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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Jul 04. 2024

계명대학교 계절학기

  초등학생은 매학년마다 장래희망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초등학생 뿐만 아니라 대학생도 매년 장래희망이 바뀌는 것 같다.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기면서 대학교를 대학원이라는 종착역으로 가기 위한 환승역 정도로 여기는 대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약대 재학당시 동기생들 몇 명은 약사자격증을 포기하고, 의대 또는 치의대에 진학했다. 전공학과와 관계없이 의대 열풍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이 되었다.


  나중에 쿰 라우디 포상을 받고 졸업한 동기생이 4학년 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형, 혹시 MEET 준비하시는 거 아니죠?"

  "MEET?"

  "의학전문대학원 갈 때 치는 시험 있잖아요?"

  "아니. 난 준비 안 하는데. 넌 지금 준비하고 있어?"

  "네. 서울대 의대 가려구요. 그런데 형과 경쟁하기는 싫어서요."

  "어. 걱정마. 의대 갈 생각 없으니까."


  물론 나도 의대 가고 싶다. 아니, 난 사실 3년 전에 집에서 가까운 의대에 합격했었다. 난 의대 못 간게 아니라 안 간 거다. 너무 가난해서. 이렇게 그 동기생에게 속시원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흰소리를 늘어놓은들 지금까지 과외 한 번 안 해본 그 동기생이 공감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졸업반이 되니 부모의 재력 또한 본인의 능력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베이스니까 휴학하면 안 돼'라고 놀렸던 그 동기생에게 나는 입학 후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꼈다. 


  잔잔한 호수 같았던 내 마음에 패배감이라는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욕망, 열등감, 피해의식, 불안감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흙탕물이 되었다. 갈등의 늪에 빠진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로또 1등 당첨을 꿈꾸었다. 10억 정도의 돈이 생기면 나도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돈이 아까워 5000원짜리 로또 한장도 사지 못하면서, 이상하게 나는 의대에 대한 집착을 오랜기간동안 버리지 못했다. 


  의대 진학을 위해 수강해야만 하는 필수과목들이 있다. 물리, 화학, 생물, 확률 및 통계 같은 교양과목들이다. 약대는 의대와 중복되는 교양과목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일반물리학 및 실험'과 '확률 및 통계' 단 두 과목만 수강하면 되었다. 내가 이 과목들을 수강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여름계절학기 밖에 없었다. 혹시 진짜 로또 1등이 될 수도 있으니, 나는 일단 간단한 보험 하나는 들어놓기로 했다.


  대구의 여름은 뜨겁기로 유명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대구를 '대프리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대구의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대구에 내려와 내 귀에 대구 사투리가 들리면 내 마음은 아무 이유없이 편안해졌다. 대구는 대학 졸업 후 내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그 도시 안에서 살고 있는 아빠와 엄마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이 때 비로소 나는 '애증'이란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계명대 캠퍼스는 솔직히 우리 학교보다 더 예뻤다. 건물의 외관은 더 우아했고, 건물의 색깔은 더 고풍스러웠고, 건물의 배치는 더 여유로웠다. 내 마음이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편해져서 내 눈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커피를 들고 길을 걸어가는 커플들, 그들의 표정, 길가에 심겨진 나무들, 예쁜 건물들은 캠퍼스에 낭만을 더해주었다. 나 또한 여기에서만큼은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2004학년도 이후 타대학에서 이수한 과목은 평점평균에 산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말은 내가 성적 D를 받아도 내 평점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제도 때문에 계명대에서 두 과목을 듣기로 결정했다. 경쟁은 항상 내게 두려움이었다. 눈 뜨고도 코 베이는 서울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정겨운 고향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물리 강의실에서 첫 출석체크를 할 때 교수님께서는 나를 지목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다.


  "MEET 치려고 여기서 이 수업 듣는거죠?"

  "네. 방학이라 집에 내려온 김에 선행과목들을 들어놓으려고 합니다"

  "그거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학점도 좋아야 된다고 하고."

  "저는 4점 넘어서 괜찮습니다."

  "......에헴. 이번 계절학기는 표준점수를 산출해 성적을 매기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자기 학교에서 수업 듣는 것을 못마땅해하셨다. 교수님께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시며 약간 무시하는 말투로 학점 이야기를 하실 때 나도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 지혜롭지 못한 언행이었다. 교수님께서 표준점수 이야기를 꺼내실 때에야 나는 나라는 존재가 여기 학생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계절학기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은 4학년 재수강생이었다. 그들이 취업에 유리한 평점을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투현장에 뜬금없는 외지인이 등장한 셈이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같은 실험조원들에게 최대한 잘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실험마다 내가 계획하고, 준비하고, 분석하고, 보고서까지 작성했다. 모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보고서까지 작성하니 공부가 저절로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원들과 나는 친해져 수업이 끝나면 같이 밥을 먹고 음료수를 마셨다.


