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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Aug 18. 2018

28. 대체 어딧는거야, 로미또 아라베!?

2017.6.8. 아순시온, 파라과이(D +122)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끼어 있는 남아메리카 중부의 내륙 국가 파라과이. 얼마 전 TV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파라과이인 아비가일의 친구들이 출연하며 우리에게 조금 더 친근해 진 것 같은 이 나라는 사실 이곳에선 이미 한국인들에게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바로 ‘한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남미를 여행하는 장기 여행자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들린다는 파라과이. 우여 곡절 끝에 거기까지 갔다. 그리고 난 외쳤다. 먹고 싶다, 현지식! 느끼고 싶다, 남미의 맛!




꼭 남미가 아니더라도 긴 외국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 테다. 얼큰한 라면 국물 한 숟갈에 눈물 맺히는 기분. 손가락 두 개 만한 튜브형 볶음 고추장 하나로 영웅이 되는 기분.

그러나 정말 배가 불렀는지 나는 그런 기분을 좀처럼 느껴보질 못했다. 그 땅에서 함께 했던 동행들 대부분이 이미 여행의 고수, 장기 여행의 달인으로 긴 타지 생활에서 간절해오는 한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여행하는 내내 어디에서도 어렵지 않게 라면을 끓여 먹었고, 갓 지은 따끈한 쌀밥에 볶음 고추장을 비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 배가 불렀는지, 나는 계속 배가 고팠다.

사실 여행 내내 늘 먹고 싶은 것은 가능한 현지식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나의 여행철학 같은 것을 말해보라면 상위권에는 반드시 현지식 먹기가 들어있을 테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란 내 입맛에 맞고 아니고를 떠나서 가장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여행의 묘미를 가장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요소일테니. 마침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고 느끼는 이 줏대 없는 입맛은 어디에서도 나를 먹을 것으로 고생을 시킨 적이 없었다.


멕시코에서 먹었던 타코 중에서도 가장 양도 많고 화려했던 타코.
페루의 세비체. 회처럼 얇게 썬 해산물을 레몬즙이나 라임즙에 재운 후 차갑게 먹는다. 정말 정말 맛있다.
아르헨티나의 아사도. 달군 숯불의 열로 고기를 천천히 긴 시간에 걸쳐 익혀 먹는다. 훈연향이 짙게 배고 부드러운 소고기맛이 정말 최고.
볼리비아의 살테냐. 이렇게 생긴 빵은 남미 전역에서 아주 보기가 쉬운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익숙한 맛, 양도 든든한 편이라 부담없이 먹기 좋다.


생각해보면 남미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거나 다양하거나 하진 않은 편이었다. 라틴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멕시코 정도가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나라라고 할까. 그런 멕시코에서도 결국 내내 먹은 것은 갖가지 종류의 타코(Taco) 였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남미에서 꼭 먹어보라고 추천하고픈 음식이라면 페루의 세비체(Ceviche)와 아르헨티나의 아사도(Asado) 정도랄까. (물론 수 많은 군것질거리와 술은 이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간판도 없는 동네 식당에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이 먹는대로 주는, 밥이나 면에 고기나 스프가 나오는 식사만 먹어도 맛있고 만족스러웠기에 문제가 없었다. 개중에는 소고기 볶음이나 닭죽이라도 믿을 것 같은, 한식과 큰 차이가 없는 현지식도 있었다.

남미를 통틀어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밀가루나 옥수수 반죽으로 만든 빵 사이에 고기나 야채, 치즈로 속을 채운 음식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만두에 가까운 이 음식은 엠빠나다 혹은 살떼냐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아마도 이것은 조리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비슷하게 생긴 것을 어딘가에선 굽고 혹은 튀기고 혹은 찐다. 흔한 것도 그렇지만 저렴한 편이라서 군것질 용으로도, 식사 용으로도, 입맛을 좀 타는 사람들에게도 무리 없는 현지 음식이다.

