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이 될 무렵, 내게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 서울자매는 약을 타러 가기 위해 내게 도움을 청했다. 신학교에는 자가용을 굴리는 학생이 몇 명 없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게 닥칠 일이었다. 말까지 트고 지내는 친구가 된 이상 더 이상 친구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흔쾌히는 아니지만 나는 서울자매의 요청에 수락했다.
이천병원은 생각보다 꽤 멀었다. 가는데 30분은 더 걸린 것 같았다. 차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서울자매를 신학교까지 와서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사는 나에게 드라마 시청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밖에서 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목사, 전도사, 신학생들은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비범하고 거룩한 성직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학교를 다니면서 그 환상이 깨어졌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목회자와 신학생들 모두 소소한 힐링이 필요한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진료실로 들어간 서울 자매는 한참이 지나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경험상 10분 내외로 끝날 줄 알았던 진료가 길어지자 내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 눈길은 자꾸만 시계로 향했다. 무언가를 꼭 해야만했다. 이대로 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나는 눈 앞에 놓여져있는 신문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특히 사설을 집중해서 읽으면서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을 주의깊게 살폈다. 나중에 좋은 설교자가 되기 위한 공부였다. 그렇게 30분이 더 흘렀을까? 저 멀리 진료실 문이 열리고 서울 자매가 나타났다. 그녀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순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왜 저러지? 아, 내시경 때문에 마취를 했었구나. 나는 그녀를 잠시 흥미롭게 쳐다본 후 별다른 리액션을 취하지 않고, 다시 신문의 자음과 모음에 빠져들었다. 걸음 속도를 보니 나한테 올 때까지 2-3분은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울자매는 내게 와서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가 왜 내게 그런 표정을 짓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저기서 나 비틀거리면서 오는 거 안 보였어?"
"보였지."
"내시경 받고 어지러운데 붙잡아주지도 않고, 어떻게 신문을 계속 볼 수가 있지?"
"......"(내가 자기 남자친구도 아닌데 나에게 왜 저러는거지?)
나는 내성적이라서 이성친구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리고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라 여자친구가 아닌 여자와의 신체적인 접촉을 최대한 피하는 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아무리 가벼운 신체접촉이라고 하더라도 성적인 감정을 일으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는 성적인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는다.)
둘째로, 대개 남자들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여자에게 접근해 신체접촉을 시도하기 때문이다.(나는 서울자매에게 그런 불순한 의도를 가진 형제가 되고 싶지 않았다.)
셋째로, 신체접촉하는 그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에게도 결례를 범하는 꼴이 된다.(당시 서울자매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보였다.)
내 생각과 달리 서울자매는 내가 얼른 뛰어와 자기를 부축해주길 원했다. 마치 남자친구인 것처럼 말이다.
'난 자기 남자친구도 아닌데 도대체 나에게 왜 저러는거지?'
'내가 자기 때문에 없는 시간 쪼개서 멀리 차 끌고 나온건데......'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서울자매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투정을 부리는 거라고 이해했다. 나는 직업은 약사였기 때문에 위염으로 고생하는 모습이 더욱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약사로서 서울자매가 빨리 완치될 수 있도록 뭐라도 돕고 싶었다.
"배고프지? 죽이라도 한 그릇 먹고 들어갈래?"
"응. 좋아."
약사가 환자를 대하듯이 서울자매에게 친철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 때부터 신기하게도 내 경직된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같이 죽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좀 더 친해졌다. 서울자매의 밝고 쾌활한 성격과 낭랑한 목소리는 이전에 심겨진 나의 나쁜 선입견을 다 지우고도 남을만큼 매력적이었다.
내가 다닌 신학교에는 학기를 마친 후 일주일동안 제출하지 못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은혜의 기간'이 있었다. 그 기간동안 나를 포함한 몇몇 학생들은 집에 가지 않고, 독서실에 모여앉아 각자의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다들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서울자매가 보고서를 열심히 타이핑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첫째로 서울자매에게서 한 주제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깊이 연구하는 지적인 이미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힘든 시기를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버텨내는 그녀의 태도가 멋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이 모든 것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별빛이 반짝이는 밤이 되어서도 기숙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과제작성에 매달렸다. 늦은 밤이 되자 과제에 지친 학생들은 하나둘씩 기숙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독서실의 분위기는 조금씩 어수선해졌고, 독서실은 서서히 교제의 장으로 변해갔다. 20대 후반 남녀들의 최고 관심사는 단연 결혼이었다. 학생들은 서로가 원하는 이상형과 배우자기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이하게 서울자매와 나는 이상형에 관해서 일치하는 한가지 조건이 있었다.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
초신자였던 그 당시의 나는 기도에 대해 엄청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고 믿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설마 서울자매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내 반쪽인건가?'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곧 모두들 일어나고 독서실에는 그녀와 나 단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우리 서로......배우자가 아닌지 같이 기도해볼래?"
"어? 어......"
서울자매는 몇 단계를 뛰어넘은 내 갑작스럽고 직설적인 질문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확실하진 않지만 나는 그녀가 내 제안을 수락했다고 판단했다.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결혼하자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하자는 것인데 문제될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 마음은 계속 떨렸고 두근거렸다. 서울자매가 이미 내 약혼자라고 된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너무 떨려서 서울자매 얼굴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나의 이런 변화를 자매들은 직감적으로 알아챘고, 학교에 곧 소문이 퍼졌다. 나는 도망치듯이 다시 원주로 돌아왔다. 나는 곧바로 배우자를 얻기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 배우자기도에 진심이었다. 내 인생의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내 모든 미래가 바뀔 거라는 것을 나는 그 때 이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학기간동안 두근거리던 내 마음은 다시 차분해졌고, 나는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 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따르고 싶어졌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자매, 말씀을 묵상하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자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매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나를 정말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나에게 사람을 보는 기독교적 안목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배우자상에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서원했다.
"하나님, 우리학교 M.Div 출신인 자매와 결혼하길 원합니다. 만약 아니라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무리수를 던진 나는 곧장 저녁 금식기도에 돌입했다. 나는 저녁 6시가 넘으면 물을 제외한 그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다. 대신 나는 점심에 두 끼를 먹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약국 직원들은 비아냥거렸고, 교회 사모님은 나의 극단적인 행동에 우려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서울자매는 M.A.과정이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포기해야만 했다. 나는 그날부터 서울자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여름성경학교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저녁, 나는 너무 덥고 배가 고팠다. 나는 에어컨을 켜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책상에 앉아 성경읽기 과제를 하려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서울자매였다. 굉장히 반가웠다. 학기말의 그 감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서울자매는 내게 자신의 근황을 설명하는 도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였다.
"일섭아, 나 M.Div과정으로 바꾸었어."
소름이 돋았다. 배고픔이 사라졌다. 나는 사가랴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더이상 아무것도 따질 필요없었다. 나는 100% 확신했다. 하나님께서 서울자매를 나의 배필로 주셨다고. 나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고백했다.
"당신은 나의 이상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