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 주 주말, 태경은 은숙의 집에 갔다. 두 달 만이었다.
“어이구, 바쁘신 분이 오셨네.”
현관문을 열어 준 은숙이 처음 건넨 말이었다. 태경은 대꾸 없이 훅 들어갔다. 어깨 너머로 은숙이 물었다.
“비밀번호 알려줬는데 왜 자꾸 벨을 눌러?”
퉁명스러운 어조였다. 태경은 칭칭 감은 목도리를 풀어내며 희미하게 치미는 짜증을 눌렀다. 꽤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지만 지난 세월 덕에 노련하게 해낼 수 있었다.
“여기 엄마 집이야. 내 집 아니고.”
정적이 흘렀다. 태경은 익숙하게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바로 위 오른쪽 찬장. 태경이 은숙의 집에 올 때 제일 먼저 살피는 곳이었다. 말없이 뒤따라온 은숙이 들릴 듯 말듯 중얼거렸다.
“하여튼 정 없는 기지배……. 누굴 닮았는지.”
그러게. 그건 태경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태경은 목구멍이 시큰하게 저리는 걸 느꼈다. 애써 찬장 안 약통들을 꼼꼼히 살피는 체했다. 은숙이 오십대에 접어들어 갑자기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을 무렵, 태경은 약을 조달하는 역할을 자청했다.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해 제 명의의 통장에 숫자가 찍히던 시기였다.
앞으로 엄마 약 내가 살게. 뭐 먹는지, 어떤 브랜드 제품이면 되는지 알려줘. 다 떨어질 때쯤 연락하고.
그 찰나에 보았던 은숙의 얼굴을, 태경은 아직도 기억한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미묘한 표정이었다. 순식간에 표정을 지운 은숙은 샐쭉 웃었다. 뭐 빨간 내복 같은 거야? 그 말이 다였다. 그래서 태경은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야. 그런 건 됐으니까 연락이나 잘해. 먼저 연락하면 손가락이 부르트니? 어?”
은숙이 태경의 뒤통수에 대고 따발총처럼 쏘아붙였다. 태경은 묵묵히 약통의 뚜껑을 열고 남은 양을 가늠했다. 콜라겐, 오메가쓰리, 비오틴, 종합비타민……. 이건 아직 한 달은 먹을 수 있고. 콜라겐을 새로 살 때가 됐구나. 어디 회사 거가 좋다고 했더라. 약통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목석같아서 키우는 맛도 없고. 그렇게 무뚝뚝하니 저 좋다는 놈 하나 없지.”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났다. 결국 태경이 졌다. 쾅. 찬장 문을 거칠게 닫은 태경이 팩 돌아섰다. 은숙이 어디 해보라는 듯 팔짱을 끼고 섰다. 날 선 시선이 팽팽하게 마주쳤다. 태경은 기가 찼다. 은숙의 잔소리가 너무나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둘은 그렇게 정다운 모녀 사이가 아니었다. 은숙은 태경이 독립한 이후 반찬통 하나 들려준 적 없는 엄마였다. 연락을 먼저 안 했다고 서운해하다니. 둘은 삼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이런’ 모녀 사이로 살았다. 그 정도면 합의됐다고 봐야 옳지 않은가. 별안간 뒤통수를 때리는 저의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엄마가 먼저 하지 그랬어.”
“뭐?”
“꼭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해? 엄마가 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언제부터 그렇게 연락을 신경 썼어? 엄마 이러는 거 진짜 새삼스러워.”
은숙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태경이 제일 오래, 가장 많이 보아온 얼굴이었다.
“너 지금 그게 할 말이야?”
되묻는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금세 붉게 달아오른 은숙의 얼굴을 본 태경이 입을 다물었다. 무섭거나 미안해서가 아니었다. 익숙한 상황에 안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벼려져 들뜨려던 신경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은숙은 터질 듯이 벌게진 얼굴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가. 엄마는. 내가 좀 있으면 환갑인데. 아무리 그래도 네가 딸이 돼서는.
