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쓰기로 했다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쓰는 것이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쓰지 않고는 출판을 할 수 없다. 큰 목표를 바라보느라 우리는 당연한 것을 놓칠 때가 있다.
먼저 책을 출판한 지인에게 어떻게 하면 책을 쓸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의 말은 단호했다.
"일단 써."
반대로 말하면 쓰기 시작한 사람은 많으나 그만큼 끝까지 쓰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다. 쓰기 시작한 사람 중 끝까지 쓴 사람, 또 그 중에서 누군가만 내 책을 출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진리다.
보통 에세이를 출간하기 위해서는 한글 파일 기준 70~8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있어야 한다. 한 꼭지에 한글 파일 1장 반~2장 정도의 분량이라고 쳤을 때, 40~50개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주제로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리가 브런치북을 만들 때만 해도 최소한 10개의 목차를 완성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막상 10개의 글을 완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브런치에서 연재 시스템을 만들어 브런치북을 제작하게 하는 것도 그렇게 완성되지 못한 글이 많다는 뜻일거다. 일단 시작한 이야기를 끝까지 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오죽하면 <끝까지 쓰는 용기>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끝까지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하물며 브런치북을 완성할 때도 그러한데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는 그런 글을 4배, 5배 이상 만들어야 한다. 가급적 많이 써두어야 적절하지 않은 글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은 걸러낼 수 있으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하루 이틀 만에 완성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금새 완성한 성의없는 원고처럼 보여도 작가는 그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십번 썼다 지우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때문에 내가 책 한 권을 써 본 후로는 어떤 책을 읽든지 일단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몇 번의 재수 끝에 어렵게 합격한 브런치 작가 중에도 몇 편 끄적이다 그만두는 사람이 허다하다. 왜일까? 그만큼 글쓰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도 채근하지 않고 게다가 밥벌이도 되지 않는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책을 쓰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일단 쓰세요’ 만한 정답이 없는 것이다. 밥이 되든 죽이 되든 일단 분량을 채워야 투고도 하고 출간을 할 수 있으니까.
어렵게 원고를 완성했다고해서 출간계약을 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베스트셀러에 올라 당장 떼돈을 벌 수도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글쓰기만큼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도 없다. 들이는 시간과 정성에 비해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쓴 작가는 많지만 두 권의 책을 쓴 작가는 많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처음에는 내 책쓰기라는 환상에 젖어 한 권을 완성한 후 생각보다 팔리지 않음에 당황하고, 수입이 없음에 실망한 사람들이 두 번째를 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출간을 목적으로 하는게 아니라면 글쓰기는 의미가 없을까? 아니다. 글쓰기처럼 나에게 위안을 주고 내 안의 감정을 정리하기에 좋은 매체도 없다. 나 또한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 속 시끄러웠던 생각들을 차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글이 돈이 되지는 않았지만. 때문에 꼭 출간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족을 위한 글쓰기도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영감이 떠오르거나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거나 쓰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만 이따금씩 써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책을 꼭 쓰고 싶다면, 출간을 목표로 하고 싶다면 다시 한번 당연한 소리지만 꾸준히 써야 한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썼다 수정해보고 하는 작업은 하면 할수록 는다. 다만 그 일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내심과 성실함은 필수다.
어떤 작가도 하루 아침에 뚝딱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작가는 없다. 유행하는 가요들 중에는 10분 만에 영감이 떠올라 작곡했다는 전설적인 곡들이 있지만 그것은 4분짜리 음악이기에 가능할지 모른다. 200~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만드는 일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것이다.
결국은 엉덩이의 힘으로 진득하게 앉아 분량을 완성하는 일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