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한지도 벌써 만 1년이 지나고 축구 2년 차가 됐다. 아직도 극 초보. 꾸준히 했지만 여전히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 이제 막 1년이 넘고 얼마나 큰 실력 향상을 바라랴. 그저 천천히 낸 속도대로 축구를 즐기고 있다.
2년 차라고 꼭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다치지 않고 내가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매번 생각하니까. 계속 하긴 할 거니까. 가늘고 길게 축구를 하고 싶으니까.
한창 축구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고 나서 골 결정력이 부족할 때가 있었다. 드리블을 하거나 패스는 어느 정도 하는데 같은 팀에게 받은 공을 바로 차지 못하고 주춤했다. 한 번에 차지 못하고 주춤하면 어김없이 수비가 빠르게 들어와 있었다. 골 넣기는 더 힘들어졌다.
팀원이 어시스트를 기가 막히게 주는데 매번 받지 못했다. 주춤하다 차면 항상 골대를 벗어났고, 바로 차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냅다 발만 뻗으니 골 결정력이 있을 리 없었다. 짧은 경기지만 몇 번의 좌절을 맛봤다. 패스해준 팀원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때 친한 친구 아이에게서 해답을 찾았다. 축구를 좋아해 한창 배우고 있는 7살 남자아이였다. “OO야. 이모 요즘 골이 너무 안 들어가. 골대 앞에서 자꾸 주춤하게 돼. 그러면 이미 수비가 다 들어와 있고, 골을 못 넣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는 말했다. “어차피 수비한테 볼 뺏기나 골키퍼가 막아서 못 넣나 다 똑같으니까 그냥 드리블해서 뺏거나 빵 차버려요.” 그야말로 명언이었다. 골대 앞에서 수비한테 공을 뺏기거나, 과감하게 차서 골키퍼에게 막히거나 다 똑같은 거였다. 주춤하지 않고 그저 내 페이스대로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것들 신경 쓰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못할 수는 없었다.
또 한 번 의지를 다잡는 일도 있었다. 축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른 팀과 경기를 하게 됐다. 7년 정도 합을 맞춘 팀이라고 했다. 딱 봐도 우리 팀보다 연령대가 높았다. 온화한 말투로 “우리 재밌게 축구해요. 파이팅”이라고 말해 주셨다. 떨리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경기가 시작되지 상대 팀은 돌변했다. 가볍게 축구를 배울 때는 한적도, 당한 적도 없었던 강한 몸싸움. 몸이 닿았는데 마치 돌덩이 같았다. 탄탄을 넘어 딴딴했다. 온화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축구 경기에만 집중했다. 간간히 센 발음도 들렸다.
그들은 진심이었다. 초보들과의 경기지만 서로 소리치며 소통했고, 지치지 않고 달렸다. 나이는 내가 더 어린것 같은데 헉헉대는 건 나뿐이었다. 상대 팀은 그저 경기를 고루 뛰기 위해 교체할 뿐이었다. 지쳐서 나가는 이는 없었다.
당연히 크게 패배했다. 속절없이 당했다. 사실 우리 팀은 취미 정도로 축구를 하기 때문에 포지션이 주어지거나 고정적인 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력 차이는 상당했고, 다들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난 그때 축구가 더 재밌어졌다. 큰 자극이 됐다. 40~50대가 되었을 때 나도 저렇게 딴딴해지고 싶었다. 저분들처럼 축구에 몰두하고, 진심으로 뛸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온화한 미소 속에 열정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드럽지만 강한 내면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축구를 잘하기보다 계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속도, 나만의 방향을 유지하며. 얼마나 했는지보다 내가 어떻게 했냐를 돌아볼 수 있는 축구를 하고 싶다. 더 전진해도 좋고, 쉬어가도 괜찮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치지 않고 꾸준히, 재밌게 하고 싶다.
무엇이든 그렇다. 내 인생 속에 모든 일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망설이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천천히 해나가고 싶다. 좌절할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 극복하고 싶다. 그 안에서 성장하고 싶다. 내가 내게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축구를 계속 하긴 할 거다. 일단은 계속 하긴 하 거다. 잔잔하게, 그러나 뜨거운 마음으로 내 자존감을 +1 해나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