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작가:영웅] 정태

by 영웅

언제인지 모를 어리고 어린 날

울산 동쪽 몽돌바다 어딘가 텐트 아래로 네 식구가 누웠다.

심심한 마음에 눈을 감으면 잠이 들었고

떠오르는 햇살이 텐트 안을 텐트빛으로 물들 때 즈음 잠이 깨었다.


그대로 눈을 감은채 귀만 열려있다.

파도가 밀려오고 파도가 밀려갔다.

바람에 웅장하게 밀려오는 파도는

조용히 밀려왔고 시끄럽게 쓸려갔다.


몽돌을 하염없이 잡아가며 쓸려가는 파도의 소리

그 소리를 같이 씹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채 조용히 밀려오는 파도의 시간을 기다리고

다시 몽돌을 씹어대며 쓸리는 파도 소리에 함께 마음을 쓸었다.


미련스러운 파도의 소리.

그 요란한 파도가 '나도 미안했다' 한 번은 해줄 줄 알았는데


끝내

듣지 못했다.




정태는 다시 대학병원으로 향해 겨우 약국을 찾아 약을 탔다. 상그럽게 무슨 약국이 한참 멀리 따닥따닥 붙어있는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많다 하던데 아무리 찾아봐도 찾기가 여간 힘들었다. 받자마자 선자리에서 약 한 봉지를 뜯어 입으로 털어 넣고 차에 탔다. 겨우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었다. 오래 정차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집을 정리하고 나니 그나마 하나 가벼워진 듯했다. 내 집도 아닌데 남의 손에 별것 아닌 짐이라도 내 물건을 빼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운전대는 잡았지만 갈 곳이 없어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언제나 가까이 있다. 처음 결혼하고 울산에 와서는 시내버스만 타면 바다를 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멀쩡한 도시에 버스만 타도 차로 조금만 움직여도 몽돌 바다가 나오니 기억 속의 누구를 꺼내도 함께 바다를 안 본 이가 없다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울산에서 결국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때 울산을 떠나 어머니 계신 촌으로 들어갔으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정태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날도 차고 평일이라 바깥은 어디든 한산했다. 주전 너머 바다 주차장 어딘가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릴까 잠시 고민하다 내리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앉아 가만히 보고 있는 건지 보이는 건지 모를 앞만 보았다. 창문을 열고 마지막일 듯한 담배 한 까치를 물고 불을 붙었다.


해가 반대로 넘어가버린 어둑한 동쪽바다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다 천천히 다시 시동을 걸었다. 북쪽으로 천천히 더 달리다 언덕 위에 있는 모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언덕 높은 곳에 올려진 건물은 창문이 바다 쪽으로 나있어 바다가 잘 보일까 싶었다. 배낭 두 개가 전부인 짐을 들고 모텔 입구로 들어서 카운터 앞에 섰다. '방 하나 주소' 지갑을 뒤적여 현금을 집어냈다. 낮에 병원 앞에 있는 ATM기에서 현금을 잔뜩 뽑았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열쇠를 받고 방으로 올라갔다. 커튼이 꽉 쳐져 컴컴했지만 불을 켜지 않았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커튼을 걷을 생각도 없었다. 그대로 옷을 모두 벗은 채 누웠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새로운 부재중전화, 문자가 와있었다. 대부분 딸의 전화와 문자였고 모르는 번호 하나 어머니 전화도 여전히 있었다. 뻔한 말들의 문자를 읽는 둥 마는 둥 다시 덮고 어두움을 텔레비전 불빛으로 채우고 눈을 감았다. '내가 뭘 그렇게 많이 잘못하고 살았을까. 마누라도 없고, 자식도 없이, 이렇게 혼자, 나는 나대로 힘들게 살았는데, 나는 또 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술좀 먹고 욕 좀 하고 물건 좀 부수고 그런 건 가족이면 응당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뭔 대단한 죄를 졌다고 나한테, 내가 이래 병들어서 모텔방에서 이렇게 누워있어야 되나' 정태는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모른 채 계속해서 생각했다.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정태는 배고픔에 눈을 떴다. 대충 옷을 걸치고 허기를 달래려 모텔 밖을 나왔다. 햇살이 가득했다. 걸어서 식당을 찾느라 길을 헤매고 싶지 않아 운전대를 잡았다. 혼자서 갈만한 식당을 찾기 어려웠다. 한참을 어제 왔던 바닷길을 다시 돌아가 어제 스쳐 보았던 식당 앞에 멈추었다. 전복집이었다. 전복죽 한 그릇 먹을까 싶어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겉이 보이는 것보다 내부는 훨씬 컸다. 아무 빈자리에 앉아 '전복죽 하나 주소'라고 말했다. '전복죽은 2인 이상부터 시킬 수 있어요' 자세히 보니 메뉴판에 2인이상이라고 적혀있었다. '전복밥 하나 주소' '특으로 드릴 까예' '그라소' 주문을 하고 나니 더욱 허기가 졌다. 어제 아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첫 끼니다. '특 전복밥'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 작은 뚝배기에 전복이 올려져 쟁반에 조금씩 담긴 찬들과 함께 내어졌다. 남김없이 싹 긁어먹고 식당을 나서기 전 종이컵에 물 한잔을 받아와 차에 앉아 약한 봉지를 뜯어먹었다. 다시 모텔로 향했다. 카운터에 서서 말했다. '방 일주일 더 있을라 하는데 한 번에 계산해 주소'




