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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혜경 Apr 02. 2023

벽장

6화

    볕이 따뜻한 날이다. 태경은 차창 밖을 보고 있었다. 어떤 차의 뒷좌석이었다. 아직 앉은키가 크지 않은 탓에 시야가 좁았다. 답답해서 엉덩이를 몇 번 들썩여도 사정은 비슷했다. 결국 태경은 눈을 둥글둥글 바쁘게 굴렸다. 눈알이 위로 향했다. 나뭇잎이 끝없이 산란하게 펼쳐졌다. 어쩌다 사이사이 틈이 생기면 햇빛이 따갑게 쏟아졌다. 태경은 그 빛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볕이 눈꺼풀 위에 결을 내며 지나갔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날이 푹하네. 엊그제만 해도 춥더니.”

    “이제 봄이야, 엄마.”


    운전석에 있던 노부인이 말을 꺼내자 옆에 앉은 젊은 여자가 명랑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차창을 내렸다. 부드러운 바람이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아, 놀러가기 딱 좋은 날씨네. 언니는 하필 이런 날…….”

    “너 말조심해. 뒤에 태경이 있잖아.”

    “아휴. 알어, 나도.”

    “벚꽃 피고 놀러 가도 안 늦어. 아직 볼 것도 없구만, 뭘.”


    시큰둥하게 말한 노부인도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태경은 눈을 뜨고 괜히 발을 까딱거렸다. 반짝반짝한 구두 앞코에 자기 얼굴이 비쳐 보였다. 시무룩한 표정. 엄마가 평소엔 잘 신기지 않는 빨간 구두여서 그 구두를 신을 때 태경은 항상 기분이 좋았다. 태경은 자신의 얼굴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오늘이 처음이었다. 빨간 구두를 신고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언니도 참 대단해. 엄마는 알고 있었어?”

    “내가 알았으면 이 지경까지 오게 뒀겠니?”

    “하긴. 어릴 때부터 그래. 뭐든 자기 혼자 하려고 했잖아.”

    “지고는 못 사는 성미라 그래, 걔가. 내가 그렇게 지고 살아라, 지고 사는 게 이기는 거다 했는데. 세상 어느 남자가 그 성질을 감당하느냐고. 결국엔 봐라. 지 아무리 고집 세고 잘나봐야 여자 혼자 애를 어떻게 키우려 그러는지.”

    “왜, 더 잘난 형부 만나면 되지.”


    여자가 깔깔 웃었다. 창 밖에 지나가는 햇살처럼 가벼운 웃음소리였다. 대답은 없었다.


    차는 태경의 동네에서 멈췄다. 조수석의 젊은 여자가 내렸고, 그 여자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어 태경도 내렸다. 둘은 나란히 운전석 옆에 섰다. 노부인이 창 너머로 태경을 보았다. 측은하게 보는 눈이었다. 노부인은 태경에게 할머니가 바빠서 먼저 가는 게 미안하다며 다음에는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모와 재밌게 놀라고 덧붙였다. 태경은 고개만 겨우 끄덕였는데, 그런 살가운 말 이전에 할머니와 이모라는 말부터 낯설었기 때문이다. 운전석 문이 탁 닫히고 차가 출발하자 이모라는 여자는 잠시 태경을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태경도 이모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뭔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입술을 좌우로 씰룩였다. 그럴 때마다 탱탱하게 솟아오른 볼이 이리 솟았다 저리 솟았다 했다. 태경은 이모란 무척 예쁜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구나, 생각했다. 이모는 햇볕 아래 그 자리가 잘 어울렸다. 탱탱한 볼 위로 햇살이 미끄러졌고 입술은 생기 넘치는 붉은색이었다. 태경은 뻣뻣해진 목을 수그리다가 문득 이모의 손을 봤다. 손이 반짝반짝 빛나서였다. 태경은 잠깐 망설이다가 쭈뼛쭈뼛 물었다.


    “이게 뭐예요?”

    “응?”


    태경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린 그녀가 손을 잘 보이게 들었다.


    “이거?”


    뭘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태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태경이 뭘 골똘히 보는지 살피다가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는데 그 모습이 추해 보이진 않았다.


    “왜, 예뻐?”


    태경은 아무 말 없이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이모는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보면서 씩 웃었다. 정확히는 왼손과 오른손의 손톱들을 보면서. 열 개의 손톱들이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투명 매니큐어 때문이었다. 어린 태경은 몰랐다. 지저분한 각질을 꼼꼼히 제거하고, 손톱을 깔끔하게 다듬고, 아무 색도 없는 매니큐어를 발랐을 뿐인데. 그건 정말 별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흠, 하더니 태경 앞에 쭈그려 앉았다.


    “해보고 싶어?”


    그때 태경은 은숙을 떠올렸다.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태경이 아무 반응도 없자 그녀는 어깨에 메고 있던 핸드백을 뒤적이더니 작은 매니큐어를 꺼냈다. 진한 분홍색이었다. 태경은 그걸 보고 어른들은 모두 이런 걸 들고 다니는 건가, 생각했다. 아마 덧바르기 용이었을 테지만.


    “손 줘봐.”


    이모가 손바닥을 척 내밀었다. 태경은 그녀의 흰 얼굴과 분홍색 매니큐어를 번갈아 보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자 그녀는 답답한 듯 손바닥을 흔들었다.


    “손.”


