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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an 09. 2022

금붕어 튀김

꿈속에서 나는 왜 금붕어도 물고기인데 먹지 않을까? 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 이유를 검색해보고 싶어서 잠에서 깨려고 애썼지만 깨지지 않았다. 주황색 금붕어를 튀겨서 먹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눈 뜨자마자 금붕어 맛, 금붕어 안 먹는 이유를 검색해봤지만 비려서 그렇다는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금붕어 식당이라고 블로그가 나오길래 들어가 봤는데 금붕어 요리가 아니었다.


이를 닦고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꺼냈다. 믹서기에 우유를 대충 따르고 갈변되어 가는 바나나 묶음의 세 개 중 한 개를 똑 떼어내 껍질을 벗겼다. 하얀 바나나 속살에 아주 약간 갈색이 있었다. 듬성듬성 잘라내 믹서기에 같이 넣었다. 나는 딸기를 섞는 것보다 바나나만 넣는 게 좋다. 아보카도와 우유에 꿀 약간을 넣고 갈아먹는 것도 좋아하는데 항상 아보카도를 네다섯 개를 한 번에 사놓고는 다 썩어서 버린다. 라오스에서 우유 넣고 간 아보카도를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고소하고 맛있어서 한국에서도 간간히 해 먹는다.


유튜브를 틀어  시간 정도 러시아어 공부를 한다. 재미있다. 외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냥 새롭게 배우고 들리는  좋다. 목적이 있어서 공부한  아니고 그냥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조금씩 하고 있다.


거울 속의 나는 머리가 산발이 되어있다. 머리를 감지 않으면 머리가 가려워 엄청 긁게 되는데도 아무 데도 나가지 않는 날에는 안 감게 된다. 지난주에 한 파마로 스페인 여자나 남미 여자 같다. 머리를 돌돌 말리며 드라이를 해야 하는 세팅 파마를 했다가 아침에 두피만 말리고 서둘러 나가느라 관리가 어려워 대충 말리고 출근할 수 있는 머리를 해달라고 했다. 새로운 미용실에 갔는데 히피펌은 머리가 너무 상하고 세팅 파마는 머리카락이 얇아서 잘 티가 나지 않는 머리이니 그 중간 정도의 젤로 펌인가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머리가 좀 꼬불꼬불해졌는데 조금 어색했지만 다들 잘 어울린다고, 활동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해 우리는>에 나오는 김지웅 pd가 멋있다. 경남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가 추천해준 드라마인데 처음에 고등학교 시절이 나올 때는 지루해서 틀어놓고 다른 걸 하다가 보기 시작했는데 최근 화까지 모두 보았다. 주인공인 최웅이 재능이 있어 주어진 기회에 더 간절한 학생에게 기회를 주세요,라고 하는 장면이 내가 부장에게 말한 상황과 비슷해서 공감이 갔다.


김지웅의 약간 올라간 눈과 까칠하지만 배려심 있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예전 직장에서 옆자리에 일하던 선배와 비슷했다. 선배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위계질서를 따지는 곳이어서 동료라기보다는 선후배 관계였다.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대신 일을 가르쳐주는 걸 의무이자 책임으로 생각하였고, 밥은 100프로 선배가 샀다. 아무튼 그 선배의 외모와 성격이 김지웅과 비슷해서 떠올랐다. 중음의 목소리와 화법이 멋있어서 기자나 아나운서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매일 옆자리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협의해나가는 모습과 논리력이 프로페셔널하고 멋있게 느껴졌다. 매일 졸졸 따라다니면서 일을 전수받았다. 나와 달리 성장 욕구가 강하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동력 덕분인지 지금은 꽤 높은 자리에 있다.


오래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다른 여자 얘기를 많이 했다. 친한 여자 동료들이 많았고 종종 여자들이 간단한 선물을 들고 우리 사무실에 놓고 갔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저 여자 예쁘죠, 하고 예쁜 여자를 엄청 밝혔다. 여자 친구가 눈앞에 없을 때 남자들은 다 저런가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안 예쁜 여자들은 다 저를 좋아하는데 00은 예쁜가 봅니다.”라고 농담했다. 어른들이 나에게 반말을 하라고 하는데 항상 꼬박꼬박 00 씨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했다. 그래도 어른들 앞에서 나를 지칭할 때는 00이라고 했다. 서로 이름을 부르고 반말하는 문화인 곳이었는데 거부감은 없었다. 다들 오빠처럼 삼촌처럼 나를 걱정해주고 아껴주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서는 남편을 사랑하는데 다른 남자들과 외도하는 여자가 나온다. 그 남편도, 그걸 보는 관객도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아내가 외도하는 장면을 본다는 건 가슴을 도려내는 심정일 것 같다. 남자는 아내를 잃고 싶지 않아서 애써 피하고 묵인한다. 영화를 보면서는 하루키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니 하루키적 세계관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끝 무렵 스물세 살 여자를 통해 공감이 갔다. 그 사람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왜 안되는지 그게 왜 이해가 안 가는 것인지, 왜 꼭 옳고 그름으로 규정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을 깊게 돌아보고 상처를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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