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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혜경 Apr 02. 2023

필담(筆談)

2화

    부모가 아이에게 한 짓은 학대 아동을 8년간 대해 온 나도 처음 보는 종류의 일이었다. 그림이 사실이라면 그 광경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이는 2년간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는 부모의 전서구 노릇을 했다. 다른 게 있다면 아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비둘기가 아니라.


    복지사는 말했다. 글쎄, 부부가 2년간 대화를 아예 안 했대요. 믿어져요?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성인 둘은 대화가 필요한 순간을 자주 맞닥뜨렸다. 그게 문제였다. 알 수 없는 계기로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않기로 결심한 성인 1, 성인 2는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아빠한테 해 달라고 해 줘. 가서 엄마한테 전해 줘. 엄마는 그거 싫다고 말해 줘. 자, 엄마한테 가서 이렇게 말해.


    말에 떠밀려 부모를 오가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소매를 뜯었다. 아이는 부모를 비둘기처럼 오가면서 헨젤과 그레텔처럼 과자 부스러기 대신 실밥을 흘렸다. 너저분한 실밥은 엄마든 아빠든 누군가 치웠을 것이다. 그들은 그 실밥에 담긴 뜻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이의 이상행동을 이상하다고 말로 꺼낸 건 어린이집 담당 교사였다. 아이가 걸핏하면 소매를 뜯어 대는 꼴이 비정상으로 보인 건 당연했다. 교사는 알림장에 친절하게 적었다.


    아이가 자꾸 소매를 뜯습니다. 가정에서 지도해 주세요.


    복지사에게 들은 얘기지만 그때 교사는 ‘불안 징후가 보인다.’고 쓰려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아이의 부모가 득달같이 달려와 따질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아이는 헨젤과 그레텔 짓을 2년간 반복한 끝에 제 성대를 그었다.   


       


    2회기는 동그라미 두 개, 세모 두 개, 말풍선 두 개로 끝났다. 아이는 펜을 놓으면 다시 잡지 않았다. 다음에는 볼펜이 아니라 연필을 쓰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자 관자놀이를 조이는 느낌이 났다. 아이들에겐 볼펜보다 연필이 친숙하다. 친숙한 도구를 쓰면 아이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게 옳은 생각인지 자신이 없었다. 아이 앞에 내민 볼펜은 이미 끝없이 반복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연필로 목을 그은 아이의 손에 연필을 쥐여 주고 싶진 않았다.


    응접실에 아이를 앉힌 복지사가 잠시만, 하더니 문을 닫았다.


    “상담은 어때요? 잘 되어 가요?”


    나는 복지사의 손에 붙잡혀 종이컵 안으로 침몰하던 티백을 떠올렸다. 화가 났다. 하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고작 티백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우습지 않은가.


    “그냥,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복지사가 대놓고 실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렇게 덧붙이고 방긋 웃었다. 나는 그 눈에 스치는 말을 읽었다.


    너야 그렇겠지. 팔자 좋은 소리 한다.     




    퇴근길에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앞에는 근린공원이 있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까르륵대고 있었다. 뒤로 자지러지던 아이 하나는 아예 균형을 잃고 자리에서 넘어졌다. 그러자 아, 뭐야, 아하하, 하는 요란한 말과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좋을 때구나.


    나는 봉지에 넣었던 맥주를 꺼내어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교복이 눈에 익다 했더니 상담 센터 바로 옆 중학교 교복이었다.


    아니, 들어 봐. 그래서 내가 걔한테 먼저 페메했거든? 근데 미친, 1분 만에 답장 옴.

    와. 미쳤다. 그건 그냥 네가 말하길 기다린 거 아냐?

    내 말이!


    아이들의 수다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페메가 뭐지. 메신저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펜을 꾹 쥐고 있던 아이가 겹쳐 보였다.


    그 아이도 교복을 입는 나이가 되면 요란하게 웃고 떠들 수 있을까.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말을 나눴다. 그러다 옆 친구 등짝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때리기도 했고, 갑자기 손바닥을 마주하고 손뼉을 치기도 했다. 손날을 세워 목에 대고 흔들며 ‘그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결국 맥주 한 캔을 다 마신 구경꾼이 이야기꾼들보다 먼저 지쳐 일어섰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빈 맥주 캔이 캉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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