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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Nov 03. 2021

살아있다는게 아직 좀 이상해

진회색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다. 도로에 차들이 분주하게 지나가는데 영화 속에서처럼 나는 느리게 서있고 주변만 빠르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맨다리에 바람이 휑-하고 스친다. 파란불이 켜지고, 왼쪽 다리를 절면서 길을 건넌다. 한의원에 미리 주문해 놓은 한약을 찾으러 가는 길. 문 닫는 시간은 7시인데 지금은 6시 25분이다.


한의원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데 직원이 나와 반갑게 인사한다.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 주다니 기분이 좋다.


“안녕하세요! 혹시 어제 다리를 접질렸는데 치료받을 시간이 될까요..? 하며 퇴근시간에 폐를 끼칠까 조심스레 물어봤다.

“당연하죠. 없어도 만들어야죠.” 하고 친절하게 웃으며 바로 치료받는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직원은 손이 빨랐다. 한의사가 오기 전에 얼른 나를 눕히고 다리에 치료기를 붙이고 찜질을 해 주었다.


한의사가 왔다. 얼마 전에 나에게 전화해서 지금 먹고 있는 약이 어떤지 물었었는데 그때 얘기한 것을 고려하여 위장에 좀 더 부드러운 약으로 바꿨다고, 먹으면 더 풀어질 거라고 했다. 생리통 한약을 처방받아먹고 있는데 여전히 매일 위장이 쓰리고 아프다. 한의사가 양말을 벗기더니 삔 왼쪽 발목 바깥쪽을 세 군데 눌렀다. 1번, 2번, 3번. 어디가 아픈지 말하라고 했다. “3번이요. 어! 거기요.” 했더니 위험한 부분이라며 치료하지 않으면 계속 안 좋을 수 있다고, 되도록 걷지 말라고 했다.


걸을 때마다 발목이 아파서 걸음이 느리다. 아침 출근길에도 셔틀버스를 놓쳤다. 평소에 걸음이 정말 빠른데 걸음이 안 걸어져 답답하다. 쩔뚝거리는 모양새는 괜찮다. 그런데 내가 평생 이렇게 걷는다면 굉장히 불리하고, 뭐든 뒤쳐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정한 출발선이 아니다. 어디든지 가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못하는 것도 많고 힘에 부친다.


발목이 시큰시큰했는데 침도 맞고 부항으로 피도 빼고 해서 그런지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한의사는 내 배를 부분 부분 꾹꾹 눌러본다. 위장 부분은 가볍게 손만 대도 아프다. 배가 아파서 그런지 기운이 없다. 배를 따뜻하게 찜질을 자주 하라고 했다. 한의사가 가고, 눈을 감고 조금 누워있다가 아까 그 직원이 와서 피부항을 놓고 발목에 누런 테이프를 여기저기 골고루 둘러주었다. “테이프인데요, 자기 전에는 떼고 주무세요! 움직일 때 붙이는 거라서,”라고 말하더니, “내일 시간 나면 또 오시면 좋은데.” 하길래  “000 님하고 내일 같이 올게요! 안 그래도 내일 오신다 하더라고요!” 누워있는 채로 내가 대답했다. 000님은 내 옆자리 동료인데, 허리가 안 좋아 괜찮은 한의원을 묻길래 내가 추천해주었다. “하하, 맞아요 내일 추나하러 오세요. 안 그래도 같이 오시라고 하려고 했어요.” 손님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병원, 좋다. 말투만 친절한 게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은행나무네. 거리의 은행나무들는 조명을 받아 더 예뻤다. 아직 전부 다 샛노랗지는 않고 연두색이 섞여있다. 아침 출근길에 제일 처음 만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수록 쿵쿵, 하고 크게 다가와 압도하는 것 같다. 입체적이고 커다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거리 한가운데에서 몽환적인 느낌을 받는다.


사무실에서 각자 자리에 앉아있는데 부장님이 뜬금없이 나에게 모델을 해보라고 했다. 모델을 해보지 그랬어, 도 아니고 지금 모델을 해보라고 하신다. 우리 부장님은 NT이고 이상주의자이다. “아, 나이가 많아서요.” 부장님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뭘 나이가 많아, 이제라도 하면 되지.” “네, 네에? 아, 모델들은 막 17세, 이때 시작하고 그러는데^^; 그리고 제가 키가 작아요.”라고 했더니 무슨 키가 작냐며 여기 층 여자 중에 젤 큰 것 같다고(제일 크지도 않다^^;) 170이 뭐가 작냐고 자꾸 진지하게 모델을 해보라고 하셔서 당황스럽다.


어제 필라테스에서 리포머를 했는데 봉을 팔걸이 같은데 끼고 노젓기처럼 했더니 날개뼈가 땡긴다. 필라테스 강사들은 맨날  ~지는 느낌으로 하라고 하는  필라테스에서 쓰는 용어들이 있다. 척추를 분절하여 꼬리뼈부터 둥글게 닿으면서 내려와라, 날개뼈를 올려라 내려라, 갈비뼈를 닫아라, 누워서 무릎을 굽히는  테이블탁 자세인가로 지칭을 하며  다리 테이블탁, 하고. 강사들마다 말투도  다르다. 20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머리숱 많은  생머리의 순수한 얼굴을  강사는 계란이~ 왔어요~하는 아저씨들 말투를 하며 하나, , 셋을 세는데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엄격하다. 쉬는 시간을 잘 안주고 알아서 쉬어야 한다. 마스크를 껴서 그런지 가끔 핑 돈다. 어떤 강사는  명씩 자세를 봐주면서 다가와서는  자세가 아무래도 엉성한데도 경쾌하게 ~렇죠! 하고 가서 재밌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데도 엄격하게 자세를 고쳐주며 끝까지 하고 가는  보는 강사도,  정도 따라 하면 다행이지 싶게 넘어가 주는 강사도   괜찮다. 매번 다른 강사, 다른 기구를 이용하는 것도 색다르고 좋다.


온몸이 종합병원이다. 피부는 건조하고, 다리는 쩔뚝거리고, 속은 더부룩하고, 다리는 퉁퉁 붓고, 자도 자도 피곤하고. 집에 돌아와서 왼쪽 발목에는 얼음팩을, 배에는 찜질팩을 올려놓고 내일은 뭐 입지, 하고 고민하면서 눈은 계속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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