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흑. 아프지만 말자.
12월의 한파를 맞이한 대한민국. 그 안에서 난방 없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잠깐, 얘가 그새 집을 나갔나? 싶으시겠지만 아니요. 여전히 부모님 집에 붙어 먹고 자고 ㅆ..고 있답니다. 그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내 방은 베란다를 터서 안방 다음으로 크기가 큰 방이다. 이사 당시 미혼이었던 언니와 방을 1개씩 고르면 됐는데, 거의 집에서 잠만 자다시피하는 EEEE형 언니에게 큰 방은 필요가 없었다. 반면 나는 IIII형이지만 방에서 잠자고, 책 읽고, 영화보고, 혼자 울다가 웃다가 춤추다가 하여간 난리부르스를 다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 방엔 널찍한 붙박이장까지 딸려있어 그때 옷이 제일 많았던 나에게도 적합했지. 하지만 이 방에는 지독한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겨울에 추워도 너무 춥단 거였다. 나는 열이 많지만 추위도 잘 타는 희한한 인체를 보유하고 있고 수족냉증도 심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 방에서 겨울을 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방 구조상 책상을 무조건 기존 베란다 구역으로 빼야하는데, 난방을 틀어도 베란다 쪽에는 열이 오지 않아 재택근무를 하거나 주말에 쉬고 있으면 수면양말, 후리스, 담요를 칭칭 두르고 있어야했다. 참다참다 거실로 나가면 뜨끈한 훈기가 나를 반겨주었는데 왜 같은 집에 사는데 나는 귀양살이를 하는 느낌이 들까...
올해 겨울 역시 그런 겨울을 예상했다. 어느 정도 사전대비는 해둔 터였다. 베란다 샷시에 외풍을 막아주는, 털이 부숭부숭한 테이프도 둘렀고, 암막 커튼을 최대한 유리창에 붙인 채로 고정해 바람이 들어올 틈을 막아주었다. 베란다 구역 바닥에는 카페트도 깔아주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책상을 방문 쪽으로 옮긴 후 "와, 너무 추워서 화난다"고 이야기했을 때, 엄마가 물었다. "보일러 빵빵하게 틀었어?"
아니. 답은 아니었다. 그 때도 내 방 보일러 온도는 '외출'을 향하고 있었다.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싶으시겠지. 변명은 이렇다. 이전에도 몇번 20도 넘게 난방을 틀어두었으나 전혀 따뜻해지지 않아서 화가 났다. '보일러를 떼도 따뜻해지지 않을 거면 난방비라도 아껴야지'하는 마음에 계속 외출 모드를 해두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냥 옷을 더 껴입고 말지, 온수매트 틀면 잘 땐 따뜻하니 괜찮아 하며 유지했던 습관이었으나 어느 순간 '돈도 안 버는데 보일러까지 빵빵하게 틀어? 고얀 놈'이라는 생각이 기세를 불려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엄마에게는 대강 둘러댔지만 조금 슬퍼졌다. 이 놈이 또 자격지심을...
엄마는 곧장 내 방으로 가서 온도를 '적정' 이상으로 올렸다. 운동을 다녀온 후 데워진 방문을 여는데 처음으로 내 방에서 훈기를 느꼈다. 이 공기, 습도, 온도 모두 처음이야. 심지어 이사 온지 8년이 넘은 오늘 베란다 구역에도 열선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필요한만큼 난방을 올리지 않아서 그런 거였다고. 이 사실을 오늘 알았다는 게 슬프고도 기쁘고도..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해야했냐아!!!!를 자문하게 만든다. 오직 나의 행복과 건강만을 바라는 엄마아빠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고얀 놈.
엄마는 항상 종알종알 따지길 좋아하는 나를 보며 "눈치 보면서 살면 너처럼 안해!"라며 우스갯 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겠지. 내가 어디까지 눈치 보고 있는지! 너무 앙증맞고 옹졸한 눈칫거리라 이 곳에 다 적진 않으리라. 하지만 같이 산다고 내 맘대로가 아니라는 걸 제발 좀 알아주시길 바라요. 물론 엄마 생일 케이크도 내가 먹고 싶은 걸로 정했고, 샤워할 때 온수 콸콸콸 쓰지만. 하여간, 여튼 그렇다고요.
*일상의 한 장면
(샤워 후)
엄마: 물 좀 작작 써,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그렇게 물을 펑펑 쓰면 어떡해.
나: (삐죽)
(청소 후)
나: 아니 왜 아직 남은 비누를 버려?!?!! 클렌징폼은 아직 몇번은 더 쓸 수 있는 건데 왜 버려!!!
엄마: (삐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