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Jan 08. 2024

포장된 국밥으로 사랑을 느끼다.

순댓국이든 추어탕이든 상관 없어!

토요일 오후, 지인과 점심 식사 후 운동까지 개운하게 하고 돌아왔는데 집이 고요했다. 엄마가 어딜 나간다는 말도 없었는데 핸드폰이랑 안경만 들고 어딜 간 거지? 하고 짐을 정리하다 안방에 들어갔는데 이불속 동그랗게 언덕을 이룬 작은 무언가. 엄마였다. 잘 때 빼면 절대 침대에 눕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인데, 엄마가 오후에 누워있다? 삐용삐용 비상이다. 


언니네 집에 며칠간 다녀온 엄마의 기운이 심상치 않더니 결국 단단히 몸살이 나버렸다. 코로나인지 독감인지 감기인지 모를 이 증세는 엄마를 덮쳐 주말 내내 꿈쩍도 못하게 만들었다. 언니네 내려갈 때부터 날씨가 별로 안 추우니 얇은 경량 패딩 하나만 가져가겠다는 걸 다들 말려 도톰한 외투를 손에 들려 내려보냈는데 그 노력도 별반 소용이 없었는지 감기는 빈틈을 잘도 노려 엄마를 정복했다. 그 결과 탄수화물 중독이라고 놀릴 정도로 밥을 많이 먹던 엄마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밥을 남기더니 목이 아프다며 뜨거운 물만 연거푸 마시고 물에 젖은 파래김처럼 축 처져있었다. 일 년에 한 번쯤 앓는 강철 체력이라지만 한번 왔을 때 제대로 앓는 걸 알고 있기에 옆에서 옥수수차를 끓여주고 밥이라도 잘 챙겨 먹도록 잔소리에 박차를 가했을 뿐이다.


일요일은 정해 놓은 일정이 있기에 엄마를 혼자 두고 외출을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 엄마도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것 같아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혼자 편히 누워있으라며 문을 나섰다. 마침 약도 다 떨어진 상태라 약을 사다 줄 겸 나온 것도 있었는데 목적지 근방 약국이 문을 열어 필요한 약도 다 살 수 있었다. 몇 시간에 걸친 볼일이 끝난 후, 집에 가려다 뭐든 사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사다주지. 개인적으로 몸살기가 있고 힘이 떨어졌을 땐 얼큰하고 뜨끈한 국밥을 하나 말아먹고 후드티를 껴입은 채 40도가 넘는 온수매트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다음 날 새로 태어난 듯 개운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엄마는 추어탕을 좋아하니 추어탕을 사가야겠단 계산이 섰다. 하지만 마음이 무색하게 근방 추어탕 가게가 모두 휴무였고, 차선책으로 꼽았던 순댓국을 2인분 포장하여 달랑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 청양고추를 얼큰하게 넣은 순대국밥이 입맛에 맞은 엄마는 2/3 공기를 비우는 쾌거를 달성했다. 


순대국밥을 나눠먹고 둘이 TV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차에 아빠가 귀가했다. 근데 아빠 손에 들려있는 까만 봉투. 형체를 보아하니 딱 국밥이다. 내심 뭘까하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아빠가 엄마한테 전해주며 말한다. "추어탕 사 왔어" 그 말을 기점으로 웃음이 펑 터졌다. 누가 가족 아니랄까 봐 생각하는 흐름도 비슷하고 행동하는 패턴도 이리 비슷하다니. 무려 우렁이를 넣은 남원 추어탕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사랑을 느꼈다. 아빠가 엄마에게 주는 사랑, 내가 엄마에게 주는 사랑 그리고 그 모든 걸 느낄 수 있는 우리.


사랑을 느끼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 누군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만이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내가 해준만큼 돌려받는 게 사랑이라 말한다. 글쎄, 그런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만 그런 것'만'이 사랑이라고 할 만큼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상대가 좋아하는 거, 바라는 게 뭐였지 고민한 끝에 수줍게 내미는 작은 마음 하나라도 사랑은 분명 존재한다. 하물며 그게 국밥 한 그릇일지라도.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괜히 국밥을 사 온 게 아니었군!


아빠가 사온 우렁 추어탕은 팔팔 끓여
저도 옆에서 낑겨 먹었습니다 맛있더군요


작가의 이전글 온 마음으로 축하한다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