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Nov 29. 2023

6화. 용돈이란 이름의 부채

빚은 지금 이 순간에도 쌓이고 있다.

"자, 이거."라는 말과 함께 마주 앉은 식탁에 오만 원권 4장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뭐야 이게?"라고 되물으니 용돈이란다. "나 돈 안 필요해!"라고 형식적인지 본심인지 모를(사실 모르지 않다, 당연히 돈은 필요하다. 21세기 자본사회에 있어도 필요한 게 돈 아니던가) 거부는 씨도 먹히지 않았고 결국 손에 20만 원을 쥔 채 불퉁한 입으로 고맙단 인사를 하고 말았다. 누군가는 이 나이에도 용돈을 받는다고, 나는 아직 어리다고 신나 엉덩이춤이라도 출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이것 또한 다 빚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사회 초년생 시절 엄마아빠가 장난치듯 말했던 "결혼하기 전에 너희 키워준 비용 1억 갚고 가야 해"라는 말 때문인지, 무엇이든 일단 내 능력으로, 나 혼자 처리하길 바라는 엄마의 독립적인 성향을 빼닮은 탓인지, '용돈'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돈을 내 마음대로 쓰기보다는 항상 계획하에 절약하며 사용하라 이야기했던 엄마의 경제교육관 때문인지. 어쨌든 나는 '내가 스스로 돈 벌어서 쓰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다'라는 생각이 엄청 강하고, 그 때문에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용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직장인이 되기 전까지 용돈을 받았는데 그때 한 달 용돈은 20만 원이었다. 요즘 웬만한 초등학생도 이 정도 받는다지만 그렇게 받아도 부족한 적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대단히 돈 쓸 일도 없었고, 필요할 때마다 알바든 인턴이든 돈 벌 기회가 생겨 해외여행 등 큼지막한 지출이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소화할 수 있었다. 직장인이 된 후에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축하금을 (주고) 받는 정도로 서로 타협을 했고 내 생활에 필요한 돈은 내가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내 돈일까? 일단 물리적으로 돈을 번 것도 나요, 내 통장, 카드, 지갑에서 사용된 돈이니 내 돈이라고 할 수 있겠다만 엄마아빠 집에 얹혀사는 이상 이게 정말 내 돈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내가 머무르는 이 집,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내가 샤워를 하거나 볼일을 보면서 사용하는 물까지 어느 것 하나 내 돈으로 산 것들이 아닌데. 내가 만약 진작 독립을 했다면 이 모든 비용들은 내가 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쓰는 물값을 낼 돈으로 내 옷을 산다면 내 옷을 산 돈은 진짜 내 돈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이 복잡한 계산식은 나를 참 본새 없고 내용물 없는 만두피 마냥 쪼그라들게 만든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뭐가 복잡해? 그냥 엄마아빠한테 생활비를 드리면 되는 거 아니야? 물론 직장에 근무할 시절에는 얼마라도 생활비 개념의 용돈을 드리곤 했지만, 현재는 백수라 생활비를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게 이 모든 불편함이 유난히 뾰족하게 느껴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회사를 다녔더라면, 만일 내가 돈을 모아 독립을 했더라면, 만일 내가... 만일 내가... 이런 도움 안 되는 수많은 '만약'에서 헤멜 바엔 조금이나마 양심에 맞게 돈을 드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지. 가뜩이나 물가가 액셀을 풀로 밟고 뛰 오르는 마당에 십시일반 모은 정성이라도 전하는 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방법일지 모른다. 


이런 나와 달리 우리 엄마 아빠는 마냥 희희낙락이다. 저번에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엄마아빠가 이 정도 장성한 나를 신경 쓰고 하는 게 피곤하고 지겹진 않냐고. 장난으로라도 "지겹지!"라는 말이 돌아올 줄 알고 방어기제를 잔뜩 세우고 있는데(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엄마가 전한 답은 "아니 전혀"였다. 아직까지 엄마가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에 엄마는 참 행복하고, 능력이 닿는 데까지 그 역할을 하고 싶다고. 일전에 유명인 누군가가 부모님이 자아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식이 조금 어설프고, 아직 챙김을 받아야 할 것처럼 굴 필요도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건 단지 자아효능감이 아닌, 자식인 내가 영영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의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5만 원권을 가지런히 펴 지갑에 소중히 담았다. 엄마는 웃으며 크리스마스 선물 갖고 싶은 거 있으면 하나 사라고 이야기했지만(완전 아기 아닙니까?) 당분간은 이 돈에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이다. 만일 쓰게 된다면 엄마랑 언젠가 먹으리라 단단히 별러두었던 마라 떡볶이를 시켜 먹든가, 엄마가 주기적으로 찾는 맛있는 빵을 한 아름 사다주든가 해야지. 그때까진 돈 벌 방법을 열심히 궁리해 봐야겠다. 언젠가, 아니 조만간 엄마 아빠가 원한 1억 아니 그거보다 더 많이 품에 안겨줄 테야.


*일상의 한 장면

(외식 후)

나: 엄마, 이건 내가 먹자고 했으니 내가 살게.

엄마: 됐어, 엄마가 원래 사려고 했어~~ (계산 완료)

나: (불퉁)

(빵집)

나: 엄마, 이건 내가 살게!!!!!

엄마: 그래, 그럼~~ (빵 수북이 쌓아온다)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