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 다녀왔는데 더 피곤한 이유는 뭘까요.
전부터 쉬는 용도로 호텔에 가는 사람이야 있었지만 코로나로 여행길이 막히면서 ‘호캉스’는 하나의 여행이자 휴식 방법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나도 친한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홀로 호캉스를 즐긴 적이 몇 번 있는데 이때 루틴은 꽤나 단순했다. 일단 호텔 주변에서 먹을 것들을 쇼핑한다. 체크인과 동시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OTT서비스에서 이번 호캉스를 함께할 콘텐츠를 고른다. 침대에 누워 TV소리를 배경으로 수다를 떨거나 멍을 때린다. 가져온 음식이 떨어지면 룸서비스를 주문하고 새벽녘에 씻은 후 잠깐 잠에 든다. 조식 서비스가 끝나기 직전 일어나 얼굴만 정리하고 푸짐하게 조식을 즐긴 후 퇴실하면 호캉스는 끝. 말 그대로 ‘쉬기 위한(먹기 위함이 아닌가요?)’ 시간이다.
이번 호캉스는 달랐다. 바쁘게 지내느라 놓쳐버린 여름휴가를 벌충하기 위해 예전부터 묵어보고 싶던 호텔을 예약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피트니스 센터와 수영장. 이전 같으면 그대로 ‘노룩패스’하고 넘어갈 존재였을텐데 이번엔 눈에 잡힌 이 환영을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운동을 시작한 후 매일 보던 유튜브 콘텐츠에서 운동하는 장면이 나오면 '저 사람은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하나', '저 헬스장에는 운동 설비를 얼마나 갖춰놨나'하는 것들이 궁금해서 돌려보던 차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신식 기기들이 번쩍번쩍하게 빛나는 공간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처럼 운동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던 중 밝아온 호캉스 당일. 일단 짐부터 달라졌다. 헬스장에서 사용하던 운동화와 무릎 보호대를 가져왔고, 갈아입을 운동복과 손수건을 가장 먼저 챙겼다. 호텔 입실 전에는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치킨 버거(?)를 든든하게 먹었고 간식거리는 사지 않았다. 대신 운동 후 피로한 몸을 풀기 위한 목욕에 쓸 배쓰밤을 구매했다. 기존 체크인 시간보다 1시간 빠른 얼리 체크인을 요청했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짐을 풀고 영화를 보며 소화를 시킨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이때가 저녁 6시 정도였는데, 내가 운동하던 시간대이기도 하고 저녁식사로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염두에 둔 시간이었다.
헬스장에 들어서자마자 다니던 헬스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운동기구들로 눈이 팽팽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분은 시즌마다 새로운 빵집이나 디저트 가게가 들어서는 백화점 식당가에서나 느꼈는데, 헬스장에서 이런 걸 느끼다니. 몇 달 전의 내가 “너 누구야”라고 할 법하다. 의도했던 대로 사람도 2~3명 정도라 여유롭게 스트레칭을 한 후, 기존에 하던 동작들도 1세트씩 추가해서 해보고 본 적 없는 기구들에 깔짝이기도 하면서 약 2시간의 운동을 마쳤다. 기기 내에 설계되어 있는 운동 프로그램이 워낙 다양해서 따로 속도 조절이나 시간을 체크하지 않아도 알아서 강도와 세기를 컨트롤해 주는 게 아주 좋고도 고역스러웠.. 다. (사이클에 내장된 등산 프로그램은 누구를 졸도시키기 위한 목적인지 모르겠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가까스로 다독여 방에 들어온 후엔 미리 사 왔던 배쓰밤을 풀어놓고 노래를 들으며 목욕을 했다. 뜨끈한 물에 목욕을 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다만 개운하게 땀 흘려 부드러워진 피부로 목욕하는 건 차원이 다른 행복함이었다. “이게 사는 거지, 이게 삶이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 기온, 습도, 행복감.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며 이전과 상반된 방법으로 행복을 느끼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생경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심리학에서는 '조건적 사고'라는 개념이 있는데 '~~ 해야만 행복하다' 혹은 '~~ 하면 불행하다' 등 특정 조건이 충족/불충족되면 그에 종속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조건적 사고는 비합리적인 자동적 사고로, 심적 부적응을 유발하는 건강하지 않은 사고방식으로 판단된다. 나 역시 '호캉스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늘어져서 쉬어야만 행복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즐길 수 있는 폭을 한정지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도로 나는 다른 방식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고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기에 이번 호캉스는 기대 이상의 값어치를 했다고 자평했다.
이렇게만 끝내면 아쉬웠겠지요. 그 후엔 TV와 유튜브를 보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다음날 조식 첫 타임에 출석해 출근하는 직장인 무리를 보며 한갓진 식사를 즐겼답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호텔 수영장에 가서 수영도 해보았다. 무식한 사람이 제일 용감하다고, 수영의 운동 강도를 몰랐던 나는 발장구로 연속 10바퀴를 도는 강행군을 하는 객기를 선보였다. 영문도 모르고 '왜 이렇게 피곤하고 배고프지?'를 느끼다가 수영을 배운 언니를 통해 내가 한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깨달았다. 결국 호캉스를 끝마친 후 엄마에게 "왜 이렇게 살이 빠져왔어?"라는 걱정 섞인 질문을 들었고, 입에 구내염이 나서 진짜 꿀잠은 집에 와서나 잘 수 있었다는 다소 웃기고 슬픈 결론. 다음번에는 체력 안배를 철저히 한 호캉스를 즐겨봐야지.
Back in the days 4.
여행으로 우울감 해소하기
별 다섯 개 만점에 세 개, “일장춘몽이지만 너무도 짧다”
장점: '종합 소비 예술'이라는 별명에 맞게 쾌락 그 자체.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완벽한 소비 행위다. 해외를 다녀온다면 시야가 확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날 뭘 먹을지, 어딜 갈지 고민하다 보면 우울함이나 고민은 잊히기 일쑤.
단점: 직장인이라면 한정된 연차를 눈치 싸움으로 얻어내야 쟁취할 수 있다. 돈이 많이 든다. 이동진 평론가가 언급했듯 '한정된 시간의 쾌락을 위한 것'이지 '행복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한계. 여행지에 따라 취향이 맞지 않거나 안 좋은 경험을 하면 오히려 불쾌감만 가중될 수 있다. 현실 도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