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Dec 15. 2023

12월 15일 모닝페이지. 디지털 디톡스를 처방합니다.

마! 니 스마트폰 중독이다!

기상 시간 8시. 비도 오고 우중충하지만 의지로 기상!


어제부터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했다. 디톡스라고 하니 괜히 건강해질 것 같고, 독소가 빠질 것 같은 느낌인데 디지털을 생활에서 배제해서 빠지는 독소는 무엇이 있으려나. 궁금해진다. 결심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에 있는 SNS 앱 모조리 삭제하기. 인스타그램에는 '당분간 인스타 삭제한다, 예전처럼 아는 지인들이랑 카톡으로 소통하며 필요한 것들만 알고 싶다'라고 적어두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소스가 되는 시청기록과 인터넷 방문기록도 모두 삭제했고 방문자 수, 조회 수 때문에 습관처럼 들여다보는 브런치, 티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앱도 지워버렸다.


말이 디지털 디톡스지 내가 좀 내려놓고 싶었던 건 '디지털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현실 세계는 고요할 만큼 평온한데 디지털에 접속된 순간부터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들처럼 예측하지도 못한 여러 곳에서 누군가의 의견이, 웃음이, 슬픔이, 혐오가 동시에 튀어나와 나를 잡아두는 게 싫고 힘들었다. 또 나는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먹방 콘텐츠를 보면 폭식을 하고 쇼핑 콘텐츠를 보면 안 하던 쇼핑을 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때문에 일부러 본인의 루틴을 잘 지키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브이로그나 자기 계발 콘텐츠 위주로 보았는데 이렇게 되니 어딜 봐도 직장생활, 새벽운동, 업무 공부, 부업까지 하는 사람들만 보이고 '왜 안 해? 너 게을러? 빨리 해!'라고 소리치는 느낌이라 고역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이었던 건 어느 날 일기를 쓰려고 앉았는데 처음으로 내 생각이 아닌 남이 한 생각들을 남이 한 표현으로 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대상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대상이 한 생각을 고스란히 이식한 것처럼 쓰고 있는 나를 보며 이건 안 되겠다, 이것들과 멀어질 필요가,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이 다수 있지 않은가? 무언가를 찾으려 인터넷이나 SNS를 켰다가 첫 화면에 뜬 콘텐츠에 사로잡혀 한참 보고 스마트폰을 끄고 나서야 '나 뭐 보려고 했었지?' 하는 경험. 나도 그랬다. 디지털 건망증이니 팝콘 브레인이니 아무리 이야기해도 책도 자주 읽고, 남들보다 집중력도 좋은 편이니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더 경계심 없이 디지털을 사용했다. 하지만 콘텐츠의 태풍에 휩쓸려 무엇을 의도했는지 모르는 일이 늘어나고, 이전에는 강의 하나에 집중해서 보냈던 시간을 SNS 조회 수 확인, 이메일 확인, 카톡 체크, 스케줄 확인 등 당장 필요도 없는 일로 되는대로 믹싱 해서 보내고, 10분 남짓한 유튜브 영상도 지루하다며 2배속으로 틀고 있는 나를 보았다. 본연의 모습이 어땠든 플랫폼 회사들이 수천억을 들여 개발한 '사람들이 SNS에 더 오래 체류하도록, 더 많은 콘텐츠를 보도록' 만든 기술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무서워졌다. 


예전에 인상 깊게 봤던 인스타 릴스가 하나 있었다. 아마 미드의 한 장면을 크롭 해서 올린 듯한데, 중학생 딸이 말을 안 듣자 엄마가 딸의 핸드폰을 중지시켜 버린다. 딸이 엄마에게 따지며 "I'm missing things!"라고 이야기하는데, 직역하자면 "나 지금 무언갈 놓치고 있다고!"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무언가는 아마 디지털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 특히 중학생이라면 SNS에서 벌어지는 또래 집단 간의 소통 혹은 모르면 소통이 안 되는 이슈들 같은 걸 이야기할 테다. 이 릴스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나 또한 그게 두려워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놓지 못하고 종일 새로고침을 누르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재밌는 일이, 새로운 일이, 놓치면 안 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나만 소외당할까 불안하고 두려운. 흔히 포모증후군(FOMO, Fear of Missing Out)이라고 불리는 실체 없는 불안이 우리 모두를 디지털 상에 목적 없이 떠돌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해파리 상태로 만드는 것 아닐까. 


언제까지 디지털 디톡스가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여러 플랫폼의 조회 수를 체크하던 습관을 없애고 책을 폈는데, 마음 한편에 급히 갚아야 할 채무가 있는 것처럼 '뭔가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은 있다. 이걸 몇 번 반복해야 원래 나로 돌아오려나. 내가 없어져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그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좋아요와 댓글이 기록될 동안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으려나.




이전 08화 12월 14일 모닝페이지. 뉴진스도 좋은데 이문세가 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