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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13. 2024

시청률은 무엇으로 잡는가

큰아이가 초등 2학년, 둘째가 유치원 다닐 때, 처음 자연인 프로를 시작했다.

 과연 두 아이를 두고 1박 2일 답사와 3일간 최종 편집 밤샘 기간을 매달 버틸 수 있을까...

자연인을 찾는 일부터 시청률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팀의 가장 연장자이면서 가장 초짜인 나.

아이 키우기 편하려고 기업 방송만 몇 년째 하는 내가 초라해보일 무렵, 내심 나는 큰맘을 먹었었다.

     



해는 강렬하다 못해 따갑기까지 했던 7월의 첫 답사.

주소가 잘못된 건지 피디와 나는 30분 넘게 산길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포장된 길 하나를 발견하고서는 긴가민가 가고 있는 찰나, 갑자기 퍽 소리를 내며 차가 멈췄다.

 범퍼가 크게 망가진걸까...

애써 침착하게 내렸건만 웬걸, 차에선 이미 검정 오일이 줄줄 새고 있었다.

새로 닦은 듯한 도로는 차에서 나온 검정 오일로 물들여지고 있었고, 쉽게 멈출 거 같지 않았다.

생각보다 차는 심각하게 망가진 듯 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건 그곳에선 전화가 안 터진다는 사실.

어찌할 도리 없이 피디는 차를 지키고 있고, 나는 전화가 터지는 곳을 찾아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벌개진 얼굴과 묶은 머리 사이로 땀은 범벅이 됐고 10여분을 내려가도 전화는 먹통이었다.

이제 피디는 보이지도 않았고, 고라니라도 튀어나올 듯 우거진 숲길...

혼자 헤매고 있자니 덜컥 겁도 나고 문득 화도 났다.      


오늘 만날 자연인은 '똘끼 충만' 60대 노총각, 뱀이 마당에 수시로 나올만큼 집도 깊은 산에 있고

염소 문제로 동네 사람들과 폭력 시비가 붙어 냉전인 적도 있었다고 하고, 특이하게도 시를 써서 공모에 보낼 생각이라고 하니...

분명 아주 독특한 캐릭터일 것이다.

꼭 섭외해서 첫 시청률은 잘 나오게 해야지...

그 소박한 내 욕심조차 과했단 말인가?

대상도 없이 원망을 토해내던 바로 그때였다.    

 

여전히 먹통인 전화를 들고 마치 다른 우주와 통신이라도 할 듯한 기세로 핸드폰을 든 팔을 뻗은

내 앞으로 차 한 대가 나타났다.


"누구세요?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나를 보고 나보다 더 놀란 그쪽은 이 산에 새로 난 도로를 감리하러 온 공무원이었고,

들어 보니 우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로를 가다가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우리 프로그램의 열성팬이였다.

 흔쾌히 우리를 돕겠다는 그 구세주는 견인차를 산으로 불러 주었고, 나를 이장님댁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들 덕에 피디는 견인차와 함께 카센터로 서둘러 갔고, 나는 이장님의 산악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한참 올라 간신히 자연인의 집 마당에 내릴 수 있었다.


때마침 달려 나온 자연인...

그런데, 분명, 그는 춤을 추며 나오고 있었다.   

   

"우와, 여자가 왔다!

산에 여자가 왔네!

이게 얼마만이고? 이야아~~~“.      


‘뭐지? 여자라고?’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오토바이에 실려 온 나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고,

현재 이 산엔 이장님, 자연인, 나뿐이다.

내가 어떤 위험에 처해도 피디는 당장 올 수 없었고 자연인은 폭력 시비가 붙은 적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머리가 하얘졌고 피디에게 서둘러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전화는 먹통이었다.

취재를 어떻게 했었는지 도무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저 최소한의 질문만하고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


그의 집에는 수영복을 입은 달력 속 여자 사진들과

목탁. 습작 시 등 궁금한 이야깃거리들이 즐비했고,

무늬만 자연인이 아니라, 진짜 산에 살기 위한 노하우들이 가득해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걸, 서둘러 사진으로만 대충 담았고, 긴 이야기는 원래 촬영 때 하는 거란 거짓말을 한 뒤, 폭행 시비의 전말에 대해 물었고(방송 출연 불가 수준인지 확인해야함) 결혼을 안 한 이유가 있냐고만

 물었다. 폭행 시비는 합의하에 잘 마무리 된,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다음으로 비혼 이야길 묻자, 사뭇 눈빛이 달라진 자연인은 술을 한 잔 해야 할 수 있는 이야기라했다.

