔은 엄마와 올 적도 있었다.
나의 결혼은 우리 넷의 시끄러움을 한풀 꺽었고,
다음 해에 태어난 첫 손녀의 울음소리는 정태의 술주정을 한풀 꺾었다.
'야들 집에 소주가 어딨다고 올 때마다 소주 달라하고 그라노' 엄마가 달래면
'박스로 쌓아놓고 있드만은'
어린 손녀를 보러 시간 나면 달려오는 정태는 엄마보다 우리 집을 더 잘 알았다.
내가 웃으며 소주 한 병 잔하나를 꺼내드리자
엄마는 '니는 술먹지마레이' 하며 내 등짝을 살짜기 친다.
그런 모든 게 밉지 않았다.
결혼 전 나는 대학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아침 6시 버스를 타고 밀리는 출근길을 한 시간 넘게 달려 겨우 사무실에 도착해
언제 퇴근할지 모르는 하루를 보내고 버스에 몸을 실어 내리면 달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 직장생활을 2년 정도 했을 때쯤 늦었다 싶은 마음에 얼른 2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정태에게 전화했다.
정태는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어 그 주말 자동차 중고시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2012년 5월 나는 짙은 오렌지색 스웨터에 연청바지를 입고
일주일 전 제대한 동생과 버스를 타고 정태를 만나러 갔다.
중고차 시장에 들어서자 2층짜리 낮지만 길게 이어진 건물에는 중고차매매상들이 운영하는 사무실들이
재각기 간판을 달고 영업하고 있었고 그 밖으로 수백 대의 차들이 차종무관하게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이 많은 차들이 주인을 만나기 전에는 땡볕아래 가만히 서있어야 하나 문득 궁금했다.
사무실이 나열된 긴 건물을 삼분의 이 정도 지났을 때 정태는 본인의 차를 주차했고
그 바로 앞에 있는 사무실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갔다.
판매원은 우리를 다시 데리고 나와 여기저기 전화도 해보고
서류철에 꽂힌 서류도 보면서 경차는 워낙 인기가 좋아 몇 대 남은 게 없다며
그 중 관리가 잘된 것 서너 대를 보여주었다.
2005년식 마티즈 500만 원.
생각보다 중고차 시세가 비쌌다. 정태는 타 지역에 가보자며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나는 입을 삐쭉거렸다.
불 붙인 담배 한 까치가 타는 동안 정태는 내 표정만 살피는것 같았다.
'50만 원 네고 안되는교?' 정태가 물었다.
판매원은 안타까운 몸짓으로 몸을 배배 꼬다가 더 묻지 않았지만 승낙했다.
그렇게 나의 첫차,
10만 km를 달리다 내 앞에 나타난 회색 페브릭 시트의 파란색 중고마티즈 앞에서
정태는 '타라!'를 외쳤다.
정태는 조수석에 탔고 나는 운전석에 탔다. 뒤에 탄 동생도 기분 좋은지 말이 많았다.
마티즈 안이 꽉 찾다.
정태는 손가락을 까딱했다. 길안내였다.
'줄이고' '올리고' 속도를 말하는 것이였다.
자연스레 미끄러지듯 왼쪽 가슴팍 주머니에서 꺼내드는 담배
'아빠 담배 피지마! 내 차에서 담배 피지마!'
다급한 나의 목소리.
정태는 몰랐다. 20여 년간 흡연구역에서 자라온 우리가
성인이 된 후 본인 없는 곳 전체에 금연딱지를 붙여놨을 줄은
그것이 불과 15분 전에 만난 내 차일 지라도
정태는 인상을 구기고 조수석에 한참을
라이터를 담뱃갑에 톡톡 치기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담뱃갑에 톡톡 쳐보기도 했다.
'저기 저 갓길에 잠시 세워봐라'
지나쳤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아빠 미안'
운전면허가 나온지 일주일된 나의 진심어린 사과였다.
정태의 표정이 굳어갔고 담배는 어느새 귀에 한 개비 꽂혀있고 손에 한 개비 들려있었다.
정태가 가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길은 영천 막내고모댁이었고
모든 갓길을 지나 이미 차는 고속도로를 올라버렸다.
