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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Oct 27. 2021

백신 부작용 아니에요?

이제 뭐만 하면, 어디가 아프거나 이상할 때, 원인을 알 수 없을 때는 무조건 백신 부작용이다. 제대로 설명이 안될 때 ‘아, 이건 스트레스 때문이다,’의 ‘스트레스’가 ‘백신 부작용’에 밀리고 있는 것 같다.  


백신과 상관없이 나는 원래 가끔 속이 안 좋다. 명치 밑에 위장을 누르면 배가 전반적으로 자주 아프고 생리 전 증후군 증상도 심하다. 백신을 맞고 몇 주째 약을 먹어도 위장이 계속 쓰리다. 원래 잘 아프지만 뭔가 원인을 찾고 싶은 심리에 백신 부작용 탓을 해버리면 원인을 찾았다는 묘한 안도감이 드는 것 같다. 아, 백신 때문이야.


나는 청소년기에도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번엔 주기를 지나도록 생리를 안 한다. 생리 없이 생리 전 증후군 증상만 심해졌다. 요 몇 달 동안 생리통이 거의 없어 생리 당일까지도 하는지 몰랐을 정도였는데, 갑자기 심해지고 온몸에 기운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으니 패닉 상태에 빠졌다. 또 아, 백신 부작용인가,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몸은 축축 늘어지고 책임감이고 뭐고 눈앞에 보이는 컴퓨터를 때려 부수고 싶었다. 일 따위 그냥 던져버리고, 누가 한마디라도 하면 가위로 머리를 다 잘라 놓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 자신이 파괴적이고 짜증이 가득 해지며, 그러면서도 기운이 없어 아무 삶의 의지가 없었다. 그냥 길가다 어떤 차가 고통 없이 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통 없이 자연사하고 싶다는 생각. 휴직도 사치고 그냥 퇴사하고 싶었다. 백수가 될지언정, 평생직장을 잃을지언정 그냥 최소한으로 목숨만 부지하자. 그것만 해도 난 내 몸뚱이에 할 만큼 했다는 생각.


이런 상태인 내가 너무 안 좋아 보였는지 부장님이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물론 퇴근시간이긴 했다. 우리 기관이 국정감사를 받는 날이어서 전원 대기였지만 나는 국정감사고 뭐고 다 관심이 없었다. 험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건지 오히려 살고 싶은 욕구가 나를 보호한 건지, 나는 당장 가고 싶었다.


호르몬 때문인지 몸에 진이 없어 짜증이 많아지는 것인지. 위장은 아프고 아랫배에 생리통은 계속 있고. 칼로 아랫배를 찔러버리면 아랫배에 있는 균이라도 죽을  같았다. 아프고 무기력했다. 집에 도착하자 코피는 오랫동안 줄줄 나고 멈추지 않았다. 정신이 창백해졌다. 주말 내내 누워 지냈다. 배가 계속 아파 곱등이처럼 움츠러들었다. 몸이 일어나지질 않았다. 누가 위에서 누르는  같았다. 다리가 너무 무거워 퉁퉁 부은 듯이 위로 지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무기력하며 머리는 멍했다. 기억력도 상실했다.


나는 PMS가 심했다. 그게 다시 나타났다. 17년도에는 갈비뼈 밑으로 내려오던 긴 머리를 가위로 혼자 막 잘라버린 적도 있다. 삐뚤빼뚤하든지 말든지 그냥 뭐든 파괴하고 싶었다. 미친 사람 같았다. 난간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고 차를 보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우울증도 심해서 너무너무 가라앉았다. 정신이 취약해지고 평소보다 극도로 예민해졌다. 누가 나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을 받아내기 어렵고 트라우마가 되어 굴을 파고 들어가서 나오기 싫었다. 일이든 뭐든 집중이 안되고 그냥 최소한의 에너지만 쏟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주말에도 심신이 회복이 안된 채출근을 했다. 방금 전까지  하려고 했는데도 생각이  난다. 바보 같다. 독한 피부과 약이나 이비인후과 약을 먹고 졸리고 몽롱하고 부유하는 느낌이  때처럼 그렇다. 머리가  돌아가고 적극적인 무언가가 안된다. 계속 배를 움켜쥐니 누가 물주머니를 빌려주었다. 최소한으로 시간만 때우며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다. 누가 다가오는  싫다.


주변 동료들도 요즘 계속 위장병, 설사에 시달리고 있다. 2차 백신을 맞고 주말을 보내고 온 동료들의 주말 증상이 비슷한 걸 보면 백신 영향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공통적으로 과로와 스트레스가 심하기도 하다. 2차 백신을 맞고 이상이 없다고 느낀 나는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었는데 도저히 걷기도 어지럽고 힘들어서 구경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메스껍기도 하고 그냥 눕고만 싶었다.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훨씬 나아진 것 같다. 건강하지 않으면 글이고 뭐고 읽히지도 않고 쓸 생각도 안 든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라고 하기에도 첫날 뜸과 침을 맞고, 처방받은 한약을 매일 먹는 것뿐이긴 하지만.


확인도 안 되고 누구도 확인을 해줄 수 없고, 실체도 뭐도 없는, 소문만 무성한,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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