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이 아닌 운동으로
먹는 행위는 인간이 일상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행위지만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먹기 싫어서? 그럴 리가, 너무 많이 먹어서였다. 먹방 유튜버들이 접시까지 쓸어 담을 기세로 먹는 거야 그들의 직업이니 별개지만, 나 역시 일반적인 (건장한) 성인이 필요한 칼로리를 조달할 양을 초월해 먹을 때가 있었다. 먹는 양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기에 기존 내가 먹던 양과 비교했을 때 2~3배 이상을 먹었다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그 사이 올라봤자 1~2kg 차이 났던 몸무게가 3kg, 4kg를 건너뛰기 시작했고, 눈을 뜬 순간부터 눈을 붙이기까지 ‘먹을 것’에 대한 집념이 도를 넘기 시작했다. 바쁜 시간에도 무언가 입에 넣어야 성이 풀렸고 집착 수준으로 고민한 식사는 내 의식만큼 아득한 위장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자신에 대한 혼란을 뱃살과 함께 끌어안은 채 아래로 무겁게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음식이 칼로리를 위한 것이 아닌 텅 빈 마음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란 걸 깨닫지 못한 채로.
모든 게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날이 선명히 기억난다. 때는 5월쯤 살아있음을 뼈 저리게 느낄 정도로 눈부시게 맑은 초여름날, 점심은 중국집에서 혼자 양장피(그때의 스케일이 짐작이 가시나요? 1인용 양장피가 아닌 요리 메뉴 양장피였답니다)를 게걸스레 해치운 후였다. 한강을 걷던 중 ‘지금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나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은 결코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다. 아니 ‘느꼈다’고 표현하기엔 너무나 강렬한 통증이었다. 쟁반 노래방에서 음정이나 가사가 틀렸을 때 쟁반이 떨어지면 연예인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아픔을 호소하는 듯한 갑작스럽고 얼얼한 통증이 폐부 어딘가에 박혀 숨을 막히게 했다. 그날부터 오후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시간제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고, 먹는 것 이외의 삶 속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했다. 어쩔 땐 그게 돈을 쓰는 거였고, 어쩔 땐 갑자기 여행을 떠났고 때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때의 나는 많이 아팠던 것 같다. 직장인으로 일을 시작한 후 몇 년이 지났는데도 예상과 달리 자리 잡지 못하고 겉만 맴도는 아웃사이더인 내가 이상하고 어려웠다. 남들은 딱히 불만도 없고 상황에 만족하며 한 길로 잘만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매사가 불만이고 이건 이래서 흥, 저래서 흥 하다 보니 어느새 도랑에 빠져 이도 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꿈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고 있는데, 혼자 도로 위 러닝머신에서 제자리를 뛰며 그들을 지켜봐야 하는 영상이 끝없이 재생됐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이 길이 가려고 하는 길이 맞는지, 다른 길을 원한다면 어떤 길인지를 생각하는 게 나았을 텐데 그저 속도를 높일 생각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맞지 않는 길을 바라보길 강요한 탓에 항상 어딘가 굶주리고 피곤했다. 그걸 가장 간단하고도 원초적인 방식인 폭식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이행했다. 마치 콩쥐의 깨진 독에서 흘러나온 물처럼 음식은 내 가장 밑바닥만 축축이 적시고 사라졌고, 나는 공허한 독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운동을 시작할 당시 나는 운동의 목적으로 체력 증강과 지구력 향상을 꼽았다. 다이어트는 거기에 없었다. 인바디 측정 때 생전 귀에 스쳐본 적도 없는 ‘복부 비만’ 결과가 나와 당황하긴 했지만, 키 대비 이 정도 체중은 유지만 해도 괜찮다는 관장님의 말을 들은 터라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만 갖고 있는 옷을 입었을 때 내가 이상적으로 느끼는 ‘핏’을 위해서 먹는 양은 좀 줄이고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결심과 별개로 먹는 양, 종류 등을 조절할 수밖에 없는 게 신체란 ‘나 여기 살아 숨 쉬고 있어’를 증명하듯 음식에 따라 유동적으로 상태가 변한다. 조금 덜 먹으면 속이 든든하지 않아 힘을 쓰기 어렵고, 조금이라도 더 먹으면 더부룩한 속 때문에 운동 내내 트림과 가스 분출을 참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단 음식을 먹으면 당장 운동할 때는 에너지가 되지만 운동 후엔 급격히 혈당과 혈압이 내려가 맥을 못 추게 되고, 압축 탄수화물(예를 들면 떡볶이)을 먹으면 날아다녔던 러닝머신도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양 헐떡 대기 일쑤다. 이러니 별수 있나, 정직한 음식들을 먹을 수밖에. 직장인 시절 입에 물고 태어난 양 달고 살았던 액상과당을 끊고 건강한 단백질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닭가슴살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피자를 먹을 바엔 치킨을, 쌀밥을 먹을 바엔 생선 한 조각을 더 먹는 식으로 바꿔가는 수준이거든요.
어쩌면 운동을 진작에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때 텅 빈 독을 바라보며 울던 나는 조금 덜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운동을 시작한 후 종종 했다. 운동이 앞으로 갈 길을 알려주진 않지만 자신에 대한 혐오와 건강하지 않은 생각들을 덜어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쓸모없는 후회이기도 하고, 그때의 깨달음으로 시작된 깊은 고민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없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버텨온 과거의 내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옅은 흔적으로 깊은 기억을 미화하기도 하니까. 다만 앞으로 이런 시기를 마주한다면, 그땐 운동이 나의 두꺼비가 되어줄 것을 잘 알고 있다. 독 앞에서 울고 있던 콩쥐를 위로하고, 등을 대어 흐르는 물을 막아주던 두꺼비처럼 운동이 새어나가는 허무와 의지를 제자리에 붙들어주겠지. 그러니 괜찮다, 울어도, 휘청여도, 힘들어도.
Back in the days 5.
폭식으로 우울감 해소하기
별 다섯 개 만점에 한 개, “돼지랑 거지는 내가 될게, 건강은 누가 책임질래?”
장점: 돈 쓸 곳만큼이나 지천으로 널린 음식점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욕구 충족이 가능하다. 입에 무언가 들어오면 기분이 상승하기 때문에 비교적 이행하기가 쉽다.
단점: 역시 휘발성이 강하다. 씹고 넘기고 소화시키면 끝. 계속 반복하다 보면 내 존재가 너무 짐승 같을 때가 있고, 나중엔 아무리 먹어도 욕구 충족이 어렵다. 점점 몸은 무거워지고 그만큼 카드 빚도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