'여보세요' '아빠! 어디야?' '밖이다' '어디야, 혼자 있어? 밥은 먹었고?' '금방 무따' '우리 집에 와있어 혼자 자꾸 다니지 말고, 애들도 할아버지 있으면 좋아한다 김서방 야간이니까 낮에 아빠 챙겨줄 수 있다' '언지 됐다마 안 간다 안 간다. 끊어라' 정태 목소리가 점점 힘이 없음이 느껴진다. 많이 아픈가. 일부러 저렇게 작게 말하는 건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빠 운동도 하고, 잘 걷고 잘 먹고 지금이라도 우리 집에 와 아니면 우리 집 근처에 집을 얻자' '서울 병원 예약해 놨어, 제일 빠른 날짜가 그날이래 같이 가자 12월 22일이야' '서울 한방병원도 예약해 놨어 제일 빠른 날짜로 전부 가보자' 계속해서 문자를 보낸다. 여전히 대답 없이 읽었다는 확인으로 답장을 대신한다.


수술도 안된다, 이식도 안된다, 서울 병원은 예약이 한참 멀게나 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만 있어야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다행히 연말에 일주일 쉴 수 있는 휴가가 있어 그날만 기다렸다. 그때 정태를 데리고 서울에 있으면서 희망을 찾아보리라. 그래 다 잘될 거야. 시들어 가는 정태 곁에서 있어주진 못하고 인터넷과 키보드를 두드리며 희망만 찾고 있었다.


2021년 11월 30일 화요일. 퇴근길 전화가 울렸다. '아빠! 어디야' '병원 왔다가 간다' '거기 있어 내 지금 퇴근하고 간다 그리로 갈게, 우리 집에 가자' '언지 너거집에 안 간다. 너거집에 가자하면 그냥 갈란다' '알았어 우리 집에 안 갈게 내가 데려다줄게 잠시만 기다려' 얼른 울산대교를 건너 대학병원 앞으로 갔다. 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를 만나니 아이들과 식사하고 있으라고 알렸다. 정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국이다. 어디고 알았다 글로 갈게' 저녁 6시 벌써 컴컴한 하늘아래 병원과 약국 불빛들이 마구 비치는 길로 천천히 걸어오는 정태가 보였다. 약봉지를 들고 있는 정태는 내색도 없이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길가 난간에 걸터앉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더 큰 소리를 내어 말을 했다. '아빠! 차에 가자!' 결혼식장 신부입장하던 그때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정태의 한쪽 팔을 잡고 천천히 부축하여 모닝 조수석에 정태를 앉혔다. '저녁 먹을래?' 정태가 겨우 말했다. '그러자 뭐 먹을래, 아빠 먹고 싶은 거 있나 내가 사줄게' 정태는 동생은 퇴근했으려나 물었다. 동생도 부를까 물었고 정태는 끄덕였다. 동생은 막 퇴근을 했고 식당을 알려주면 온다고 했다. 정태가 알려주는 식당은 정자 바닷가에 있는 대게와 랍스터가 한상 가득 파는 유명한 집이었다. 일전에 정태가 병원에 가기 훨씬 전 엄마도 정태가 데리고 갔다며 처음으로 랍스터를 먹어봤다며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식당에 도착하고 30분쯤 지나서야 동생이 도착했다. 정태가 음식을 주문했고 여러 번 걸쳐 알록달록한 음식들이 나왔다. 우리는 '이거 먹어봐라' '얼른 먹어라' 별것 아닌 말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눈을 닦아냈다. 대답 없는 정태에게 서울 병원에 꼭 가자는 약속과 좋은 영양제 이야기를 하면서 오랜 시간 식당에 앉아 있었지만 놓인 음식들은 줄어들지 못했고 각자 앞에 휴지만 쌓여갔다.


