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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Jun 07. 2024

전쟁 같은 서울 적응

입학하는 날부터 나만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나는 매일 새벽 5:30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은 후 지하철을 탔다. 오전 6:20 쯤에 지하철을 탔는데, 깜짝 놀랐다. 이른 아침이고, 종점에 가까운 역이었는데도 앉을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서울의 부지런함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하루를 준비했고, 환승역에서 분주한 인파는 마치 금메달을 따기 위해 달리는 육상 선수처럼 계단을 박차고 뛰어올라갔다. 여기서 두번째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것이 서울의 경쟁력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지하철역에 내리면 또 버스를 타야 했다. 오전 7시가 넘은 시간에 나는 중앙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긴장이 풀려 졸음이 쏟아졌다. 수면부족으로 몽롱한 상태일 때는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아도 머리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때는 책상에 엎드려 잤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고된 일이었다. 나는 늘 긴장했고 불안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모임에 참석했다. 05학번인 1학년부터 02학번인 4학년까지 다 모였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가장 연장자 같았다. 그 당시 서울대 약대에는 장수생이 거의 없었다. 05학번 신입생도 대부분이 현역 아니면 재수생이었다. 왜냐하면 서울대 약대 합격 커트라인이 지방대 의대 합격 커트라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약대와 의대 둘 다 합격한 N수생들은 의대를 선택한다. 반대로 현역 여학생들 중에는 일부러 의대를 피하거나, 부모님이 의대를 반대해서 서울대 약대에 온 동기들도 있었다. 심지어 동기생 중에 수능 전체문제에서 과학탐구 딱 한 문제만 틀린 여학생도 있었다. 실력으로는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고도 남을 친구였는데, 자신은 꿈이 없어서 여기로 왔다고 말했다. 약대는 의대에 못 들어가서 어쩔 수 없이 간다는 내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천재들 같았다. 괴물들 사이에 있으려니 자괴감이 들었다.


  신입생들은 모이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통의 관심사였던 고등학교 성적을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동기생들은 고등학교 시절 내신과 수능성적이 전교 1등이었다고 말했다. 서로가 다 자신이 전교 1등이었다고 말하자, 참다 못한 한 여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 여기서 전교 1등 안 해본 얘가 어디 있어? 다 전교 1등이었지."

  이 말을 듣고, 두 명의 남학생은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고백했다. 

  "나는 좀 부끄럽지만 내신은 전교 10등이었어. 수능은 전교 1등이었지만."

  "아. 나도 내신은 전교 4등이었어."


  학기초에 사투리를 못 고친 대구 출신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4-5명의 학생들은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 내가 물어보았다.


  "아니, 학교도 다른데 서로 어떻게 아는거야?" 

  "대구에서 서로 라이벌이었어요. 교장 선생님이 모의고사를 치면 '이번에 OO학교에 OOO가 500점 맞았대.'라고 알려주셨어요. 물론 저도 500점 나온 적 있구요."

  "아......"


  난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알고 보니 내 모의고사 점수가 390점, 400점일 때 그 친구들의 점수는 500점이었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수학 천재, 영어 천재도 있었다. 창원출신의 한 여학생은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 수학문제를 단 한 문제도 틀려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연히 수능에서도 수학은 만점이었다. 외국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한 여학생은 영어 시험을 20분 정도만에 다 풀고 엎드려 잤다고 말했다. 당연히 수능 영어 만점자였다. 너무 이상해서 내가 질문했다.


  "어떻게 외국어영역을 20분만에 다 풀 수 있었어?"

  "아, 그거 간단해. 영어듣기를 하면서 동시에 독해문제를 풀면 돼. 영어듣기가 끝나는 순간, 영어독해도 끝나는거지."

  "뭐라고? 그게 가능해?"

  "응. 수능 영어는 미국 초등학교 수준으로 쉬워서 가능해."

  "아......그렇구나."

  "내가 시험 다 치고 엎드려 자는데, 시험감독관님이 나한테 와서 '학생, 일어나요. 벌써 포기하면 안 돼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 좀 민망했어."

  "아마 그 분도 네가 다 풀었으리라고는 생각 못 하셨을거야. 충분히 이해된다."


  민족사관고등학교, 과학고, 외고 출신들은 이런 대화에 끼지도 않았다. 그 학교들은 이미 학교 선배들이 구축한 커뮤니티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학교 적응을 위해 자신의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 어울렸다. 그 커뮤니티에는 방대한 리포트 자료들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큰 노력없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1학년 1학기는 가장 외롭고 불안한 시기였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계속 이 질문을 던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걸까?' 


  아마 향수병에 걸렸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매일 대구에 있는 친구들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함께 PC방에 가서 신나게 게임하고, 노래방에서 락 발라드를 열창하고 싶었다. 그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내 삶을 지탱시켜준 의미였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 친구들만 있으면 난 행복했고, 모든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는 상류층 집단이 모인 학교 같아 보였다. 상류층 자제들의 학업 수준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뛰어났다. 그들 앞에서 내가 내세울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성적, 외모, 돈, 운동, 외국어, 과외경험, 나이, 인맥, 집안환경 이 모든 것에서 나는 이미 그들보다 한참 뒤쳐지고 있었다. 나는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내 능력은 이곳에 있기엔 너무 부족해.'

  '그들과 비교할 때 난 너무 가난해. 보잘 것 없어.'

  '나에게 그들과 동일한 조건이 주어진다면, 훨씬 더 잘한텐데.'


  이런 생각이 들면, 난 하루라도 빨리 대구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대구에는 끝판대장인 아빠가 존재하고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서울대학교 본관 앞에 서 있을 때 나는 마치 내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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