지금 여기에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겁이 나 죽을 지경인데, 술이라니...

손사래를 치며, 이 정도면 충분히 취재가 되었다며

도망치듯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첫 답사의 곤혹을 톡톡히 치르고 얼마 뒤, 피디는 어느 때보다도 촬영 느낌이 좋았다며 촬영본을 보내왔고,

나는 유쾌하지 않았던 그 날의 당혹스러움을 떠올리며 10시간짜리 촬영본 프리뷰를 시작했다.

당초 계획대로 '또라이, 괴짜' 컨셉으로 구성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한 부분들이 많았고, 분량도 충분했다.

그런데, 촬영 말미, 그날 내가 듣지 못한, 의외의 이야기도 담겨왔다.      


자연인은 20대 때 한 여인과 열렬히 사랑을 했지만, 양쪽 부모의 반대로 여자가 임신을 했음에도 결혼을 하지 못했단다.

자신이 부족해 결혼이 성사되지 못했고, 세상에 나오지 못한 그 아이도 자신의 탓이라 여겼던 자연인.

어떻게 다시 다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겠냐며

평생 혼자 살기로 결심을 했단다.

계곡에 앉아 그 이야길 끝낸 자연인은 멍하니

한참을 말이 없었다.

긴 세월 이어졌을 그의 깊은 상심은 화면 밖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첫 방송은 평도 좋았고 시청률도 나쁘지 않았다.

애초대로 ‘똘끼’ 자연인의 유쾌하고 다양한 매력을

담은 구성으로 만들었다.

총각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자연인의 진심 어린

이야기도 담긴 했지만 큰 비중은 아니었다.

갑자기 컨셉을 바꾸는 것도 무리였고, 아마 그때의

나는 괴짜같은 모습이 더 ‘먹힐거라‘ 생각했지 싶다.      


10년이 훌찍 지난 지금도 고속도로에서 그 지역의  

이정표를 볼 때면 그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다.

27살의 남자가 60살이 넘도록 스스로에게 준 벌과

같은 약속...

그건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은 답사를 갈 때 막내작가가 준 취재지를 자세히는 보지 않는다.

나태함에 대한 변명같을 수도 있지만, 만나지도 않은 누군가를 내 얕은 생각들로 속단하고 싶지 않아서다.

물론 짧은 시간 자연인을 만나고, 컨셉을 잡고, 구성을 해내는 게 바로 나의 일이다.

하지만 그 결정을 조금은 늦춰보려는 것이다.

답사 때도 컨셉이 잡히지 않는다면, 촬영을 하는 며칠간 카메라에 담길 그 사람 고유의 매력을 기다릴 때도

 있다, 몇 장의 종이에, 짧은 만남에 다 담지 못했던 삶의 이야기, 촬영하는 동안 반하게 될 지점들,

그들만의 결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서두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너무 밋밋해서 망했다(?)’ 싶은 주인공들, ‘이번엔 시청률이 안 나오겠다’ 싶은 이들일수록 이 과정에 더 공을 들인다.


200여명의 인연을 만나며 누구에게나 감동할만한 매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기에 그 부분이 드러나지 않을수록 더 애를 쓴다. 내가 발견한 ‘심쿵 포인트’를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이분이 이렇게 매력적이라고요!’를 잘 말하기 위해.      


방송 다음 날 아침이면 본사 담당자는 시청률과 분당 그래프를 단톡에 올린다.

행여라도 시청률이 몇 주 연속 떨어지기라도 하는 주에는 연령층 분석에, 음식과 약초 종류가 뭐였고

그 순간 분당 그래프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특단의 조치를 제시하던가 한다.

그건 방송사의 당연한 일이고, 그런 반응에 목이 조여져 오는 것 또한 우리의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우리가 직접 보고 만나고 느낀 자연인의 매력이

시공간을 초월해 시청자들에게도 잘 가 닿기를.

힘겨운 인생사를 버텨내는 우리들의 잔잔하고도 진한 연대가 시청률에 제발 힘이 되길.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오래도록 장수하기를

본사와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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