슬픔이 슬픔 다워지고서 우리는 슬픔마저 그리워했다.


식당을 나서고 서로 우리 집에 가자고 외쳐댔지만 정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했다. 정태의 숙소는 식당 근처에 있었다. 편의점에서 내일 정태가 먹을 죽들을 여러 개 사서 동생이 정태 숙소까지 올려다 주었다. 일단 정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이 차올라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다음날 아침 정태에게 전화를 했다. 정태의 목소리가 한껏 밝았다. '아빠 뭐 해' '아침 묵는다' '뭐 먹어' '팥죽' 어제 사다준 죽을 먹고 있는가 보다. '그래 많이 먹고 약 잘 챙겨 먹어,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있잖아' '알았다' 정태의 목소리가 한결 편안하게 들렸다. 그래 방법은 다 있을 거야. 나는 또 일을 했다.


2021년 12월 2일 목요일. 동생이 올케와 상의 후 휴가를 내고 정태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정태를 본인의 집으로 모시고 갈 심산이었다. 정태는 우리 집엔 그렇게 안 간다더니 며느리의 연락 한 번에 대번 동생네 집에 가기로 했다고 한다. 평생 올케에게 고마울 일이다. 동생은 울산과 경주 사이 모화쯤에서 정태를 차에 태우고 뒤이어 대리기사를 불러 기아봉고트럭도 본인의 집 앞으로 끌고 갔다.




'애들 집에는 안 가려고 했는데 며느리가 오라고 하는 문자에 흔들린다. 잠깐만 아들네 집에서 쉬다가 나올까. 숙소도 일주일 다 묵어 나왔고 병원에 가기는 싫고 못 이기는 척 잠깐만 갔다가 추스르고 다시 나오자. 혹시나 말뿐일 수도 있으니 가자는 말을 안 해도 밥 한 그릇 먹고 요 근처에서 숙소하나 잡지 뭐' 정태는 여러 생각을 하며 은행에서 현금을 제법 찾고 천천히 몸을 돌리고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새워진 아들차를 보았다. '용캐 잘 찾아왔네' 정태가 생각했다. 아들은 정태를 보자마자 가자고 말했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타고서야 정태는 끊임없는 생각이 멈췄다. 결혼한다고 큰돈 한번 못 내밀어줬는데 전셋집에서 2년 사이 자가를 얻어 변두리지만 경치 좋은 30평대 아파트에 살는 아들. 다들 한량이 같은 정태밑에 어찌 그런 딸 아들이 있냐고 하지만 정태는 응당 당연하다는 듯 받아쳤다. 아들의 부축을 받고 집에 도착하자 며느리와 참깨가 반갑게 마중하고 있었다. 참깨는 아들내외가 키우는 제법 큰 시바견종이다. 아들이 준비해 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참깨 앞에 앉아 털을 한참을 빗겨도 녀석이 흔들어대면 털이 집안 곳곳 날렸다. 거실에 앉아 깎아주는 과일 한 점을 먹고 아들내외가 가리키는 방으로 가 누웠다. 편히 쉬라며 안방을 내어주었다. 마침 아까 찾아온 현금을 아들내외에게 건넸다. '필요한 거 사라' 정태가 말했다.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어제는 거실에도 몇 번 나가고 아들내외랑 티브이도 잠시 같이 보던 정태는 오늘은 방밖을 나서기가 힘들었다. 겨우 일어나 화장실을 가고 아들이 방으로 차려준 음식을 떠먹었다. 몸에 좋은 거라며 구색 맞춰 아들이 찌개도 끓여 오고 나물반찬도 해오니 겨우 몇 술 삼키고 약을 먹었다. 이것은 살아내는 것일까. 죽어가는 것일까.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아들네 집에 있어 햇살이 포근하다.