태경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키우는 맛도 없고,라니. 진행형으로 말하기에 태경은 이미 다 커버렸다. 그리고 실로 은숙이 태경을 ‘키우는’ 입장이었을 때도 둘은 이런 문제로 다툰 적이 없었다.
“가족이라곤 우리 둘뿐인데.”
맥락 없이 이어지던 생각이 툭 끊겼다. 이질적인 문장에 태경은 눈을 바로 떴다. 은숙은 어느새 눈을 내리깔고 애먼 손톱 밑 살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꾹꾹.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가 다시 벌게졌다. 태경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어느 하나 낯설지 않은 게 없었다. 가족. 우리. 둘뿐. 이토록 각별하고 애틋한 낱말이 다 있나.
토해진 낱말들이 목을 옥죄었다. 은숙은 은숙대로, 태경은 태경대로 침묵을 고수했다. 은숙은 자신이 그렇게 말해놓고도 그 말에 퍽 당황한 눈치였다. 태경은 은숙의 얼굴을 멀뚱히 보고 있었다. 아래를 골똘히 바라보는 무구한 눈. 조금 전 은숙이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누굴 닮았는지.’
그 말처럼 은숙과 태경은 외적으로 닮은 구석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태경은 은숙을 볼 때 종종 성주를 겹쳐보곤 했다. 아이처럼 동그란 볼이라든지, 살짝 아래로 처진 눈매 따위가 비슷했다. 성주를 생각하는 동안에도 은숙의 손톱 밑 살은 침묵에 질식했다 소생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태경이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움찔 떨었다. 오랜 습관 때문이었다. 어릴 때 은숙이 애꿎은 손톱 밑 살을 혹사시키면 태경은 그 손을 꼭 쥐었다 놓곤 했다. 도망치듯이 손가락을 거두면 은숙은 태경의 손가락 끝을 시선으로 좇고는 곧 양손을 한 번씩 꼭 모았다가 쫙 펼쳤다. 무언가를 털어내듯이. 태경은 그 손가락들이 동그랗게 오므라지는 순간을 보는 걸 좋아했다. 은숙의 손은 아주 작아서 그렇게 모으면 마치 아기 손 같았다. 태경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
은숙이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 은숙을 은숙답게, 그러니까 엄마답게 하는 낱말이었다. 태경은 속으로 고쳐 물었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
아빠. 은숙이 그 사람으로부터 자기 자신과 어린 딸을 분리하기로 결정한 날부터 태경이 한 번도 발음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태경은 지금의 자신이 이 말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은숙 앞에서는 절대 시도할 수 없었다. 태경은 이 당연한 규칙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 모순은 핏줄 안에 흐르는 피가 어떤 모양일지 상상하게 했다. 때로는 피가 끓는 듯했고, 때로는 핏줄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여상했으며, 때로는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아 몹시 외로웠다.
눈살을 찌푸린 채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은숙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훨 낫지. 뚝뚝하니 믿음직하고.”
“…….”
“남자도 아니었어, 그건. 책임감도 없이 입만 살아가지고. 힘들면 그저 도망가기 바쁜 한심한 작자.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니까. 주변은 몰라. 이래저래 퍼주고 다니니 지들은 그저 좋은 놈인 줄 알지. 태경 엄마는 좋겠다, 그러데. 사람이 참 다정하다고.”
은숙이 중얼거리다 말고 픽 웃었다.
“살아보라지. 다정이 사람을 어떻게 말려 죽이나.”
태경은 왠지 목이 메었다. 숨이 밖으로 나가려다 턱, 턱, 걸려 멈추었다. 은숙은 태경의 눈치를 흘깃 살폈다. 은숙이 가는 한숨을 뱉었다. 참으려다 실수로 새어 나온 신음 같이 들렸다.
“콜라겐 떨어졌어. 그거나 주문해줘.”
은숙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걸음이 가벼웠다. 연락 논쟁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태경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봤어. 알고 있었어. 엄마,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태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찬장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