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영웅] 정태
모든 마음 담아내기에 이별도 부족했다.
여전히 출근복을 입은 채 대답 없는 정태의 왼 손을 잡고 서있었다. 정태의 몸에 연결된 기기들은 멈추지 않고 뚜뚜 소리를 내었다. 계속 울리는 기기소리에 정태가 다시 대답해 주진 않을까 생각할 즈음 의사가 들어와 정태의 마지막을 알렸다. 출근시간을 알리듯 마지막 시간을 알렸다. 간호사들은 정태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기기들을 풀어내어 바깥으로 옮겼다. 간병인은 눈인사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 정태를 대신해 정태의 소리를 내어주던 기기와 함께 모두가 입원실을 나갔다. 편안해 보이는 정태의 왼손을 조용히 내려놓고 한발 물러서 보호자 침대에 앉았다. 입원실은 내가 소리 내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있는 정태는 피어오르는 모닥불처럼 나에게 온기를 주었다. 온기에 안정을 느꼈다.
조용한 병실에 동생이 올케와 들어왔다. '아빠 자나?' 동생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원의 안내를 받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잡고 섰다. 하얀 천에 덮인 정태의 침대바퀴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태가 내 뒤에 누워 섰다. 다시 모닥불 앞에 선것마냥 온기를 느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복도 끝에서 정태와 다른 길을 걸었다. 추웠다.
병원에 함께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비용설명을 들었다. 뭐가 이렇게 비싼지 당연한 듯 흘리던 사진도 꽃도 다 돈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중간정도되는 아마 남들도 제일 많이 할 법한 것들로 하나하나 고르고 골랐다. 이제부터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해줄 터였다. 차를 빼줘야 됐다. 그 사실을 어떤 슬픔에도 잊지 않고 있었다. '누나야 차 빼주고 매형한테도 알려주고 올게' 동생에게 말했다.
슬픔과 현실사이에서 내가 살아가야 되는 세상은 현실이 먼저였다. 드라마나 소설처럼 내 슬픔의 시간 동안 불법 주차를 기다려줄 이도 대신 차를 빼줄 이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은 내 손에 달렸다.
차를 빼서 집으로 달려갔다. 집과 병원은 차로 5분 거리였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알리며 출근복을 내던지고 옷을 갈아입었다. 택시 타고 갈 테니 일단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오라 차분히 일렀다. 코로나로 아이들은 장례식장에 있을 수 없었다. 그 사실도 나는 잊지 않았다.
나에게 슬픔은 이미 익숙한 것이었다.
2021년 12월 10일 금요일.
정태가 누워있는 곳 앞에 서서 다시 온기를 느꼈다. 새벽바람에 차가운 두 손을 살포시 올려 마지막인사를 할 때도 온기를 느꼈다. 정태는 걷지도 운전하지도 않은 채 커다란 나무 상자 안에 들어간 채로 손을 흔들지도 않고 운동화를 꺾어 신지도 않고 멀어졌다. 추웠다.
삼일장을 마치고 집에 와 누웠다. 이불을 싸고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는 급히 울릴 일이 없을 것 같은 전화기에 전화가 가득 와있었다. 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의 딸이 학교에서 학원차를 놓쳤다는 것이다. 다시 현실이다. 우리 딸 우리 아들 우리 아가들. 다시 슬픔을 묻고 저녁밥을 지었다.
2021년 12월 11일 토요일.
또 다른 현실을 맞이하러 길을 나섰다. 할머니, 정태가 일인실에 누워있는 동안 정태의 전화벨이 수차례 울렸다. '엄마'라는 이름의 단 한 사람 할머니. '정태 아프나, 정태 어예되노, 야 와 전화를 안 받고 연락이 안되노' 전화를 받자마자 할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괜찮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아시는 듯했다. 나의 가족이 탄 차와 동생네 식구가 탄 차, 두 차가 정태가 늘 향하던 그 길을 올랐다. 동생의 자동차 트렁크에는 정태의 사진. 정태의 배낭 두 개가 실려 있었다. 할머니, 어떤 슬픔을 가져가도 그곳의 슬픔보단 적으리라 싶었다.
