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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Aug 29. 2024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요 며칠 말 그대로 현타가 몰아치는 날들이었다. 아마 얼마 전에도 이런 글을 썼던 것 같은데... 뭔가 땅굴이 깊어지고 있는 걸까. 문제는 늘, 땅굴은 팔수록 자꾸 깊어지기만 할 뿐이라는 거다.


어제는 아침에 겨우 일어나 수영장에 갔다. 난 아직 자유형 자세도 만들어가는 중이지만, 요즘 수영장에서는 평영 발차기를 배우고 있다. 개구리처럼 다리를 접고 발목을 꺾은 다음에, 발바닥으로 마치 물을 잡듯이 밀고 뻗으며 그 추진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데 되는 듯 안 되는 듯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평영은 다른 영법들과는 발차기 방법이 달라 더욱 어렵기도 하고, 익숙해지기 힘들어 오래 걸릴 거라고는 하던데, 하나둘씩 잘해나가는 사람들이 보이니 조급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KBS 수영장에 가서 느꼈던, 빨리 다른 영법의 수영도 잘 익혀나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발길질을 해볼 뿐이다.

마지막까지 물을 움켜쥐기 위해선 발을 뻗는 마지막까지 다리에(혹은 발에?) 힘을 주어야 한다. 나는 접었던 다리를 펴는 순간까지는 힘을 잘 주는 편인데, 그렇게 뻗은 다리를 다시 모으는 마지막 동작은 굉장히 대충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유형을 할 때도, 선생님이 물속에서 마지막까지 손을 뻗어 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말을 해주는 데, 나는 계속 뒤로 가면서 흐지부지 해진다. 모든 일이든 신나서, 이미 모든 것을 바로 끝장 볼 수 있을 것처럼 시작해 놓고 갈수록 흐물흐물해지는 용두사미 체질이 수영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것을 막으려면 아예 시작할 때부터 힘을 주지 말아야 할까?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또 제대로 된 자세가 안 나온다. 중간을 찾는 일은 이리도 어렵구나. 내 땅굴이 깊어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려나.


수영을 마치고 도서관에 갔다. 얼마 전 수영을 하면서 떠올렸던 <힘 빼기의 기술>이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평소에 에세이 코너는 잘 돌아보지 않는다. 뭐랄까, 내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운 삶에서 타인의 생각이나 삶의 이야기까지 시간 내어 읽는 게 비효율적이라 느껴졌달까. 지금 나도 이렇게 모두가 볼 수 있게 발행되는 공간에 이 따위 일기 같은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지만, 굳이 남의 일기를 내 손으로 들추어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이 눈에 밟힌다. 제목은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 :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나도 모르게 책을 집어 들었다. 도서관 그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한 권을 다 읽었다.


책은 10명의 여성들의 퇴사와 그 이후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대체로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누군가는 충분한 휴식 뒤에 조금은 다른 방식이지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공통적으로는 그 과정이 꽤나 선명하다고 느꼈다. 하고 싶은 것이라던가, 방향이라던가, 본인이 무얼 포기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라던가.

나는 지금 이전에도 한 번에 긴 퇴사 경험이 있다. 싫다, 싫다 하면서도 마땅한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해 버티며 다니던 곳에서 적당한 계기가 만들어진 덕분에 퇴사를 했었다. 그리곤 편도로 비행기표를 끊어 지구 반대편으로 갔지. 6개월을 떠돌면서 그때도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 보다는 '무엇이 하기 싫다'만 분명해졌던 모양이다. 돌아와서도 1년을 넘게 놀았는데, (지겹지도 않았다) 그때 뭘 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결국은 부모님의 성화를 피하고 싶어, 내가 그렇게도 돌아가기 싫다던 그 분야의 다른 회사로 입사를 했다. 집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결국 나는 또 그렇게 싫어하던 그 분야로 돌아가게 될까?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좀, 공부를 하던 뭔가를 하던 이제는 움직일 때가 온 것 아닐까. 왜 여전히 나는 모든 것을 유예한 채로 가만히 떠있고 싶기만 한 걸까.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에는 나에게 위안을 되는 내용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꾸만 유예하는 나를 채찍질하는 말 같기도 했다.


"(...) 얼마 전 만난 어른으로부터 꽤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사 후 보낸 시간의 길이에 따라 얻는 것이 다르다.' 출퇴근의 일상에서 놓여난 직후에는 오랜만에 주어진 달콤한 자유를 즐기게 되게 마련이다. 늦게까지 깨어 있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며 밤새 듣고 싶은 음악, 읽고 싶은 책 속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한 달이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사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한 달을 보냈다면, 그다음 두세 달은 첫 달의 여유를 더 깊이 만끽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는 시간. 회사에 다닐 때 잠시 스쳐 지나가던 고민거리나 이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고 발전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넉 달째 접어들면 다시 일할 준비가 되었는지 생각해 보고 마음의 변화를 살펴본다. 물론 퇴사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시간에 따른 변화를 생각하면 얼마나 쉬었는지에 따라 얻는 것이 다라진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 48P,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 :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당시 힘든 상황을 버티며 결심을 미룬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만큼 괜찮은 곳에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잘못된 현재를 무작정 유지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불안하다면 오히려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계획적인 퇴사를 할 수도 있는 일. (...)
쉬어가는 시간은 분명 필요하다. 한동안 경력이 멈춘다고 우리가 가고 있는 인생길이 멈추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회사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갇힌 걸 모른 채 매일 쳇바퀴 돌 듯 유지하는 생활 속에서는 회사 밖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망각하게 된다. 틀을 벗어나야만 다른 세상을 만나고, 지금까지의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218~219P,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 :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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