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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혜경 Apr 02. 2023

벽장

9화

    태경이 해운대에서 샀다며 물고기 모양 장식품을 건네자, 은숙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부산을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했다. 은숙이 물었다.


    “부산엔 왜 갔는데?”


    태경은 어깨만 들썩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은숙도 구태여 더 묻지 않았다.


    은숙은 금붕어를 길렀다. 태경은 거실 한 구석에서 눈을 멍청하게 뜬 금붕어를 구경했다. 원래 태경은 엄마의 집에 올 때마다 금붕어를 보는 걸 좋아했다. 은숙과의 대화에 열을 올리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이전에 둘의 대화가 아예 사라진 건 은숙의 변화 때문이었다. 태경이 삼십대가 되자 대화 도중 은숙이 먼저 화를 내는 일이 늘었다. 뜬금없이 벌컥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건데?”, “그거 때문에 남자를 안 사귀는 거야?” 하는 식이었다. 유독 예민한 클라이언트 이야기에도, 잘못 산 주방세제 때문에 곤욕을 치룬 이야기에도. 태경은 당황스러웠다. 까탈스러운 클라이언트와 거품이 잘 나지 않는 주방세제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결혼과 연애가 튀어나온 걸까. 은숙은 그럴 때마다 지치지 않고 일장 연설을 이어갔다. 엄마 친구 봉선이 알지, 봉선이 딸이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 은숙의 말이 끝날 때까지 태경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태경이 서른둘이 된 지금. 은숙은 더 이상 친구들과 그들의 결혼한 자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태경은 은숙의 주방 찬장을 열어 약이 얼마나 남았나 보고, 은숙은 그런 태경을 정 없다 타박할 뿐이다.


    태경은 말없이 어항에 있는 금붕어를 눈으로 쫓았다. 그동안 은숙은 채소를 썰고, 국을 끓이고, 간을 보고, 이따금 텔레비전을 흘깃거렸다. 딱. 딱. 딱. 딱. 칼날이 원목 도마를 때리는 소리. 희미하게 들리는 드라마 대사. 배경처럼 깔린 소음 위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태경은 광합성을 하며 뽀글뽀글 숨을 뱉는 수초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 사이를 금붕어 한 마리가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다. 금붕어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전과 같은 아이가 아닌 건 알고 있다. 색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있던 금붕어는 몸 전체가 선명한 주황색 비늘로 뒤덮여 있었는데, 지금 있는 금붕어는 머리와 등만 주황색이고 나머지는 흰색이라 흡사 얼룩진 것같이 보였다. 금붕어는 끊임없이 입을 뻐끔거렸다. 멀뚱멀뚱 뜨고 있는 눈 대신 입을 깜빡이는 것처럼. 

    

    태경은 생각했다.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 이 금붕어는 물에 사는 걸 의아하게 생각해 본 적 있을까. 자신이 물에 살면서 입을 뻐끔거리고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것에 의문을 품어본 적 있을까. 자신이 왜 금붕어라 불리는지 생각해 본 적 있을까.     


    뽀글뽀글. 수초 사이에서 물방울이 솟아올랐다. 금붕어가 그 사이로 시꺼먼 눈알을 빼꼼 드러냈다. 태경은 웃었다.     



    

    태경은 다시 최면치료를 받으러 가지 않았다.     


    손톱은 자란다. 성주는 여전히 곁에 있고, 은숙은 여전히 우악스럽다. 그 어느 것도 재난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존재한다. 자연스럽고 온전하게.     


    그리고 마침내 또, 봄이 온다.     


    이제 벽을 바라보고 누워도 금세 잠이 왔다. 태경은 이유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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