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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Feb 17. 2021

안녕하세요 전 여기 살고 있습니다.

본인 인생보다 회사 업무 계획 수립에 더 열중인 당신

우리에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1월 1일, 그리고 음력 1월 1일 설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정말 엊그제 한 것 같은데, 한 달만에 또 같은 인사를 주고받는다.

(벌써 일 년이 가버린 건가?)


예전에는 늘 새해 목표를 세웠다.

그것도 아주 정량적인 것들로.

토익 000점, 00 자격증 취득, 000 만원 모으기 등등

그리고 그것을 엑셀 파일로 만들고 매일, 매월 실천 여부를 체크했었다.


육아와 회사일을 핑계로 새해 목표는 잠시 멈추었다.

오늘도 잠자리에 든 나는 올 한 해 회사 사업계획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는 이내 '이 바보' 이불 킥을 했다.


나는 10년째 회사의 업무계획을 세웠다.

신문과 경제연구원들의 내년도 전망과 분석이라는 글들을 관심 있게 본다. 우리 회장님, 우리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신년사를 여러 번 읽는다. 대통령의 신년사, 기획재정부의 신년 계획을 찾아보며 대외환경 변화를 분석한다.

심지어 올해의 사자성어까지..


그리고 고민 끝에 올해 회사 업무계획을 작성한다.

목표, 비전, 전략과제, 중점업무, 상세 추진계획, 성과지표까지. 빈틈없이 만든다. 요리조리 각도 잡고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어본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나의 인생에 대한 계획은 등한시 한채.


회사의 미래를 그려나갔다. 아주 촘촘히 성공을 향해서

그래서일까? 회사 업무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이따금 내부와 외부에 인정을 받았다.

그런 만큼 나는 내 인생과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내 미래를 회사와 동일 시 하고 있었다.

내가 회사가 아니듯, 회사도 내가 아니었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20대 때는 계획이 있었다. (설마 이렇게 계획 했을까?)

늘 매년 말에는 내년도에 뭘 할지, 뭐가 하고 싶은지를 일기장에 적었다.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늘 계획이 가득 차 있어서 다음 해 연말에도 또 같은 계획을 세운적도 많았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사는 재미가 있었다.


10대 때는 가지고 싶은 물건에 대해 적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아이템, 패딩 옷, 휴대폰, 농구공  이런 것 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에서 점점 관심이 없어져 갔다. 점점 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없어졌다. 아니,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내가 내 인생에서 관심이 없어진 순간이었다.

난 그때부터 컴퓨터 모니터 속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난 결국 커서 마우스 커서가 되고 있었다. 리쌍의 노래 가사처럼

커서 난 뭐가 될까? 마우스 커서처럼 큰 세상을 나가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너 거기서 뭐하니?




회사일은 늘 바빴다. 집에 쉬거나 주말에도 회사 생각은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평일 저녁에도 어김없이 회식이 잦았다. 남는 시간은 가족들의 몫이었다.


첫째와의 공부, 둘째는 늘 아빠와의 놀이를 그리워했다.

아내는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난 그렇게 내 인생에 대해 잠시 멈춰서 생각해볼 시간조차 없었다. 유일한 휴식은 출퇴근 길 걸어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이 좋았다. 이따금 말도 걸어준다. 길이 나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고 있니?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잠시 멈춰본다.


아니, 코로나 때문에 강제로 멈춤 당했다.

승진 누락으로 열정이 잠시 멈춘 그때. 그제야 비로소 '내'가 보였다. 나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헉헉헉. 힘들어. 나 쉬고 싶어'
'너무 하는구나 다른 사람들만 신경 쓰고. 나 좀 보라고. 날'
'재밌게 살고 싶어! 내가 원하는 내 삶을 살고 싶다고'


내 마음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가 아닌 붓을 들었다.


목표는 정량적이어야 한다고 누가 그랬나?

그것들이 우리 인생을 달리기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새해 목표. 더 이상 재미없게 살기는 싫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림을 그렸다.


야들야들한 연어 초밥이 먹고 싶네.. 그래 올해는 초밥을 먹는데 시간을 내겠어!

올해 단 하나의 목표. 출판! 빼놓을 수 없지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과 한판 승부 조오 치.


아내와 산에도 가서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지.

샐러드와 요구르트처럼 좋은 음식으로 몸을 채우고 싶어



그림으로 새해 목표를 세운 것은 처음이었다.

새해 목표에서 힘을 빼니 한결 행복에 다가선 기분이다.


21 투애니원.

왠지 스물한 살 같아 느낌이 좋다. 가즈아!



남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인생
이제 우리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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