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Dec 06. 2023

7화. 리모델링? 인테리어? 뭣이 중헌디.

얹혀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요, 암요.

1세대 아이돌로 아직도 우리 마음 한켠에 '오빠'로 자리하고 있는 GOD의 대표곡 '어머님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남들 한번 하는 외식한 적이 없었고 ~ (중략)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우리 집의 경우를 대입해 가사를 바꿔보면 이렇다. "남들 한번 하는 리모델링한 적이 없었고 ~ (중략) 부모님은 리모델링 싫다고 하셨어".


코로나로 인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리모델링이라지만 평생 살며 리모델링의 '리'자도 건드리지 못한 게 바로 우리 집이다. 매번 새집으로 이사를 다녔냐 하면 그건 아니, 리모델링을 완료한 집으로 이사를 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로지 도배와 벽지 등 최소한의 것들만 하고 이사를 온 게 절대 다수니. 이런 기행의 가장 근간이 되는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도 딱히 관심이 없고 오로지 청결, 깔끔함만 있으면 되는 엄마아빠에게 리모델링은 필요 이상의 낭비다. '체리몰딩'의 연관 검색어로 '공포'가 떠올라도, 오늘의 집에서 너나 가릴 것 없이 VIP가 되더라도 우리 집과 거리가 먼 이유다.


'체리몰딩 살리기'를 보니 다들 비슷하게 사는구나 싶기도 하다..


부모님은 그렇다 쳐도 나는 어떤가. 나 역시 둘을 닮은 구석이 많아 집의 모습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 말인즉슨,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무리 집순이라도 방에 머무르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과 비슷했고,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일하는 게 바빠 체리몰딩이든 나무색 장판이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코로나가 지배한 시대에도 아이패드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었고, 방은 그저 머리카락이나 먼지 없이 깔끔하게 유지된다면 되겠거니 했던 것이다. 하지만 퇴사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눈을 뜬 채로 보내다 보니 이것들이 슬슬 눈에 띄고, 종국엔 거슬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집까진 아니더라도 인터넷 커뮤니티나 다른 친구들 인스타만 봐도 매거진에 나올법하게 꾸며놓고 사는 친구들이 허다한데. 유튜브에 나온 친구들처럼 그냥 내 방이라도 냅다 페인트칠을 해버릴까 싶었지만 그것도 요상한 것 같아 일단 참아보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그만 것들을 아무리 내다 버려봤자 매번 있는 것에서 뒤집어엎는 건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참다 참다 버티지 못한 게 바로 내 방에 있는 책상이었다. 중학생 때 구매해 거의 20년을 함께한 일룸의 책상은 책상에 붙어있는 서랍, 한쪽 벽을 메우는 큰 책장, 그것도 모자라 책상 위에 올릴 수 있는 거대한 책꽂이까지 말 그대로 '학생이 공부를 하기에 최적화된' 책상이었다. 이 책상 하나만 빼도 그 공간에 들일 수 있는 작은 가구가 3개는 될 것 같은데, 책꽂이 때문에 넓게 트인 창문을 다 막아버리는 것도 짜증 났고 번거롭고 잡다하게 딸린 게 많은 것도 답답했다. 결국 그 책상은 아빠가 사무실로 가져갔고 나는 이케아에서 원래 책상의 1/5도 안 되는 가격의, 철제 다리와 상판만 있는 작은 테이블을 사다 책상으로 사용 중이다. 새로운 책상의 설치를 마친 날, 바뀐 내 방을 구경하러 왔다 책상을 본 아빠의 눈빛은 '이걸로 바꾸려고 책상을 버린다고 한 건가'하는 황당함을 담고 있었지만 뭐 어때용. 내가 좋다는데.


책상을 시작으로 내 방의 커튼, 행거, 협탁 등 작은 것들을 바꿔가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갈길은 구만리다. 일단 꽃무늬 극세사 이불이 그러하며 온 집안을 휘감고 있는 체리몰딩, 20년 동안 여름마다 어르신 대접을 하며 조심스레 가동한 에어콘, 어릴 적 추억이라 차마 처리하지 못한 소품들, 쓰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홈시어터, 삐걱거리지만 혹시 몰라 놔둔 언니의 침대, 한 번에 많은 양의 물을 빼면 아랫집에 물이 새서 목욕은 할 수 없는 욕조... 나 역시 물건 하나를 사면 오래, 아끼며 사용하는 사람이지만 한창 비슷한 시기에 샀던 물건들이 최근 들어 한꺼번에 고장이 나고, 보풀이 생기고 삐걱거리는 것처럼 집 또한 그렇더라.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리모델링을 염불처럼 외며 엄마를 압박하고 있지만, 빨리 독립하라는 소리로 오히려 역공을 받을 뿐이다. 칫.


나도! 이런! 이쁘고! 감성 돋는! 이불!


남들처럼 SNS에 자랑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예쁜 생활공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생활에 불편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쓰레기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리모델링으로 나온 쓰레기라는데 우리 집 한 가구라도 그 짐을 던다면 얼마나 좋은 건가 싶기도 하고. 어차피 난 방 한켠에 얹혀사는 일개 세입자일 뿐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냐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생각은 복잡하다만 결국 집 자체가 중요한 것보다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함께 사는 가족들과의 관계, 행복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겠지 하는 생각도 한다. 집착광공처럼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고 팬시한 펜트하우스라도 그 안에서 말소리 하나, 웃음소리 하나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집이겠어? 결국 오늘도 이렇게 만족해 보련다. 근데 엄마, 카펫은 조만간 내 취향으로 좀 바꿀게..


*일상의 한 장면

나: 방이 진짜 너무 추워, 책상에 앉아있는데 다리 얼겄으..

엄마: 그럼 거실에 있는 카펫 네 방에다 깔자.

나: 아 싫어!!!!!! 그거 넘 할머니 이불 같다고!!!!!!!!

(카펫 깐 직후)

나: 아 이상해!!!!!!!

(몇 시간 후)

나: 그래도 까니까 따뜻하긴 하다ㅎ

엄마:





이전 06화 6화. 용돈이란 이름의 부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