정태가 속도를 줄이라 하면 속도계는 0을 가리킬 만큼 줄었고
속도를 늘이라고 하면 급재동 할 만큼 속도를 올려가며 두 시간을 넘게 달렸다.
그사이 정태의 귀 양쪽에는 담배가 하나씩 꽂혀있었고
손에는 한 개비 한 개비 꺼내본 담배가 다섯 까치는 되었다.
그 길을 다 와서야 정태가 세워보라는 슈퍼 앞에 잠시 세울 수 있었다.
정태는 담배를 입에 문채 내려 저 멀리서 불을 붙였고
조금 지나 두부한모와 소주 한 병을 사 왔다.
고모댁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가보는 막내고모 댁이었다.
막내고모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결혼을 해 아이 셋을 낳았다.
막내 고모부는 축산 관련 공무원직을 맡아 시골 작은 주택에 소와 닭등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운전하느라 잔뜩 긴장한 나는 이것저것 고모부가 설명해 주는 주위를 전혀 집중할 수 없었지만
시골치고는 제법 젊은 감성의 집이라 여겨 자부심 있어 보였다.
1층 낮은 주택인 고모댁으로 들어가서야 물 한 모금 마시고 안정할 수 있었다.
할머니도 고모댁에 계셨다. 그제야 고모댁으로 왜 우리를 이끌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래가 집에 가면 내 환갑되긋다'
정태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특유의 농으로 나를 놀렸고
본인이 사 온 소주 한 병에 두부한모를 뜯어 고모가 내어준 수저와 잔으로 허기를 달랬다.
'온다고 했으면 밥이라도 해놨지'
고모가 말하며 고모댁에 있던 카레를 동생에게 내주었다.
나는 입맛이 없었다.
'느그 오빠도 한 그릇 주지 왜'
'안 먹는다 한다' 할머니 물음에 고모가 말했다.
돌아와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주었을 때,
'너네 아빠 내가 카레 해서 뜨신 밥에 내주면 맛있다고 큰 그릇에 가득 먹고 그랬는데 한 그릇 주지'
하고 말했다.
두부한모와 소주 한 병을 싹 비운 정태가 '가자' 하고 일어나자
정태를 따라 모두가 밖으로 나갔다.
밖은 이미 해가 저물었고 늦은 봄 선선한 바람에 풀들이 잔잔히 흔들리고 가축의 분변냄새가 흘러들었다.
구름이 넓디넓게 낀 늦은 봄과 초여름의 가운데 있는 시골의 초저녁은 온갖 생물들이 내는 소리로 가득했다.
정태가 다시 조수석에 올라타고
나는 운전석 동생은 뒷자리에 올라, 왔던 길을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도 속도계는 여전히 0으로 줄어들기도
갑자기 웅 소리를 내며 급속을 하기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였고
그사이 정태와 동생은 잠들었다 깜짝 놀라 깨기를 반복하였다.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킬 때쯤 정태의 손가락 길안내가 끝났고 도착한 곳은 정태의 집 앞이었다.
정태의 손에는 빈 담뱃갑과 몽땅 꺼내진 담배개비들이 곱게도 들려있었다.
정태는 빈속에 취기가 올라오는 건지 금단현상 때문인지 짧은 욕을 하며 내렸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가라!'
동생은 무표정했고 나는 정태의 화에 웃음을 터뜨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속도계를 0에서 80으로 오르락내리락시키는 초보운전의 오른 발 놀림
차선하나 바꿀라 치면 차선이 입 벌린 악어라도 되는 양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초보운전의 핸들
옆차도 뒤차도 내 차 옆에 붙으면 화가 잔뜩이다.
액셀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이 요리조리 밟혀 진땀을 흘리는 파란 마티즈와
그 주변의 경적을 끊임없이 울리며 달리는 차들
'시동 꺼뿌라, 운전하다가 저래 빵빵거리고 시끄럽게 난리 치거들랑 가마 세워뿌라 시동 꺼뿌고
내한테 전화해라'
담배 한 개비를 한쪽귀에 꽂고 손에 담배개비가 세 개비쯤 들린 정태가 오랜 침묵 끝에 내뱉은 말
정태에게 나는 어떤 사람 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