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을 하다 밤을 새웠다
어쩌다 보니 1년이 넘게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보드게임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모임의 장 따위를 맡기엔 에너지도 깜냥도 안 되는 내향인이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보드게임을 다시 하기 위해 어렵게 뚫은 동네 보드게임 카페가 한 곳 있었지만, 그 밖에도 조금 더 넓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특히 애초에 보드게임이 좋다고 모인 사람들이 있는 곳 밖에서, 게임이 어떤 역할 또는 매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서 발행한 언젠가의 글에서 밝혔지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라도 다시 보드게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어떻게도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를 풀 곳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게임판 앞에 앉으니 모르는 게임은 너무 많고, 새 게임을 할 때마다 룰을 익히는 것도 일이고, 머리는 머리대로 굳어서 안 돌아가고 정말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게다가 초반에는 시간을 내어 카페를 방문하는 것도 일이어서, 매번 다시 갈 때마다 이전에 배웠던 게임의 룰을 까먹어 설명을 다시 들어야 했다. 문득 이 자리를 빌어, 한번도 귀찮은 내색 없이 몇번이고 설명을 다시 해주던 카페의 동료들에게 감사의 안사를 전한다. 아무튼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사단이 났다. 퇴근하고 찾아간 카페에서 '한 판만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야 조금 메커니즘을 알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귀가를 조금씩 미루다 결국은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고 말았다.
언제였더라, 일을 하거나 술 마시는 것 말고 다른 이유로 밤을 새워 본 기억이. 스트레스도 숙취도 없는 아침. 밤을 샜으니 조금 몽롱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말짱한 몸과 정신. 특히나 (그 긴 시간을 투자하여) 결국 게임 하나를 완벽히 숙지해 내었다는 만족감 때문인지 기분이 너무나 상쾌했다. 이 성취감은 또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거지? 언제부턴가 술 외에는 도통 재미있는 일이 없는 따분한 어른이 되어버린 내게, 이렇게 건강하고 재미있는 놀거리가 나타나고 만 것이다. 심지어 무언가를 기억해야 하거나, 규칙을 따라야 하거나, 변칙을 생각하거나, 상대를 견제하며 꾸준히 머리를 써야 하니 술 마시며 뇌세포를 까먹는 일보다 훨씬 생산적이기까지 하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고 술이 안 좋은 취미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뇌세포를 까먹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더라도 술 또한 여전히 쉽게 놓아줄 수 없고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나의 소중한 일상이다.)
아무튼 이런 몇번의 경험 끝에, 더 많은 사람들과 이토록 건강하고 매력적인 취미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나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는 직장인 성장 커뮤니티 HFK에 들어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팀장을 달고, 위아래에서 조여 오는 압박을 슬기롭게 조율해 나갈 방법을 고민하다 알게 된 곳이었다.
이곳에는 메인 활동인 공부 모임 외에도 커뮤니티 멤버들 간의 말하자면 친목도모를 위한 동아리 느낌의 '클럽'이 함께 운영되고 있었는데, 클럽은 커뮤니티 멤버라면 누구나 지원해서 열 수 있었기에 나 역시 보드게임 모임을 열어 볼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곡절 끝에 모임은 1년이 넘게 유지되며 커뮤니티의 나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2025년 새해의 첫 모임이 있었던 어제는 멤버들의 게임하는 모습을 보며 남몰래 감격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어쩌면 브런치에 이렇게 구구절절 보드게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도 이 커뮤니티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다음화부터는 이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나의 도전, 보드게임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꺼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