    다그치는 어조가 손을 더 움츠리게 했다. 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태경의 손을 휙 잡아끌었다. 태경은 무력하게 손을 내주고 말았다. 곧 매니큐어 솔이 조그마한 손톱 위를 희롱하듯 훑고 지나갔다. 창피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길에 아무렇게나 쪼그려 앉은 여자와 손을 내준 채 가만히 서 있는 자기 자신. 손톱보다 태경의 얼굴이 먼저 붉어졌다.


    반면 그녀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매니큐어를 꼼꼼히 바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모랑 약속 하나 할까?”


    태경은 그녀의 내리깐 속눈썹을 보고 있었다. 틈 없이 빽빽하고 기다란 눈썹.


    “이모가 이거 해줬으니까 태경이는 집에 좀 일찍 가는 거야. 그래도 괜찮지?”


    그녀가 눈을 들었다. 그녀의 속눈썹을 훔쳐보고 있던 태경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모는 집 앞까지 태경을 바래다줬다. 태경의 손톱을 보고 예쁘다고 칭찬도 몇 번 했다. 정작 태경은 부끄러워서 그 손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집에 왔을 때 태경은 한참을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집이 평소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후의 햇볕이 거실로 쏟아졌고, 허공에 흰 점 같은 먼지가 떠다녔다. 호젓했다. 째깍, 째깍, 째깍. 초침소리가 들렸다. 뚱땅거리며 시끄럽게 피아노를 치던 윗집 아이도, 뭐라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우던 옆집 아저씨도 태경이 모르는 사이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진 것 같았다. 태경은 한참 뒤에 빨간 구두를 벗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벽장이 있었다. 엄마의 공간이자 동시에 태경의 아지트였다. 엄마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옷과 태경이 유치원에서 그려온 그림, 사진을 모아놓은 앨범 따위를 그 안에 모아두곤 했다. 벽장 안엔 큰 장미가 그려진 담요가 바닥에 깔려 있었는데 거기 엎드려 얼굴을 묻으면 엄마 냄새가 났다. 엄마도, 아빠도 일을 하느라 집에 오지 않는 밤에는 벽장 안에서 엄마 냄새 나는 그 담요를 덮고 잤다.


    태경이 벽장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낑낑거리며 문을 닫는데 네모난 분홍 손톱들이 눈에 띄었다. 낯설고, 예뻤다. 태경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제야 손톱을 꼼꼼히 살폈다. 손톱은 이모의 그것처럼 반짝이지도, 눈부시지도 않았지만 바라볼수록 배가 부듯했다. 종이접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랑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현관문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철컥, 문고리 안에 열쇠가 맞게 들어가는 소리. 끼익. 낡은 경첩에서 나는 소리. 태경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겁먹은 손톱들이 손바닥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아빠일지도 몰라. 그때는 왠지 문을 연 게 아빠라고 생각했다. 거실에서 털썩, 뭔가를 아무렇게나 놓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힘없이 발을 끄는 소리였다. 소리의 방향이 안방인 걸 눈치 챈 태경이 한층 더 숨을 죽였다. 공포영화 속 주인공처럼 벽장문에 난 빗살 틈으로 누가 등장하는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안방으로 들어선 사람은 아빠가 아니었다. 은숙이었다. 태경은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누가 잡아챈 것처럼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은숙이 안방 가운데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그건 태경이 처음 보는 엄마의 눈물이었다. 은숙은 널브러졌던 다리를 모으고, 어깨를 한껏 웅크린 채 울기 시작했다. 옹송그린 몸이 형편없이 떨렸다.


    으허어엉. 으어엉.  


    태경은 은숙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엄마는 떼를 쓰는 아이처럼 울었다. 으허엉, 하다가도 으아앙, 했다. 숨을 고르느라 훌쩍대다가도 빽 소리를 내지르며 울었다. 안방 바닥을 주먹으로 퍽퍽 치기도 했다. 태경의 숨이 거칠어졌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공포영화 속 주인공이 그러하듯, 다른 곳을 볼 수가 없었다. 목이 뻣뻣했다. 태경은 거칠게 치받는 호흡을 고르며 겨우겨우 고개를 숙였다. 다급했다. 손을 뻗어 벽장문을 벌컥 열고 싶다가도, 그럴 수가 없었다. 꽉 쥐고 있는 주먹 틈으로 어른어른 분홍색이 비쳤다. 갑자기 등을 따라 소름이 죽 끼쳤다. 두피에 식은땀이 났다. 태경은 허둥지둥 손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딱딱. 딱딱. 혀끝에서 불쾌한 맛이 감돌았다. 분홍색 매니큐어가 장미 담요 위로 바스러져 내렸다.


    태경은 거친 숨을 삼켰다 뱉고, 뱉다 삼키면서 손톱을 씹어 잘라냈다. 어느 순간 눈물이 났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입술 틈으로 나오는 건 손톱 부스러기들과 히익, 히익, 하는 간헐적인 숨소리뿐이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벽장 안에서 이 분홍색 손톱들과 함께 질식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너…… 여기서 뭐 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은숙이 물었다. 벽장 속의 괴물이라도 본 것 같은 눈이었다. 말투는 평소의 엄마와 같았다. 태경은 두려움에 잠겨 은숙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히끅. 딸꾹질 같은 울음이 터졌다. 담요 위에는 분홍색 손톱들이 산산이 조각난 채 뒹굴고 있었다.


    그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은숙은 불같이 화를 냈다. 평소에도 곧잘 화를 내는 엄마였지만, 태경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엄마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할머니와 이모는 그 이후로 다신 만날 수 없었다. ‘그 사람’,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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