2021년 12월 4일 토요일. 딸과 손주 녀석들도 왔다. 한참을 밖에서 기척만 있더니 딸이 들어와 손을 잡았다. 일어나 앉기조차 힘들어 누워 내색했다. 오늘은 아들내외가 해주는 음식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약만 겨우 삼켰다. 딸이 2022년 수첩을 들고 왔다. '그걸 뭐 하러 들고 왔니' '내년에 쓰라고' '가방에 넣어놔라' 딸은 침대 끝 바닥 한편에 놓인 짐 가방 두 개를 모두 열어 아무 가방에 넣었다. '거실 나가가 애들 봐라' '이따 엄마 퇴근하고 온단다' 딸이 나가며 말했다.




토요일에도 특근이라며 출근한 엄마와 남편이 저녁에 동생네 집으로 온다고 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엄마를 태워 같이 온다고 했다. 동생이 정태 주려고 만들었는데 정태가 한입도 못 먹는다며 감자수프부터 과일까지 몸에 좋은 음식들을 차려주었다. 감자수프는 감자가 약간 덜 익어있었다. 한 그릇 비워내고 올케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참깨와 논다고 바빴고 동생과 나는 거실에서 한참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말들을 나누고 정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하루가 빠르게 흘러 저녁이 되고 엄마와 남편이 도착했다. 정태는 그사이 침대에 앉아있었다. 같이 인사 나누고 이제야 모두 모인 우리는 하나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외쳤다. 배달음식 어디가 맛있냐며 신이 나서 모두가 잘될 거라는 듯 웃으며 음식을 골랐다. 정태도 슬며시 웃었다.


'입에 자꾸 피가 안 멈추네' 종일 힘없이 누워있던 정태는 엄마가 오자 목소리도 또렸했다. '보자' 엄마가 한참을 마른 휴지와 솜으로 닦고 막고 해 보아도 피가 안 멈추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호스피스 병동 선생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일전 전화통화 했던 이정태 씨 보호자입니다. 주말 늦은 시간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아버지 저희댁에서 다 같이 있는데요. 입속에 피가 나는데 피가 계속 안 멈추네요. 이것도 혹시 뭐 어떤 증상일까 해서요' 주말 저녁에도 반갑게 전화를 받아준 호스피스 선생님은 다행히 나를 기억했고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답했다. '아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됩니다. 응급실 오셔서 검사해보셔야 됩니다. 피가 아마 계속 안 멈출 겁니다. 오세요' 따뜻한 저녁으로 들뜬 토요일 밤의 어느 수많은 집 가운데 우리가 있던 그 집은 금세 조용히 식어갔다.


