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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Aug 17. 2024

결혼을 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당신은 나의 이상형입니다"


  아까보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다행히 서울자매는 나의 마음을 받아주었다. 아마도 그녀는 나를 연애상대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는 내가 고백한 그 순간부터 그녀를 결혼상대로 생각했다. 아니 이미 아내로 생각했다. 결혼만 안 했을 뿐. 그렇게 8월부터 사귀게 된 우리는 2학기 중에 상견례를 치르고, 겨울방학인 2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갑자기 결혼을 선언하자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난리가 났다. 나는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나는 결혼을 준비하는 내내 집에서 약국에서 교회에서 반대자들에게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들이 나를 볼 때 나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안 된 철부지에 불과했나보다. 왜 사람들이 나의 결혼을 반대했을 지 궁금한 사람들이 물론 있을 것이다. 사윗감을 고르는 어르신들이 다음과 같은 나를 봤을 때 어떤 판단을 내리실 지 한 번 상상해보라.


  1) 모아둔 돈도 없고, 도와줄 가족도 없는 거지

  2) 오히려 부양해야 할 장애인부모가 있는 효자

  3) 역기능가정에서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애정결핍증 환자 

  4) 신학교에 성경공부하러 간 초신자

  5) 과거를 알 수 없는 보수적인 경상도 B형 남자


  결혼적령기 딸을 둔 50대, 60대 부모라면 충분히 걱정될만한 스펙 아닌가? 내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나의 결혼을 이렇게 평가했다.


  "성급한 결혼"

 

  가정사역을 공부하시는 목사님은 엄마가 없고, 아버지는 정신병자인 역기능가정에서 자란 내가 성급하게 결혼하면 결국에는 이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조약사님은 신학교에 성경공부를 하러 간 내가 성급하게 결혼한다면 초심을 잃고 신학공부를 중도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셨다. 조약사님은 내게 크게 실망하신 나머지 약속하신 학비지원을 중단하셨고, 한동안 나를 피해다니셨다. 어머니는 가난한 내가 어리석게 가난한 여자와 결혼하면 가족 모두가 고생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셨다. 결국 나는 내가 기대고 싶었던 사람들에게서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결혼해야만 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나는 누군가의 조언대로 결혼을 3년 정도 연기할까라고 고민했다.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서울자매와 상의했고, 서울자매는 원래 우리가 계획한대로 결혼해야한다고 말했다. 내 마음도 그와 같았다. 그러나 교회, 약국, 가정에서 권위자들이 나를 수개월동안 무섭게 짓누르자 점점 나는 한계상황에 치닫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 


  '하나님 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결혼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끝까지 이겨낼 수 있도록 저에게 서울자매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주세요. 그리고 결혼을 준비할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빚을 질 여력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십시오.'


  정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서울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더 부어주셨다. 이것은 내가 결혼에 대해 확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두 번째 징표였다.  결혼도 하기 전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나에게 아내였고 가족이었다. 나는 나의 예비신부에게 내 모든 걸 바쳐 사랑하고 싶었다. 그녀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내 마음 속에서 날마다 샘솟았다. 


  갑자기 그녀의 노트북이 생각났다. 1학기 어느 수업 시간, 나는 우연히 그녀의 노트북 자판을 보게 되었다. 코팅은 지저분하게 벗겨져 있었고, 자판의 글씨들은 지워져 잘 보이지도 않았다. 오래된 노트북을 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회상하자 안쓰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다가오는 그녀에게 새 노트북을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돈이 없었다.


  '100만원 정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제안이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도우신 게 분명하다. 집 근처 부동산 사장님께서 나에게 뜬금없는 부탁을 하셨다. 

  

  "혹시 고3 수학 과외 가능하세요?" 

  

  사실 나는 고3 과외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도 없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나는 무조건 거절했을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달랐다. 부동산 사장님의 그 제안은 나에게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그렇다고 내 쪽에서 먼저 급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약간 뜸을 들였다.


  "음......제가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네요. 일단 한 번 상담만 해보겠습니다."


  학생을 만나보니 고3 스트레스로 인해 약간 우울증이 온 것 같았다. 그 여학생은 원래 우수한 성적을 받는 전도유망한 학생이었으나 고3이 되자 슬럼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그 학생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나도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고 위로해주었다. 나는 그저 그 여학생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일주일 뒤 학부모님께서 날 보자고 하셨다. 우리는 약속을 잡고 카페에서 만났다. 

  "8월 한 달동안 일주일에 2번 2시간씩만 수학 과외부탁드립니다."

  나는 과외비가 궁금했지만 차마 송구스러워 먼저 입을 열지 못하고 끝까지 기다렸다. 학부모님은 딸의 과외비에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100만원 선불로 드리겠습니다."

  딱 노트북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더이상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방문드리겠습니다."  

  나는 돈을 받자마자 예비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좌번호 좀 알려줘."

  "갑자기 무슨 일로?" 