겨울의 시골집은 집 뒤로 앞으로 보이는 밭들이 모두 휑하니 갈색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시골집 앞마당에서 서른 걸음쯤 걸으면 나오는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은 아직 따스한 겨울 초입에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반기고 한참 눈물을 보이셨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정태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배낭에서 꺼냈다. 할머니는 불을 지폈다. 시골의 어느 토요일 하늘에는 밥 짓는 냄새 없는 탈 것 냄새가 가득했다. 허리띠, 양말, 속옷, 도장, 통장, 지갑, 2022년 수첩, 지난겨울 사준 장갑도 나왔다. 새것 같은 장갑을 할머니는 한번 껴보더니 쓸만한 것들은 그냥 두었다. 마른 흙밭으로 참깨와 아이들이 한참을 뛰어다녔다. 나는 할머니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맑고 높은 하늘에 구름이 간간이 보였다. 저 구름이 정태일까.
슬픔과 현실 그리고 바람 속에서 우리는 계속 발을 디뎠다.
2021년 12월 14일 화요일.
모든 휴일이 끝났다. 출근복을 입었다. 평소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길을 나섰다. 남편은 오늘까지 쉬는 날이라 다른 걱정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집 앞 떡집 앞에 차를 세우고 미리 주문해 놓은 떡들을 차에 실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떡을 나눴다. 간간히 위로의 말을 전해주는 사람들 앞에 서서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또 현실과 슬픔 사이에서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정태의 모든 비밀번호 1214. 12월 14일. 정태가 그렇게 좋아하던 숫자 1214. 나의 생일. 나는 떡을 돌렸다.
출근길 운전석 사이드 미러로 뜨는 해를 바라보고
퇴근길 운전석 사이드 미러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정태일까 싶었다.
짧은 겨울해가 지고 간간히 집 앞 병원길을 지날 때면
저 멀리 약봉지를 들고 찬 바람을 피하지 못한 채 걸어오는
정태가 보였다.
내게 보이는 것은, 내게 슬픈 것은,
약봉지를 혼자 들고 있는 정태의 모습일까.
그 약봉지를 대신 들어주지 못했던 나의 모습일까.
잘 가라고 손 흔들던 정태의 모습일까.
바쁘다고 떠나는 나의 모습일까.
바쁜 사람 출근해야지 말하는 정태의 표정일까.
여전한 채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나의 표정일까.
나는 무엇이 슬픈 것일까.
서울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예악일자가 다가왔다고 준비할 서류들을 알려주었다.
나는 이제는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별 것 아닌 것들에 미뤄지는 소중한 것들.
슬픔이 슬픔다워질 수 있도록
그 계절 그 순간이 주는 기회들을
나는 끝내 알지 못했다.
온기가 없는 정태에게서 온기를 느꼈다.
굳게 닫힌 나무관 앞에 서서 온기를 느꼈다.
관이 멀어지면 추웠고 관이 가까워지면 따뜻했다.
마지막으로 한 손을 관 위에 조심히 올렸다.
한 손이 부족하여 두 손을 모두 올렸다.
까슬한 내손에 다시 온기가 올랐다.
억지로 관이 지나가고 겨우 손을 내리고서야
끝까지 내 손을 잡아주고 간 정태가 그제야 밉지 않았다.
쥐어주던 물건 너머 두 손이 따스했을까.
슬며시 내 이마 위로 올리던 두 손이 따스했을까.
소주잔을 쥐던 두 손이 따스했을까.
마지막 일주일, 그제야 쥐어본 두 손이 따스했구나.
장작불 앞에서 눈을 감아도
타오르는 장작불의 붉은빛의 흔들림이 감은 눈꺼풀 너머로 여전히 보이듯
그렇게 나에게 정태는 온기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