  통계 수업은 강의실이 가득 찰 정도로 수업생 수가 꽤 많았다. 언뜻 봐도 60명은 넘어보였다. 이 학생들도 대부분 고학년 재수강생처럼 보였다. 통계 교수님께서도 첫 수업 때 이번 수업은 표준점수를 산출해 성적을 매기겠다고 말씀하셨다. 물리 교수님과 달리 나를 온화한 표정으로 쳐다보시며, 친절한 표준어로 여러 질문들을 하셨다.


  "거기 있다 여기 와서 수업 들으니까 어때요?"

  "공부가 어려운 건 다 똑같죠. 근데 마음은 더 편합니다."  

  "통계라는 과목이 좀 어렵진 않나요?"

  "네. 개념이 생소하긴 하네요."

  "중간고사는 어떻게 출제될 거 같아요?"

  "중간고사는 범위가 좁아 좀 어렵게 출제될 거 같습니다."

  "그럼 기말고사는 어떻게 출제될 거 같아요?"

  "기말고사는 내용이 더 어려운데다 범위까지 넓어 좀 쉽게 출제될 거 같습니다."

  "아. 그걸 어떻게 알았죠?"


  나는 수업시간에 내게 다가와 생뚱맞은 질문을 하시는 교수님이 이상하면서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통계교수님은 30대 정도로 젊고 키가 약간 큰 남자였다. 교수님은 아직 젊으셔서 그런지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쳤다. 수업시간의 분위기는 내내 밝았고, 학생들도 교수님께 보답하고자 그리고 A+더 열심히 공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재수강생들의 간절한 마음은 내게도 전염되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저녁까지 남아 복습을 마친 후에야 집에 돌아갔다.

 

  통계학 중간고사 시험은 내 예상과 달리 쉽게 출제되었다. 시험기간은 2시간, 문항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 주관식 문제였다. 시험지 앞에서 긴장한 나는 집중해서 문제를 30분만에 다 풀었다. 종료시간까지 1시간이 넘게 남았다. 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답안지를 제출하고, 퇴실했다. 내가 30분만에 나가자 학생들은 시험치다말고 당황한 눈빛으로 날 주시했고, 교수은 몹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셨다.

  

  교수님께서는 다음 시간에 채점 결과를 알려주셨다. 동시에 교수님께서는 다음부터는 모두 일찍 나가지 말고, 시험종료시간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표적 삼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리 교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1시간이나 되는 귀한 시간을 기다리며 낭비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마음을 분명 교수님께서도 눈치채셨을 것이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교수님께서는 날 2시간동안 붙잡아 둘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문제들을 출제하실 것만 같았다.


  내 예상대로 통계학 기말고사는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10문제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엉덩이를 들 수 없었다. 시험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운 좋게 나는 모든 문제를 다 풀었지만, 끝까지 100점을 확신할 순 없었다. 이것이 교수님의 의도였다면, 나는 보기 좋게 당했고 교수님은 성공했다. 나는 답안지를 거둬갈 때까지 가장 어려운 문제와 씨름했다.


  그런데 이 시험으로 인해 가장 고통받은 학생은 내가 아니라 다른 재수강생들이었다. 시험시간 내내 여기저기서 "끄응, 끄응"하는 신음소리와 "하아, 하아"하는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원망 섞인 눈길로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 또 미안함이 일어났다. 시험이 끝나고 교수님께서는 지금 이자리에서 바로 채점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며, 몇몇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 점수는 100점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문제를 살펴보니 비록 내 풀이방법은 약간 달랐지만, 마지막에 도출되는 정답은 같았다. 나는 기분 좋은 짜릿함이 내 온 몸에 흘렀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교수님은 평균점수가 20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서야 내 마음은 다시 차분해졌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계명대학교에서 계절학기를 수강하기로 한 내 결정을 후회했다. 내가 쓸데없이 욕심을 부려 이런 일이 일어났다. 서울대에서 이 수업들을 들었어야 했다. 나는 치사한 겁쟁이였다. 비록 두렵더라도 강자들과 맞서 싸워야만했다. 난 약대에서도 충분히 잘 해내지 않았던가.

   

  모든 통계학 수업이 끝나자, 한 학생이 용기를 내어 나에게 질문했다. 

  "혹시 서울대 통계학과 4학년이세요?"

  "아니요. 저 약대생입니다."

  만약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민폐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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