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사랑 세탁기 때문에 애를 낳을 순 없잖아요

by 롸잇테리언

PART 2. 녹화와 방송 사이

하이라이트 ② 아기사랑 세탁기 때문에 애를 낳을 순 없잖아요






방송 작가들은 타로, 사주,

신점 같은 것들을 좋아했다.


아니, 거의 숭배하는 수준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대박이냐 쪽박이냐,

이 메인 언니랑 궁합은 어떠냐,

새로 온 PD는 어떤 성향이냐 같은 것들.


나도 선배들 손에 이끌려 홍대로,

이태원으로 많이도 다녔다.


점술가들은 내가 생년월일시를 불러주면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아, 세다.’는 말을 연발했다.


병화일주, 병오일간, 용띠,

그리고 간여지동.


지겹도록 들어 이제는 외워버린

나의 사주.


한마디로 불같이 추진력이 세고,

호불호가 강하며,

‘강강약약’이 심한 사람이라나.


‘뭐, 어쨌든 약한 것보다는

센 게 좋은 거 아니야?’


내 멋대로 좋게 해석하기로 했다.

‘팔자대로 산다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돌아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예대 재학시절, 나는 기강이 세고

터무니없는 언행들마저

예술로 승화되기도 하는 그곳에서

‘할 말 하는 대쪽 같은 신입생’을

담당했다.


군대놀이에 여념 없던 선배들도

유독 내 앞에서는 말을 아꼈는데,

한번은 술 먹고 우스갯소리로

내가 무섭다고 고백했다.


‘저한테 뭐 잘못하셨어요?’


세상 순두부처럼 생긴 애가 그러니

더 무섭다나.


나 참, 뭔 말을 못 하겠네.

덕분에 대학 생활이

조금 수월했던 것 같긴 하다.


할 말 못 하면 병 나는 애가,

나이를 좀 더 먹는다고 해서

철이 드는 건 아니었다.


종갓집에, 시집을 갔어도

나는 나였다.


사회 물을 일찍 먹은 덕분(?)에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결국 할 말은 어떻게든 전하고야 마는

며느리였다.


체감상, 임신에 대한 압박은

첫해가 가장 강렬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옅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종갓집의 어지간한 행사에는

다 불참하는 ‘별종 며느리’였으니까.


“어머니~ 녹화랑 겹쳐서 못 가요."


“거긴 명절도 없더냐?”


“어머니, 설날에 TV 틀면 나와요,

안 나와요?”


수년간 6mm 생활정보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며 온갖 마을 할머니,

이장님, 맛집 사장님들을

구워삶았던 입담으로 나는

집안의 실세인 시어머니를

내 편으로 만들었다.


아 물론, 중간중간 위기는 있었다.

어머니의 목욕탕 ‘크루’들이

손주 사진을 자랑했다거나.


그런 날이면 시어머니는 뭔가

토라진 말투로 반찬이 남아있는지, 같은

뜬금없는 연락을 해왔다.


종갓집에 시집가 코빼기도

안 비추는 며느리에게 이 정도면 양반이지.


“어머니~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일 촬영 못 할 것 같다는

맛집 사장님을 달래듯이,

나는 어머니를 달래고

체념시키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러다, 빼도 박도 못할 진짜 위기가 왔다.


시누이의 결혼.

시누이는 서른두 살의 나이로

첫사랑과 결혼했다.


시누이의 남편 될 사람은

군인이라고 했다.


전방에서 전방으로

일 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해야 하는

(가족이 더) 고된 직업.


시누이는 사랑을 좇아,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한 사람의 아내로 살기를 선택했다.


태어나서 30년 넘게 살았던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의 한 군인아파트에 둥지를 튼

남편의 여동생.

그도 기댈 곳이 필요했을 터였다.


언제 뜰지 모르는 낯선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정쩡하니,

아내에서 엄마로

스펙트럼을 넓힐 준비를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이 일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렇군요.”


“아무리 그래도 동생이

먼저 애를 낳는 건 좀 그렇지 않니....”


어머니는 수년을 미뤄두었던 말을

어렵게 꺼냈다.


작정하고 한 말이었지만

말 끝을 흐린 건,

나는 다른 시어머니와 다른

‘깨어있는 시어머니’라는

자부심을 부정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서로에게 별다른 소득 없었던

그날의 통화를 끝으로,

우리는 어색해졌다.


언젠가 겪게 될 일이라면,

여기서 굽히지는 말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친정 문제도

걸림돌이긴 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거잖아.


준비되지 않은 양육이 가져오는 재앙을

나는 너무 많이 봐왔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돼.


해가 바뀌고,

이 침묵을 깬 것은 시어머니였다.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잘 지내나~”


어딘가 들뜬 활자들이 불안했다.


요기 앞에 안경원이 새로 문을 열었는데,

거기서 오픈 이벤트를 하는데 내가 당첨됐다.

뭐 받은 줄 아나?”


아무도 대답이 없자 남편이 물었다.


“뭔데요?”

“아기 사랑 세탁기”


상상도 못 한 전개였다.

박스채로 포장된 세탁기 사진도

곧바로 올라왔다.


“너희 중 누가 가져갈래?

먼저 아기 낳는 사람 줄 거다.”


그때 조용히 나가기, 기능이 있었으면

나는 주저 없이 그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답은

‘읽씹’이었다. 침묵도 대답이니까.


그날 밤, 장문의 카톡을 썼다가

모조리 지웠다.


‘아, 모르겠다.’

맥주 여러 캔을 마시고 잠들기 전,

나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어머니, 아기 사랑 세탁기 때문에

애를 낳을 순 없잖아요.”



그날 이후,

가족 단톡방에 안부를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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