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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Jul 04. 2024

괴로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

3학년 2학기 때 내 마음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교내 헬스장에서 일주일에 두세번 운동했다. 나는 근육이 쉽게 생기는 체질이라 금방 몸이 탄탄해졌다. 근육은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불안정한 마음에 자신감이 더해지자 내 마음 속에서 공격성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 위생화학실험시간에 나와 몇몇 동기들이 남아 현미경으로 실험체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갑자기 군대 다녀온 복학생 조교가 소리쳤다. 

  "실험 끝났으니까. 이제 나가."

  일찍 집에 보내준다는데 얼마나 기쁜 일인가? 동기들은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끝까지 현미경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조교가 내게 한마디 덧붙였다. 

  "너는 왜 안 가고 남아있어?" 

  그날 나는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죄송하지만 그 조교님에게는 정말 운수 나쁜 날이었다.   

  "아직 수업시간 안 끝났잖아요?" 

  "뭐?"

  "자꾸 이러시면 교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자 조교도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지만, 교수님이 언급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교는 미친 학부생의 반항에 더 이상 대응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남자동기들 몇 명이 놀란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내 행동이 후회스러웠지만, 동기들 앞에서는 일부러 떳떳한 척 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 써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 꿈을 향해 씩씩하게 달려가는 그녀를 본받기로 한 나의 결심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생물, 생약학 등 외울 게 너무 많은 과목을 핑계 대고 휴학하고 싶은 충동이 날마다 올라왔다. 그 때 써니는 04학번 선배가 만든 생약학 정리파일을 내게 건네주며 위로해주었다. 


  기운을 회복한 나는 써니와 함께 기숙사 식당에 앉아 생약학의 수많은 식물들의 학명과 성분과 효능을 외웠다. 나는 잠을 한숨도 안 잤기 때문에 새벽녘에 그녀의 진도를 따라잡았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또 "공부 좀 열심히 해라"고 혼냈고, 그녀는 주눅든 체하며 내 장난을 받아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A+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해 겨울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내 고모부인데. 네 아버지 수면제 먹고 자살시도했다."

  "네?"

  "네가 아들인데 내려와야지."


  2인 1조로 진행되는 마지막 과제 한 개만 남은 상황이었다. 조별 과제를 끝내려고 모였는데, 갑자기 고모부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조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마음씨 착한 그 분은 내 표정을 보고 집에 큰 일이 생겼음을 감지했는지, 고맙게도 여긴 신경쓰지 말고 빨리 집에 가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바로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계명대 응급실 침대에 누워계셨다. 위세척을 하신 후 깊이 잠드신 상태였다. 아빠는 가끔씩 이렇게 자해를 하셨다. 어릴 때 한 번은 냉장고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버지는 냉동실에 구멍을 뚫고 자기 손을 넣고 있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아빠가 눈에 본드를 넣으셔서 응급실에 실려가신 적도 있다. 이런 아빠를 내가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아빠와 엄마 가운데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갈등했다. 내 마음은 서서히 저항이 더 작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학기 마지막 금요일이 되면 써니 어머니께서 직접 약학대학까지 오셔서 딸을 데려가셨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써니 어머니를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써니 어머니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셨다. 그럴때마다 나는 장애학생 도우미 모드로 전환하여 장애학생인 써니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했다. 


  졸업 후 나는 써니가 보고 싶어 먼저 전화를 걸었다. 자가용이 생긴 나는 자신 있게 써니에게 주소를 달라고 했다. 그 당시 경제에 무지했던 나는 그 이질적인 동네에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써니가 사는 아파트는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였다. 처음에는 갤러리아 백화점에 주차하려고 했는데,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차량은 하나도 빠짐없이 고급 외제차였다. 나는 주눅 들어 감히 백화점 주차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써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주차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국산차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써니집이 부자라는 걸 알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날 써니를 질투하지 않았다. 써니가 좋은 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현관에 써니가 어머니와 함께 내려왔을 때, 나는 일년만에 만난 친구에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맛있는 삼겹살을 먹으며, 서로의 미래를 축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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