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만 3세가 되기 전부터 난 축구를 시작했다. 한국 나이로 4살. 매주 화요일, 아빠와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축구를 하러 갔다. 처음엔 어디에 뭘 하러 가는지 잘 모르는 듯하더니 이제 “엄마, 축구하고 올게” 하고 나서면 “엄마, 한 골 넣으세요”라고 한다.
축구를 시작한 뒤 주말에 가끔 우리 가족은 축구 연습을 함께 했다. 축구공을 하나 장만해 동네 작은 운동장으로 향했다. 남편이 연습 메이트가 되어줬고, 딸은 옆에서 킥보드를 타고 놀거나 소꿉놀이를 했다.
몇 번 함께 하니 딸도 축구공에 관심을 보였다. 축구공을 차 보기도 하고, 패스를 받아 보기도 했다. 물론 그녀가 찬 공은 그 누구도, 절대 막아서는 안 된다. 큰일 나기 싫다면 영유아가 찬 공은 절대 막지 마시길 당부한다.
축구공이 익숙해지니 딸도 함께 축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어린이집에서 축구했어”라고. 나중에 선생님이 보내 주신 사진을 보니 체육 시간에 정말 축구를 했더라. 축 구하는 사진과 함께 쓰인 선생님의 문구. ‘공놀이를 하다가 패스를 하는데 자세가 배운 자세 같았어요. 혹시 어머님 축구 하시는 곳에 가서 축구 한 적 있나요? 포즈가 선수 같았어요.’
뿌듯했다. 자연스럽게 축구를 받아들인 딸의 모습이, 당당하게 공을 차는 순수한 그 모습이. 쭈뼛쭈뼛 축구를 시작한 나와 달리 엄마, 아빠와 자연스럽게 축구를 하며 달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뭉클했다.
사실 축구 하는 아빠들은 많다. 하지만 축구하는 엄마들은 적다. 아빠가 축구하는 걸 구경하러 가는 아이들은 많지만 엄마가 축구하는 걸 보러 가는 아이들은 드물다. 자연스럽게 축구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축구를 배우는 모습은 1년이 넘도록 보여주지 못했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축구 센터에 와보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다른 회원들도 있었고, 내가 본격적으로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괜히 창피했다. 회원들은 가끔 아이를 데려오고, 남편이 보러 왔다. 선생님이나 회원들은 구경 와도 괜찮다고 했지만 매번 망설어졌다.
그러다 요일을 바꿔야 하는 날이 왔다. 남편이 내가 축구하는 요일 저녁에 아이를 봐줄 시간이 되지 않아 다른 시간 반으로 옮겨야 했던 것. 이번이 아니면 남편과 아이가 함께 축구 구경 오는 날이 쉽게 생기지 않을 것 같아 드디어 함께 센터로 향했다.
남편과 딸은 음료수를 들고 센터에 들어섰다. 회원들은 반갑게 인사해 줬고, 딸에게 조그만 축구공을 쥐어주며 갖고 놀라고 했다. 처음엔 쑥스러워 쭈뼛대던 딸은 이내 센터에 익숙해졌다. 아빠와 놀다가, 엄마가 연습하는 걸 보다가, 이모들과 축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기본기 훈련 후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됐다. 남편과 딸이 와서일까? 짧은 축구 인생에서 나름 제일 멋진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골대 옆 벽을 맞고 나온 공을 그대로 달려가 빈 곳으로 찼다. 회원들의 박수가 이어졌고, “남편이랑 딸 와서 오늘 잘 되는 거야?”라며 함께 좋아해 줬다. 코치님은 “이건 월드골이다. 인정”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어떻게 보면 과한 축하와 칭찬. 어떤 사람에겐 별거 아닐 수 있는 골. ‘월드골’ 같은 거창한 수식어를 듣기엔 다소 민망할 수 있는 순간.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나. 달리고 넣고 막고 맘껏 기뻐하는 것. 그 안에서 나를 응원하고, 너를 응원하고, 우리가 함께 응원받는 것. 그게 대수지.
딸과 함께 온 축구장에서 넣은 골은 그걸 보여준 순간 같았다. 꼭 골을 넣지 않아도 그랬을 거다. 함께 뛰고, 박수 쳐주며 응원하고, 서로를 북돋아주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중요한 거라는 것. 잘하든 못하든, 그저 내가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응원받고 응원하는 그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
아이에게 축구하는 엄마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아이에게 급 물었다. “엄마 축구하는 거 어때 보여?”
아이가 답해줬다. “너무 멋있어 보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