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1.09.19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p.83
심시선을 기리기 위해 단 한 번 떠나는 기이한 하와이 여행. 그의 가족들은 이를 '제사'라고 했다. 과연 시선으로부터 나온 이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추모였다. 여행의 시작은 낭만적이었지만, 저마다의 모습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한 가지 추억을 가지고는 한자리에 모인다. 기일 저녁 여덟 시,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시선을 기억하게 될까?
심시선을 중심으로 한 삼대가 나오다 보니 등장인물의 관계가 꽤나 복잡했다. 소설을 읽는 초반에는 앞 장에 수록된 이 가계도를 들춰보며 인물을 파악해야 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 얼마 지나지 않아 저절로 살아 움직였다.
챕터 별로 시선의 생전 인터뷰나 글이 짧게 수록되어 있고, 그 뒤에 등장인물 별 이야기가 펼쳐진다. 20세기에 전통적인 제사나 관습을 거부하고 진취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모던 걸'이었던 심시선에게 하와이는, 사실 젊은 시절을 보낸 고향이면서도 예술계 여성으로서 폭력을 당한 아픔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 남성 예술가의 조수로 일하며 위계적 폭력을 당하고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지나왔고, 프랑스로, 한국으로 오면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었다.
그의 뿌리로부터 나온 가족들이 하와이로 하나 둘 모였다. 시선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은 가족들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어딘가 현실적인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시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 가족들의 이야기를 큰 맥으로 한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이야기, 배경에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가는 문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그리고 그 문제를 세대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혐오와 세대
시선은 하와이에서 마우어라는 예술가를 만나면서 위험한 나락을 맞이한다. 20세기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는 희박했고 신문에 난 유명한 사람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상해를 입는 쪽은 언제나 약자였다. 유명세는 언제나 모든 걸 왜곡시켜 마우어를 자살한 비운의 예술가로, 시선을 그 죽음의 원인으로 축약시켜 버렸다. 마우어의 작품은 시선이 죽은 뒤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3대인 화수에게도 혐오의 그림자가 이어진다. 협력업체의 사장 기민철이 회사 사정에 대한 분풀이로 평사원들에게 염산병을 던진다. 그 바람에 화수는 얼굴을 다치게 된다. 끔찍한 사건은 크게 보도되지 않았고 세상은 도산 위기에 처한 기민철에게 이입했다. 이후 화수는 유산을 했고 고립된 삶을 자처하게 된다.
세대가 달라서일까. 화수는 자신이 PTSD를 겪는다고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선도 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20세기 사람이었던 시선이 마우어에게 더 빨리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21세기 사람들은 어리석었다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누구든 언제나 자기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적확한 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때로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린다. 화수는 시선이 남긴 책을 보며 시선이 힘들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고, 그러니 기억을 메우는 데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고 마음으로 위안을 건넨다.
로컬과 전통, 가족
시선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훌라'를 선택한 명혜는 훌라 수업에서 '로컬'에 대한 개념을 접한다. 로컬에는 인종도 혈통도 없고 지역 공동체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면 다 로컬에 포함이 되었다. 명혜는 이민자 수가 늘고 더 다양한 집단을 포용해야 하는 시점에 로컬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개념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이주민을 두고 벌어지는 차별적인 시선과 구별 짓는 언어들, 한국인, 재한 외국인, 고려인, 새터민, 재중동포 등 여러 단어들을 한 마디로 포용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로컬', 확장형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시선의 제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나눈 대화에서 세대 간의 생각 차이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은 한국의 공기가 '따가워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화수에게, 명혜와 경아는 그럼 누가 아이를 낳냐고 묻는다. 2대인 그들은 3대인 화수를 이해할 수 없지만, 화수는 이렇게 답한다. '나보다 덜 다친 사람. 나보다 세상을 덜 괴로워하는 사람'이라고. 그 와중에 웃픈 부분은 화수와 함께 3대를 잇고 있는 우윤, 규림, 해림이 시선에게서 뻗어 나온 가지의 끝이 되겠다고 조용히 마음먹는다고 서술된 부분이었다. 이상적인 삼대에게서 툭툭 튀어나오는 현실적인 포인트들이 이 책의 묘미였다.
작가 정세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의 따뜻한 시선이 묻어나는 설명이다. 소설은 아래 인용한 글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이상적인 심시선의 가계에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한 조각을 나도 품고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p. 331
독서모임에서 던져진 질문 중에 하나였다. 제사는 너무 먼 이야기이고 우리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 <써니>처럼 친구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틀고 춤추는 모습일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으나, 시선의 제사처럼 나로 인해 인상적인 경험을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추억 하나쯤 떠올려주면 좋겠다.
- 덧붙이는 글(2024.11.20)
이 질문에 답한 글을 3년이 지나 다시 보니 한 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2023년 몽골, 쳉헤르 온천에 도착한 날이었다. 날씨는 미치도록 좋았고 연둣빛 자연을 보며 동행들과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한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물었다. 각자 골똘하게 생각했다. 어쩐지 나는 심각해져 '단 하나의 곡만 들을 수 있다면' 정도의 고민으로 치닫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단번에 Be The Voice의 <Altogether alone>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 했다. 줄줄이 하나씩 대답하며 플레이리스트로 저장하는 사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이대로는 못 고를 것 같았다. 그새 고민은 '내 장례식에서 틀고 싶은 마지막 음악'까지 왔고 결국 말한 게 새소년의 <난춘>이었다. 당시에 자주 듣는 음악이었고 좋아하는 뮤지션이어서 그랬나 싶었지만 가사를 곱씹어보니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났다. 죽은 내가, 나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다. 오래 슬퍼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고.