모두는 일어섰다. 엄마가 오고는 앉아있기도 하던 정태는 엄마와 동생의 도움으로 채비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거실로 나온 정태는 '보일러 꺼라'라고 말했다. 동생네 차에 정태와 엄마가 앉아 출발을 하고 뒤이어 남편이 아이들을 태워갔다. 나는 내차 조수석에 올케가 앉자 출발했다. 차 세대가 줄지어 울산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해 응급실 앞에서 정태의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가자' 정태가 나를 불렀고 나는 따라나섰다. 동생네는 엄마를 모시고 엄마댁으로 남편과 아이들은 우리 집으로 갔다. 정태와 나는 정신없이 바쁜 응급실에 둘만 남았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다행이야. 같이 올 수 있어서' 그와 중에 나는 또 시간을 생각했다. '갈아입으세요' 간호사가 커튼을 휙 치고 나가고 정태는 환자복으로 환복 했다. 간호사들이 가까이 와서 정태상의를 걷히고 기기들이 연결된 고무선을 붙여 검사를 시작했다. 한참을 뚜뚜 기계음을 내는 검사장치를 달고 있다 일반 침대로 넘겨지고 의사가 왔다. '혹시 이가 흔들리셨나요? 이가 빠지려고 흔들리면서 계속 피가 나는 것 같아요.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나는 얼른 정태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빠 이가 원래부터 흔들렸어?' 정태가 끄덕였다. '아~아빠 그럼 진작 이야기해 줬어야지. 이가 빠지려고 해서 그런 거래. 별것 아니란다. 이제 집에 가자 우리 집 바로 앞이니까 우리 집에 가자. 조금만 기다려보자' 안도하며 흔들리는 내 목소리에 정태의 눈빛도 같이 흔들렸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두꺼운 겨울잠바 위로 일회용 가운을 입고 일회용 위생모에 마스크까지 쓴 채로 난방이 잔뜩 돌아가는 실내에 있으니 현기증이 났다. 땀을 닦으며 앉아있는데 정태가 며칠 동안 속이 좋지 않다며 관장을 부탁했다. 응급실 데스크에 전달하자 투명한 고무호스와 커다란 주사기가 담긴 은색트레이를 든 간호사가 와서는 커튼을 치고 관장약을 넣어 주었다. 나는 아이를 두 번이나 낳은 정신을 발휘해 관장하고 나면 무조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야 된다며 비장하게 알려주고는 걷기 힘들어하는 정태를 겨우 부축해 화장실에 모시고 문밖에 섰다. 안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아빠, 무슨 일 있어?' 문을 열자 정태의 단단하고 불안한 큰 눈이 나와 마주쳤다. 정태의 얼굴 아래로 시선을 내렸을 때 내려간 바지 위로 흥건한 붉은 피가 보였다. '새 바지 가져올게!'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말했다. 간호사에게 달려갔다. 달려가는 내내 정태의 눈 아래 굳게 다문 입으로 하는 말이 들렸다. '아버지께서 대변을 보시다가 바지에 온통 피가 흘렀어요' 내가 말했다. '관장하면 뭐 그럴 수 있어요 저쪽 빈베드에 새 옷 가져가시면 돼요' 간호사가 바쁘다는 듯 말했다. '많이 흘리셨는데요?' 다시 물었다. '많이 얼마 나요?' 간호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보여드릴게요' 나는 정태에게 얼른 새 바지를 가져다주고 정태가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왔다. 그리곤 바지를 간호사에게 보여주고 반납고에 넣었다. 간호사는 어디론가 전달하듯 끼적이는 듯했다. 정태를 데리고 다시 병상으로 돌아왔다. 정태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나는 정태가 조용히 굽혔다 펼쳤다 하는 손가락과 정태 얼굴을 바라보며 자꾸만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정태는 후로도 베드에 누워서 간호사가 주고 간 일회용 비닐과 간이 변기에 피를 많이 흘렸고 옷을 여러 번 갈아입었다. 땀이 너무 나서 겨울외투를 벗어내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삼엄한 위생에 차마 거기서 일회용 가운을 벗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동생과 교대하고 안 사실이지만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기서 겨울외투를 벗고 위생가운을 다시 입었다고 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고 간호사가 대장내시경을 해볼 것이라고 했다. 정태의 신체 상태로 마취를 진행하기 위험해 마취 없이 내시경을 한다고 했다. 때마침 동생이 왔다. 따라가줄 수 없는 곳이 많아 정태를 계속해서 부축하기 어려워 엄마집으로 향했던 동생을 다시 불렀다. 내시경 결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출혈이 있을 건데 그 출혈을 잡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마취도 없이 내시경을 하고 온 정태는 더욱 지쳐 있었다. 나는 보호자가 한 명 이상 상주 할 수 없는 응급실에 동생과 정태를 두고 집으로 향했다.


