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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24. 2024

인생에서 좋은 때란 언제일까?

큰아이 고3, 작은 아이 중2, 갱년기 문턱에 선 부부,

우리 넷은 매주 교회에 간다.

셋은 모태신앙이고, 불교집안에서 자란 나는

긴 사연끝에 크리스천이 되었다.

 holy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조합,

하지만 우리가 교회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기까진

몇 번의 산이 있었다.    

  

밤늦게 게임을 한 탓에 일어나기 짜증나는 마음을

'왜 교회에 다녀야 하냐'는 느닷없는 질문으로

도전하는 한 아이,

교회는 가고 싶지만 하필 입을 옷이 세탁기에 있으며

오늘 그 옷을 반드시 입겠다는 다른 아이의 지랄.

그 사이, 결국 욱함을 표출해버려 아이의 '심기'를

건드린 남편.

강도 높은 무언의 전쟁을 치르고 교회로 오는

차 안에선 누구도 입을 떼지 않은 뒤,

비로소 로비에 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아이고, 집사님! 이렇게 가족이 모두 매주 교회에

잘 나오고 너무 보기 좋네요.

아들들도 이렇게 훤칠하게 다 크고 든든하겠어요.

지금이 제일 좋은 때야! 진짜 좋은 때지!"     


귀를 의심했다.

'좋은 때라고?

지금 우리 넷의 표정을 보기나 하고 하는 말씀인가?'

연세가 지긋한 권사님은 연신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우리 옆으로 섰다.   

   

불현듯 이분은 10년 전쯤에도 내게 그랬다는 게

떠올랐다.

두 아들의 넘치는 장난기를 감당하기 힘들어 날로

살이 빠져가던 내가,

양손에 한 놈씩 잡고 '마치면 이곳에서 엄마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하던 순간,

그때도 "너무 좋은 때네요!

이때가 제일 좋은 때야!"라고 그랬었다.

     

그때는 ‘참아(?) 넘겼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아이들이 한창 귀여울 때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속 모르는 소리 하시네'라는 맘은 감춘 채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도대체 지금은 왜?

극강의 사춘기를 지나는 지금이 어떻게 좋은 때일 수 있지?

나는 '이유나 들어 보자'는 심정으로 다소 도전적으로 되물었다.


"왜요? 권사님, 지금이 왜 좋은 때에요?"


예기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권사님은

"애들이 아직 내 집에서, 내가 해주는 밥 먹을 때가...

그 때가 좋은 때죠. 곧 떠날테니까" 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의외의 대답이긴 했지만 나는 동의하는 말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입을 꾹 다물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깊은 절망의 말을 서슴지 않을

만큼 나는 이 아이들의 엄마 역할이 버겁기도 했고

또 그 무렵,

코로나로 아이들이 2년간 줌수업을 하면서 밥을

해대느라 손목 관절염까지 온 때였으므로.     




나는 지금껏 살면서, 내가 ‘좋은 때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학창 시절엔 공부로, 청년 땐 취업으로, 결혼 후엔

육아로, 중년엔 자식 문제로 모든 시절마다 눈앞에

닥친 숙제들이 산더미 같았다.

기질적으로 걱정이 많아서 힘겹게 느꼈을 수도 있고,

건강하지 못한 몸 때문에 좀 더 고됐을 수도 있고,

혹은 내 삶에 실제 더 버거울 만한 일들이 많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남들이 좋은 때라고 말하는 그 순간들을

지나면서도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그런 내가 지나치게 염세적으로 보일까봐 애써

드러내진 않았지만 속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모순이 한 가지 있었다.

후배 작가들이 워킹맘으로서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을 때마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진짜 좋은 때였어'

'단언컨대 그때가 행복한 때야' 라는 말을

내가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거였다.

20대 막내 작가들에게도,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기고

결혼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도

늘 같은 말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진심이었다.      


그러고 보면 결국 나는 내게서 지나간 모든 때를

좋은 때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학창 시절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읽으며

그가 천재라고도 생각했었다.

'지나간 것은 아름답고 현재는 언제나 괴롭고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인생의 비밀을 통찰해낼 수가

있었을까 감탄했었다.

그러면서 현재는 괴로울 수 밖에 없고,

과거는 언제나 그리운 것이라고 위안을 삼았었다.   

   

하지만 권사님으로 인해 ‘좋은 때’라는 말을

이리저리 살피는 시점에서 의구심이 생겼다.

만약 이런 논리대로라면, 내가 치를 떠는

지금 이 시기도 결국 통과하고 난 다음에

좋은 때가 될 것이 아닌가?


그보다 더, 그렇다면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좋은 때를 자각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것인가.     


언젠가 나는 나와 사이가 각별했던 구순의 시할머니께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생을 뒤돌아볼 때 가장 행복했던 한 장면을 꼽으라면 언제냐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할머니는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이었는데

어느 추석날, 어린 7남매를 목욕을 시키고

장날 사온 옷을 입혀서 방에 나란히 앉혀 놓았던

그 순간이 너무나 예쁘고 좋았노라고.

사진기가 없어 사진 한 장 못 남긴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고 하셨었다.      




나의 의구심과 할머니의 대답이 꼬리를 물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마 그 무렵이였던 듯하다.

나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중간중간,

매일 몇 장의 사진들을 숙제처럼 찍기 시작했다.

감탄이 나오거나 뭉클하거나 소중하거나

때때로 아름답거나 빛난다고 생각되는 순간을.

아무리 염세적인 나일지라도,

단 한 번도 인생의 행복한 때를 누리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이제라도 모든 시절에 숨어있을,

그래서 놓쳤을지도 모르는 행복의 순간들을

잘 감각해보자 싶었다.

할머니처럼 애통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답사를 실패하고 나오던 순간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짠하고 나타나는 해무리를,

저녁을 먹고 생크림 듬뿍 올려진 프라페를 사들고

남편과 걷는 산책길을,

몇 달째 감감 무소식이던 만세 선인장이 볼록

새 층을 내는 순간을,

아들 녀석이 난데없이 내가 좋아하는 꿀꽈배기를 사와식탁에 툭 던져두고 가던 때를,

두 아이가 몇 달 만에 대화란 걸 하고 있는 모습을

몰래...      


어떤 날은 한 컷도 없기도 하고

어떤 날은 겨우 두 어 컷 건져지기도 했다.

그런 귀한 찰나들을 촘촘히 모았고

‘찰나의 기록’이라 이름 붙여 인스타 비공개계정에

모은 지 1년 반쯤 지났다.


예민하게 촉수를 세우고 순간을 감각하는 이 일들이

'좋은 때'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지는 않았다.

내가 갑자기 삶을 아름답게 충만하게 바라보는

사람으로 달라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푸시킨이 훌륭한 철학가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약간의 변화를 찾자면

‘나는 살면서, 좋은 때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문장을

'좋은 때를 살기도 했으나,

그 가운데를 지나는 순간에는 느끼지 못했다‘ 정도로

수정하게 됐다는 것.


그리하여, 지금은 내가 지나고 있는 이 시절 곳곳에

놓인 행복의 조각을 충실히 찾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충실함이 어떤 시절을 지나고

있더라도, 빛나는 순간을 찾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이 찰나의 기록을

계속해볼 참이다.

'현재는 언제나 괴롭고'라는 푸시킨의 시에

조금은 덜 공감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그 순간을 감각하기 위해

촉수를 세워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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