또한 아무래도 유럽(스페인)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온 곳이다 보니 정말 맛있다는 피자나 햄버거, 스파게티 가게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 물론 이것은 남미만의 특징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비해 안정되고 저렴한 물가 때문인지 파라과이에는 생각보다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농업이민이 이루어진 적도 있었다더니 그래선지 수도인 아순시온엔 남미 대륙에서 유명한 한식당도 많다. 시장 어디로 가는 길에 나오는 짬뽕집이라든가, 냉면집, 심지어 김치찌개는 한국에서 먹더라도 맛있을 거라는 말이 여행자들 사이에 심심치 않게 돌고 있었다. 페루의 리마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같은 큰 도시에 가야지만 찾을 수 있는 한인 마트 역시 아순시온에도 있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해서 이 곳을 들리는 여행자라면 다른 곳보다도 여기에서 부족한 한식재료를 채운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현지식을 먹겠다고 외쳤다. 마침 한식과 요리를 좋아한 동행이었던 P와 W와 헤어졌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 첫번째 목표는 ‘로미또 아라베’였다. 어떤 음식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누군가 파라과이에서 이 음식이 그렇게 맛있더라! 고 하는 말을 한번 듣고 목표로 삼았을 뿐.

파라과이에서 흔한 음식이래서 이것으로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나왔는데 그러나 아순시온 중앙 광장 근처에서도, 규모 큰 시장인 메르까도 꽈뜨로(mercado 4)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로미또 아라베를 찾을 수 없었다. 제대로 관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뭘 먹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헤매는 데 심지어 비까지 쏟아졌다. 점심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났다. 그걸 찾아 먹겠다고 돌아다니는 길에 마주친 한식당, 한식마트가 벌써 몇 개였다. 현지식이란게 원래 이렇게 먹기 힘든 음식이더냐?

하물며 한 명 남은 나의 동행 M은 파라과이 국경을 통과할 때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점점 안색이 안 좋아졌다. 하던대로 호스텔에서 요리나 해서 먹을걸. 그냥 아무 가게나 가서 아무 음식이나 먹을걸. 의지는 점점 꺾여 갔다. 시장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이거 저거 많던데, 그냥 아무거나 먹자 다 맛있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와 타협하고 길을 건너려던 순간이었다. 도로가에 세워진 작은 가판에 떡 하니 걸려있는 간판 'LOMITO ARABE'. 너, 대체 어디 있다 이제서야 나타난 거야!


로미또 아라베를 찾아 열심히 뒤지고 다닌 아순시온의 시장 메르까도 꽈뜨로
드디어 먹을 수 있던 로미또 아라베


로미또 아라베의 첫 맛은 정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잊을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그러나 그건 허기와 간절함이 뒤범벅 된 나의 모든 마음이 그 음식은 반드시 맛있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다지 색다른 맛은 아니었지만, 맛이 없을 수도 없는 익숙한 조합. 또르띠야에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고 소스를 뿌리고 돌돌 만,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으로 치자면 맵지 않은 케밥이나 부리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 로미또 아라베. 양도 어찌나 많은 지 나중에는 부른 배를 움켜 쥐고 겨우 다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불러도 끝까지 맛있게 먹었던 걸 보니 맛있는 음식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렇게 난 아순시온에 머물기로 한 2박 3일 중 하루를 온통 이 음식 하나를 찾는데 써버리고 말았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듯, 그리고 지나 온 많은 나라들에서 그랬듯, 이런 길거리 음식은 적당한 오후가 되어야 그때부터 하나씩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로미또 아라베에 대한 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호스텔의 스텝 리사와 실비아는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떠나기 전 먹어봐야 할 또 다른 음식을 묻는 내게 치파와수와 베쥬, 보리보리를 알려줬다. 어디에 가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도 함께 말이다. 저녁에는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선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무려 빙하 물로 만들었다는 파타고니아 맥주를 사서 마셨다.

다음날에도 리사와 실비아가 알려준 음식을 찾아 탐험은 계속 됐다. 그럼에도 아쉬운 게 있다면 ‘떼레레’라는 음료를 못 마시고 온 것이다. 파라과이 사람들이 정말 많이 마시는 전통 음료라는 떼레레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머물던 기간이 여름이 지나고 겨울에 접어들던 시즌이라 그랬는지 결국 찾아 마시지 못했다. 나중에 또 파라과이에 갈 일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때는 반드시 떼레레를 종류별로 마셔보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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