2021년 12월 5일 일요일. 눈을 뜨자마자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전날보다 얇은 외투를 입고 나섰다. 가는 길에 동생에게 전화해 정태가 먹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었다. 밤새 잠이 드는 둥 마는 둥 동생에게 전화해 보고 문자를 보냈지만 동생은 응답이 없다가 아침에야 연락이 되었다. 정태는 콩이든 음료인데 종이팩에 들어있고 두유는 아니라고 설명을 하며 그것이 한잔 먹고 싶다고 했다.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도통 그렇게 설명하는 음료가 뭔지 알 수가 없어 종이컵 안에 가루를 넣어 따뜻한 물을 부어 마시도록 되어있는 음료 두 개를 집었다. 코로나로 인해 응급실에 한 번에 두 명의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기에 동생에게 나오라고 연락을 하고 잠깐 이야기 나눈 뒤 내가 들어갔다. 정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있었고 내가 들고 온 음료는 그것이 아니라는 듯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동생과 응급실 문밖에 서서 정태에게 오고 가다를 반복하다 정태가 입원실로 옮겨질 거라는 전달을 받고 동생을 집으로 보냈다.


정태를 따라 입원실로 올라갔다. 그사이 남편이 왔다. 다시 병원생활을 해야 되는 것이 갑갑했는지 정태의 표정이 좋지 않았고 결국 간호사 앞에서 큰 소리를 냈다. '김서방 저 가방에 약하나 꺼내 도봐라!' 정태의 말에 남편은 약을 꺼내었고 간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병원약 외에 어떤 약도 드시면 안 됩니다' 정태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대꾸하지 않았고 '아침에 사 온 콩음료 타다 줄게'라는 나의 말과 행동에 '환자분 의사 선생님 지시 전까지 금식이십니다' 다시 단호히 들려오는 간호사의 말에 정태는 소리 없는 욕을 잔뜩 해댔고 그 욕은 나만 들을 수 있었다.


해당 병동은 간병인이 없이 병동에 상주하여 간호를 도아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특별한 사유 없이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보호자 상주도 금한다고 했다. 햇살이 제일 잘 드는 창가 자리가 정태 자리였다. 창 밖으로 스타벅스가 보였다. '아빠 이제 치료받고 우리 나가자. 같이 커피 마시자' 정태는 끄덕였다. '환자분 거동가능 하신가요?' 거기서 정태는 내내 환자분으로 불렸다. 간호사의 물음에 정태를 쳐다보았다. 정태는 조용히 끄덕이며 침대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갔다. '혹시 거동 불가 하시면 소변줄 하실 거고 성인용 기저귀 부탁드릴 수도 있습니다' 간호사가 내게 말했고 정태는 부축 없이 의지에 찬 얼굴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정리가 다되자 나가주어야 했다. '아빠 우리 집 바로 옆인 거 알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달려올게' 간호사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집에 도착한 지 두어 시간 뒤 성인용 기저귀를 가져 다 달라는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 로비에 불이 꺼진 컴컴한 병원에 도착하고 코로나로 인해 물건만 두고 가면 알아서 전달하겠다는 경비의 말에 주머니에 넣어갔던 포스트잇과 볼펜 테이프를 꺼내어 편지를 잔뜩 적어 붙여 보냈다. 행어 떨어질까 테이프를 바짝 붙여 보내고는 언제 또 정태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2021년 12월 6일 월요일. 어김없이 모두가 출근을 했다. 정태가 전화도 문자도 보기 힘들어하는 것을 전날 보았지만 계속해서 문자를 보냈다. 오후쯔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정태를 다인실에서 일인실 병실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일인실 병실은 코로나에도 예외를 두어 가족모두 상주 할 수 있다고 했고 지금부터는 보호자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 퇴근하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정태와 엄마가 있었다. 당장 보호자가 상주해야 된다는 말에 엄마가 휴가를 내고 병원에 와있었다. 누워있는 정태는 목소리도 눈빛도 또렸했다. 의사 선생님이 오시자 정태는 퇴원을 요구하며 소리쳤다. 또렷한 정태를 보고서 야간출근하는 신랑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정태와 엄마를 병원에 두고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2021년 12월 7일 화요일. 아껴두었던 남아있는 반차 하나를 오후에 쓰고 퇴근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는 엄마와 남편이 있었다. 정태는 전날 말도 하고 화도 내던 기력은 다 사라지고 약기운에 잠들었다 깨다를 반복하며 내가 온 줄도 겨우 알고 내색하는 듯했다. 뒤이어 동생이 왔고 저녁에 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집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약에 취해있는 정태 곁으로 엄마 나 동생이 나란히 앉아 정태를 바라보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엄마는 김서방이 오전에 밥 한 끼 먹자고 해서 굳이 뭐 하러 병원식당에서 밥을 먹나 싶어 겨우 따라나섰는데 김서방 말 듣고 든든하게 먹고 오길 잘했다며 기력이 난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엊그제 내가 사 온 정태가 먹지 못한 콩음료에 따뜻한 물을 부어 엄마가 사둔 남아있는 빵을 나눠 먹었다. 정태는 입원실에 올라오고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때 병원에 있는 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여기 울산대학교병원입니다. 이정태 씨 보호자 되시죠' '네' '이정태 씨 보호자가 곁에 계셔야 돼서 연락드렸습니다' '저 지금도 병원이에요. 매일 병원에 와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네, 매일 와있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병원 관계자는 안도하는 듯 전화를 끊었다. 일전 얼마나 보호자가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지 그런 정태가 훤했다. 종일 정태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저녁이 되고서 남편이 출근했다는 전달을 받고 집에 둘만 있는 아이들 걱정과 엄마도 동생도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 별일이야 있겠나 싶어 언제든 달려오겠다고 서약을 한 뒤 오후에 급히 계약한 간병인과 정태를 두고 병원을 나섰다. 매일 저녁마다 들르면 되겠지 라며 그렇게 끄덕이고는.


