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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03. 2024

11화. 저는 이제 자유입니다.

엄마가 나갔다! 자유다 자유!

그녀가 나가고 현관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고 3,2,1.. 자유다! 나는 자유다!


엄마가 떠났다. 목적지는 언니네 집. 며칠간 조카와 함께하기 위해 떠난 엄마를 배웅하며 아닌 척했지만 은근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순 없었다. 아빠와 함께라 아예 혼자인 건 아니지만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게 왜 이리 좋은 건지. 사실 딱히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 몰래 성인 영화 보고 좋아할 중2도 아닌 거고 정리정돈된 엄마의 공간을 뒤집어 놓을 만큼 무지렁이로 살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더 깔끔을 떨면 떨었지.


그렇다고 같이 살며 눈치를 아예 안 본건 아니라 시도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엄마가 절대 안 사 먹을 것 같은 배달음식 시켜 먹기. 예를 들면 쪽갈비, 구운 삼겹살, 곱도리탕, 돼지껍데기, 요거트 아이스크림 등등. 엄마들이 "대체 이걸 왜 사 먹는 건데?" 하는 음식들만 골라 시도한다. 대체로 이런 음식들은 구운 고기류인데 내가 굽긴 냄새나고 기름 튀기고 뒤처리가 극악이라.. 먹방 콘텐츠에서 보고 궁금한 것들 위주로 시켜서 '이건 이렇게 나오는 거군'하는, 나름 재밌고 소소한 일탈이다. 둘째, 밥 먹고 무지성으로 간식 먹기. 식사 이후 디저트를 먹지 않는 건 혈당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자 나름의 눈치였지만.. 엄마가 없을 땐 아이스크림도 먹고 과자도 먹고 초콜릿도 먹고 다 먹는다. 셋째, 엄마가 '혹시 몰라서' 모아둔 (내 기준) 쓰레기들 버리기. 배달음식에 딸려왔지만 유통기한이 2년도 넘은 소스류, 들기만 해도 삐그덕 소리가 요란스러운 청소용품, 보풀이 다 일어난 (내) 옷가지들. 엄마와 있을 때 버리면 어느샌가 집에 다시 돌아와 있는 현대판 호러가 벌어지기 때문에 없을 때 버린다. 아, 물론 부모님 소지품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치킨도 엄마가 좋아하는 푸라닭 말고 싫어하는 자담치킨 먹을 거라고!

배려할 사람이 없기에 누릴 수 있는 감정적 자유도 있다. 일정 따윈 파괴하고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걸 먹고, 갑자기 청소기를 밀어도 상관없고 거실에서 탭댄스를 추건 티비를 틀어놓고 핸드폰을 하건 엄마가 "뭐 해?"라고 질문하지 않는 게 최고로 좋다. 왠지 이 질문을 들으면 행위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중압감이 드는데 그냥 춤추고 싶으니까 춤추고 갑자기 화장실 때를 벗기고 싶으니까 벗길 뿐. 그리고 나는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지라 엄마가 하는 혼잣말이나 한숨에 움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좋습니다.


적어놓은 걸 보니 역시 그렇게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단지 아침에 일어나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생각한 대로 꾸려가는 하루가 좋을 뿐. 이것도 어찌 보면 지독한 통제광의 변태 같은 욕구일 수도 있다. 나 아닌 누군가가 있다면 변수가 생길 확률이 높아지고 그만큼 불안해지는데, 그런 것 없이 없다는 걸 '자유'로 받아들이는 게 건전한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결국 내 자유는 '통제'와 등을 맞대고 있는 건가. 엄마 역시 이런 성격을 물려준 이답게 언니네 집에서도 아빠 저녁 메뉴를 묻고 내가 뭐 하는지를 묻는다. 고만해! 고만해!


아빠는 이런 변화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서 그렇겠지. 하지만 같이 드라마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식탁에 마주 앉아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 뉴스에서 본 얘기를 나눌 사람도 없다는 게 아빠를 시무룩하게 한다. 그럼에도 엄마보다 더 반짝거리게 그릇을 씻을 줄 알고, 본인의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아빠를 발견하는 건 좋아. 물론 저녁엔 힘들고 아침엔 바쁘니 다른 사람이 해주는 거라 쳐도 이리 잘할 수 있으면서 여태 모른 척했다니, 흥.


얼마나 지속될 자유인지 모르겠다만.. 이럴 때마다 독립한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내가 만약 독립을 하면 이런 모습일까. 독립하면 지금보다 손댈 수 있는 범위는 많아지겠지만 걸을 수 있는 공간은 좀 더 줄어들겠지. 온전히 내가 꾸리는 집은 어떨까. 한편으론 통제 욕구가 더 강해지지 않을까 걱정도 들고. 그래도 독립을 점차 꿈꾸게 된다. 한시적으로 누리는 가벼운 자유가 아닌, 책임을 지고 나아가는 자유를 갖고 싶다. 체험판이 아닌 본 게임에 들어서고 싶다. 올해는 진짜, 진짜 나가볼 테야. 그땐 아마 곱도리탕 시켜 먹는 기쁨은 별 게 아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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