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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15. 2024

저, 사랑하고 있어요

이건 어쩌면 사랑 고백.

사랑.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이렇게 자주 하고, 들어본 적이 있던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친구 생각이 나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궁금해 연락을 기다리며 안달하는 그런 사랑. 함께할 시간을 손꼽게 되며 헤어짐을 이야기하면 뒤돌아서자마자 보고 싶은 그런 사랑. 아, 아무래도 사랑에 빠졌다. 제대로 빠졌다.


그 친구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 오동통한 볼에 아직 빠지지 않은 발등 위 도톰한 살집.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기 존재를 뽐내지만 내가 목소리를 줄이면 속살거리듯 내 귀에 다가와 이야기하는 따뜻한 숨결과 미처 숨기지 못한 분내. 입는 것, 하는 것, 먹는 것 모두 취향이 확실하고 호불호 표현도 잘해서 상대를 헷갈리거나 애태울 일이 없고,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감정표현도 제대로 하는 사람. 뭐 먹을 때 죄다 티셔츠나 입 옆에 묻히며 먹어도 닦아주고 싶은 마음만 들뿐 게걸스럽거나 더러워 보이지 않는 마성의 매력. 무엇보다 내게 살며시, 때론 박력 있게 다리를 끌어안고 내 눈 저 너머까지 들여다보며 작은 입으로 조물 거리며 형상화한 한마디. "이모, 사랑해요".


그렇다. 설명한 사람은 내 (아직은) 하나뿐인, 살면서 최초로 맞이한, 애간장을 녹이고 동시에 삶의 의욕을 움트게 하는 나의 조카다. 요즘 결혼율도 떨어지고 본인 자식을 낳는 대신 조카에 모든 걸 올인한 조카 바보 이모들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만 31개월이 넘어가는, 이젠 두 발로 뛰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인 아이를 보며 내가 하는 생각은 매한가지다. '어쩜 저렇게 조그만 생명체가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자기표현을 하고 숨을 쉬는 걸까'. 한 달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얼굴을 보고 못해도 이틀에 한 번은 영상통화를 하며 그 친구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생명은 항상 놀랍고, 나는 매번 그 경이에 감탄하고 대부분은 눈물짓는다. 행복하고 벅차서.


내가 이모가 되기 전에도 주변에 이모가 된 친구, 지인들이 몇몇 있었다. 어쩌다 조카 이야기가 나오면 누군가는 '너무 예쁘지만 어쨌든 걔는 걔, 나는 나'인 친구도 있었고, 본인 조카가 강동원이라는 지인도 있었고(네?) 그저 성가시고 귀찮다는 지인도 있었다. 추후 내가 이모가 되고 난 후 그들을 만났을 때 대체로 반응은 이랬다. "조카 바보가 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 비교를 하면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친구에게는 뭐든 해주고 싶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키즈 전용관을 먼저 보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중요해서 결혼도 안 하겠다고 하는 나라도 그 친구가 방문을 두드리면 웃음이 먼저 번지고, 왕복 200km 운전도 행복하고, 그 친구와 제대로 놀아주겠다는 결심으로 헬스장에서 바벨을 든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친구의 존재가 나에게 깨우쳐준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그 친구로 인해 세상을 다 안다 단정 지었던 오만함이 무너지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사랑의 세계에 발을 담글 수 있도록 해준 걸 생각하면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이제까지 일방적인 덕질이나 잠깐의 호기심 혹은 불장난으로 슬몃 사랑에 손을 대본 게 다라, 사랑에 대한 환상은 있더라도 그게 진짜 무엇인지를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본 사랑처럼 스파크가 튀어 서로의 존재에 가슴 뛰는 그런 성애적 사랑 정도나 생각했지. 하지만 이 친구가 내게 전하는 사랑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런 것이다. 이 사랑은 붉은 적색이 아니고 투명한 물방울 같다. 마음속 천진함과 순도 100%의 애정을 고스란히 담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색을 내비친다. 그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본인이 태어나 세상에서 배운 가장 좋은 것들을 뭉치고 뭉쳐 내민 마음의 결집체다. 그 마음, 눈망울, 손짓, 표현을 보고 있자면 밖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사랑은 그렇다.


조카가 사랑을 표현할 때 장난식으로 "너 나중에 열일곱 살 되더라도 이모한테 이렇게 사랑한다 해줘야 해"했지만 그 말은 진심이다. 그 말이 현실이 되길 간절히, 온 마음을 다해 바란다. 아마 그때쯤이면 이모랑 동석하는 것도 불편하다 스크린에 고개를 박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추측하는 것만으로도 눈에 열이 오르는 걸 보면 지독한 사랑이긴 하다. 그래도 믿어보는 수밖에. 이 사랑이 우리를 계속 웃게 하길, 이 사랑으로 우리가(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길, 이 사랑에 우리의 세계가 한층 따뜻하고 폭닥해지길. 아, 보고 싶어라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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