2021년 12월 8일 수요일. 시계를 보았다. 아직 새벽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았다. 아직도 새벽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시계를 보려고 전화기를 집었다. 전화가 왔다. 병원이다. '이정태 씨 보호자 되시죠' '갈게요' 더 이상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전화를 끊고 출근복을 입었다. 얼른 정태를 만나 얼굴을 보고 다시 출근해서 저녁에 또 정태를 보러 가야지. 그 생각이었다. 병원에서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가 왔는지 그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으레 전화 왔으리라. 내가 보호 자니까. 몇 번 왔더니 익숙한 듯 병원 앞에 주차를 하고 위생모 위생가운을 달려가며 입으며 엘리베이터에서 출입증을 목에 다시 걸었다. 몸은 바쁘고 마음은 차분했다. 아직 출근시간이 한참 멀었으니까. 정태의 입원실은 불이 환하게 켜진 채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간병인은 나를 보자 병실 밖으로 나갔다. '아빠' 정태는 누워 내색 없이 나를 반기는듯했다. 눈을 감은채 입으로 찬찬히 숨을 쉬고 나를 반겼다. '아빠' '아빠 나왔어' 대답이 없이 숨 쉬는 정태에게 계속해서 말을 했다.


'아빠 나왔어. 아빠 미안해. 아빠 정말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아빠 고마워. 아빠 사랑해. 아빠 정말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아빠 정말 고맙고 미안해. 아빠. 할아버지도 큰아빠도 큰고모도 만나서 편히 쉬어. 아빠 고생했어. 아빠 고마워. 아빠 미안해. 아빠 사랑해'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그 말 말고는 아무 말도 담아낼 것이 없었다.

들숨 날숨 어느 숨에도 그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태는 마지막 힘을 내어 끄덕이는 듯하고는

출근준비만 하고 이별준비를 하지 않았던 내게서 떠나갔다.


모과와 곶감으로 두 손을 채워주는 이가 떠나가고

나의 가을은 낙엽만 남았다.




마지막 가을.

인생 참 잘 보내고 가는 것 같다.

원도, 한도, 미련도 없다.

어차피 한 번은 가야 되는 것,

애달프고 그리워할 것도 없다.

딸도 아들도 마찬가지다.

찾지도 말고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잘 살아라.


2021.11.22 11시 10분


- 정태 -




눈뜨면 보이는 정태를 미워하는 나와

눈감아야지만 보이는 정태를 그리는 나는

여전히 몽돌바다 앞에 앉아 쓸려오는 파도를 기다린 채 밀려나는 파도를 기린다.


'나도 미안했다' 여전히 답하지 않는 파도는

어쩌면

미안할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