  "아. 내가 저번에 네 노트북 보니 너무 낡았더라. 내가 돈 좀 부칠테니까 이번에 새로 하나 뽑아."

  "노트북은 얼마나 비싼데?" 

  "괜찮아. 나 한달 동안 과외하면 그 돈 벌 수 있어."

  "얼마나?"

  "100만원."

  "우와......"


  나의 예비신부는 정말 자기 계좌에 100만원이 이체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비처가에서 난리가 났다. 

  

  "아니 남자친구가 이런 것도 사줘? 그것도 사귀자마자? 남편도 사주기 힘든건데..."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종종 만나 데이트를 하였다. 나는 여전히 배우자를 위한 저녁 금식기도 중이어서 저녁은 굶었다. 혹시 나 때문에 나의 예비신부까지도 저녁을 굶을까봐 걱정되어 물어보았다. 

  

  "나 때문에 (걱정 돼서) 저녁 못 먹는 거 아냐?"

  "아니. 난 맛있게 먹을 수 있어."

 

  그녀는 정말 혼자서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는 내게 있는 것 중에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월급을 받을 때마다 그녀에게 편지와 함께 용돈을 주었다. 

  

  "책값이야. 이걸로 2학기 책 사."

  "왜 나한테 돈을 줘?"

  "그냥 주고 싶어서."

 

  15-20만원씩 주었었는데, 그 돈은 약국에서 받은 상여금 또는 한달간 모은 저녁식비였다. 내가 자꾸 돈을 주자 나의 예비신부는 날 '돈 헤프게 쓰는 남자'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자기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한푼도 쓰지 않는 남자라는 걸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 해 2학기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약국에서 일했고, 월급을 받으면 아버지 병원비, 어머니 용돈, 십일조, 감사헌금을 따로 빼두었다. 그것들을 뺀 나머지가 내 용돈이 되었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일을 하고, 예배를 드렸다. 또 교회에서 말씀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 나는 신학교에서 밤을 새며 열심히 공부했다. 

  

  2학기에는 여기에 두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첫번째는 연애이다. 나와 미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데이트를 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노래방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차를 끌고 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신학교 주변을 산책했다. 

  

  2학기 때 추가된 두 번째는 결혼 준비이다. 역기능가정에다 모아둔 재산도 없는 나에게 미나는 어떻게 시집 올 생각을 했을까? 미나는 여름방학 때 있었던 수련회에서 "환경이 아니라 사람을 보세요!"라는 말씀을 듣고 나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누가 설교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명설교자라고 칭찬해드리고 싶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미나는 부쩍 바빠졌다. 어느 순간부터 카페에서도 쉴틈없이 결혼준비과정에 대해 상의해야 했다. 나는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세세한 결혼 준비를 미나에게 부탁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한 일이다. 미나는 혼자 준비하느라 엄청나게 힘들었을텐데 내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결혼 준비할 때 체크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어떤 것들이 있어?"

  "예식장 예약, 신혼집 마련, 신혼여행 계획짜기, 스드메(스튜디오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가구 및 가전제품 구입, 청첩장, 친구들 소개, 양가 인사 그리고......"

  "또 뭐가 있어?"

  "결혼예비학교"

  "아......그 많은 것들을 2학기동안 다 하는 게......가능한 일이야?"

  "응. 분담해서 하면 되지. 결혼예비학교는 화요일 수업 다 끝나고 가면 돼"

  

  결혼예비학교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뜨악했다. 정말로 놀랐다. 과제할 시간도 없는데, 하루 저녁을 결혼예비학교에 다 쏟아부어야 하다니......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내게 유명한 프로그램수강은 왠지 어울리지 않은 사치를 부리는 것만 같았다. 진짜 집안환경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가족외식, 가족행사를 경험해 본 적 없던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내 마음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형식적 절차에 면역력이 없었다. 결국 내 몸과 마음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빨갛게 일어났다. 누군가의 도움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시험공부를 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하는 학생이었다면, 결혼예비학교는 쪽집게 선생님이었다. 그 때 결혼예비학교를 간 것은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결혼예비학교를 수료할 무렵 예비신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부담스러워하는 나를 끝까지 설득해 이 귀한 시간들을 선물해 준 그녀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P.S.) 풋풋한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을 공개합니다.


* 일섭이 결혼을 결심한 이유

  1.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서 

  2. 나의 가정을 통해 주님의 사역을 하기 위해서 

  3. 평생토록 서로 아끼고 격려해주는 배우자와 함께 하고 싶어서 

  4.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서 

  5. 배우자의 인생에 최고의 선물이 되고 싶어서 


* 그녀가 나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

  1. 일섭의 눈빛에서 아빠의 사랑스러워하던 눈빛을 발견했기 때문에, 또한 나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2. 일섭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발견해서 같은 비전을 품고 함께 사역할 수 있기 때문에 

  3. 세상을 살면서 박일섭과 같이 나에게 꼭 맞는 완벽한 남성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4.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 나를 잘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아서 

  5. 만나면서 마음이 편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람이라는 확신이 더 강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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