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짱이 다이어리] 2025.10.20의 기록
아직 10월인데 갑자기 겨울이 됐다. 이맘때쯤의 바람에 나는 꽤 취약하다. 신체적으로 보다는 정신적으로. 첫추위를 잘 나야 그 겨울에 고생을 덜 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어려서부터 조금만 바람이 쌀쌀해지면 일단 패딩을 꺼내드는 게 나다. 연례행사처럼 한 번씩 감기야 치르지만, 코를 훌쩍이며 휴지를 옆에 끼고 살아도 몸은 꽤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어쩌면 그건 내 감정의 울렁거림과 비교한 상대적 튼튼함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느껴지는 찬 바람, 낮게 가라앉은 공기, 아직 저녁 먹을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찾아오는 어스름에서 나는 낯섦을 느낀다. 늘 내 곁에 머물던 연남동, 망원동의 익숙한 공기가 아닌, 저어기 어디 산 꼭대기에서부터, 바다 너머에서부터 존재해 온 바람이 천천히 제 몸의 온기를 낮추며 여기까지 날아와 나를 흔들고 사라지는 것 같다. 지금 이대로, 그대로 나는 이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낯선 바람은 가끔 내 앞에 멈추어 서서 잠시 나를 바라보다 떠나기도 한다. 거기가 정말, 지금 네가 있을 자리가 맞아? 나는 또 마음이 흔들려 회사에도, 집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들을 헤매고 만다. 하지만 그 골목에도 내가 맘 편히 문 열고 들어갈 곳은 영 보이지 않는다. 역시,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겨울보다 여름을 선택하고 마는 건, 더운 게 좋아서가 아닌 추운 게 싫어서다. 내 선택은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고르는 문제였고, 좋아서 따라가기보다는 피하고 싶어서 도망가는 쪽이 편했다. 두툼한 스웨터와 두 겹의 패딩, 히트텍과 어그부츠로 무장해도 움츠러드는 나날보단 차라리 땀을 뻘뻘 흘리며 살을 까맣게 태우는 게 낫다. 갈수록 심해지는 여름 더위가 이제는 제법 무섭고, 겨울보다 심한 여름 벌레들의 극성이 괴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더위에 녹아내리는 느낌이 추위에 얼어붙는 기분보다는 괜찮다. 나뭇잎은 다 말라 떨어지고, 나뭇가지는 앙상해지고, 낮도 쪼그라들고, 나도 쪼그라들고, 땅도 얼어붙어 자칫 넘어지기라도 했다간 골절을 각오해야 할 것 같은 이 세계는 여전히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골목을 걷다 보면 아직 불 켜진 창문들이 있다. 겨울바람을 느끼며 바라보는 창문 안 실내는 유난히 노란빛이 많다. 그 노란빛에 의지해 누군가는 마주 앉은 이와 수다를 떨고, 누군가는 독서를 하고, 또 누군가는 핸드폰을 본다. 나는 왜 그 문을 열고 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지? 도망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여기 있는데. 바람이 다시 나를 훑고 지나간다. 거기가 정말, 지금 네가 있을 자리가 맞아? 나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글쎄. 그림자 같은 건물의 실루엣 위로 골목도 노란 불빛도, 산도, 바다도 없는 검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